Posted on 2026. 10. 29.
반도체 쏠림 3분기 ‘깜짝 성장’에도 민간 소비 후퇴, ‘호황의 시간’ 구조개혁 고삐 좨야
올해 3분기 한국 경제가 시장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으나, 화려한 거시 지표의 이면에 드리워진 민생 경제의 그림자는 그 어느 때보다 짙고 깊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월 27일 발표한 ‘2026년 3/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에 따르면, 우리 경제는 직전 분기 대비 1.0% 성장하며 지난 8월의 전망치(0.3%)를 3배 이상 웃도는 깜짝 성장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은 3.4%에 달하며 고무적인 성과를 보였다.
특히 생산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전년 동기 대비 18.8% 급증하며 1977년 4분기 이후 48년 9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달성했다.
수치상으로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 4만 달러 시대 진입이 가시화될 만큼 경제 규모와 소득이 폭발적으로 팽창한 셈이다.
그러나 온 국민이 경제 회복을 체감해야 할 이 시점에, 정작 대다수 소비자의 지갑은 굳게 닫혀 있다. 경제 성장을 떠받치는 또 다른 핵심 축인 민간 소비는 오히려 직전 분기 대비 0.2% 감소하며 2022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했다.
자동차 파업에 따른 출고 지연이나 증시 조정에 따른 주식 거래량 감소 등 일시적 요인이 작용했다고는 하나, 재화와 서비스 소비가 동반 하락한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이는 성장의 온기가 경제 전반으로 퍼져나가지 못하고 특정 부문에만 머물러 있다는 명백한 방증(傍證)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지표와 체감경기의 심각한 괴리는 이른바 ‘반도체 착시’에서 비롯된다. 3분기 성장을 견인한 것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2.3% 증가)과 반도체 제조용 기계를 위주로 한 설비투자(4.1% 증가)였다. 전체 경제성장의 절반가량을 반도체 산업 하나가 홀로 이끌어가고 있는 기형적인 구조다.
인공지능(AI) 열풍에 기댄 반도체 ‘슈퍼사이클(Super-cycle │ 장기적으로 꾸준히 상승하는 초호황)’은 거시지표를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고도로 자본 집약적인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기업의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이 대규모 신규 채용이나 가계 소득 증대로 곧바로 직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올해 1~9월 취업자 수 증가 폭이 6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고용 한파가 매섭게 몰아치고 있으며,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대출 연체율은 1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지금의 ‘반짝 호황’은 축배를 들 시간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환부를 도려내고 ‘펀더멘털(Fundamental│기초체력)’을 다질 마지막 골든타임(Golden time)이다.
반도체 호황의 과실이 사상누각으로 무너지지 않으려면 정부와 정치권은 마중물 성격의 단기 부양책을 넘어, 낡은 경제 체질을 혁신하는 구조개혁과 정교한 대책 마련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대책은 내수 활성화와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핀셋형 맞춤 정책’의 실행이다.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있는 무분별한 확장 재정이나 현금 살포성 지원은 지양해야 한다.
대신, 초과 세수와 정부 재정을 활용해 한계 상황에 내몰린 취약 차주와 영세 자영업자의 고금리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연착륙 프로그램을 속도감 있게 가동해야 한다.
동시에 높은 주거비와 가계 부채가 소비 심리를 짓누르지 않도록 부동산과 주식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여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을 실질적으로 늘려주는 거시 건전성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반도체 이후를 대비할 신성장 동력 발굴과 산업 생태계 다변화가 필수적이다.
연구개발(R&D)과 세제 혜택을 뼈대로 하는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은 15년째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표류 중이며, 모빌리티 플랫폼과 원격의료 등 혁신적인 신사업들은 여전히 철통같은 규제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하고 우주항공, 바이오,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등 제2, 제3의 성장엔진을 육성해 산업의 저변을 넓혀야만 반도체 편중 리스크(Risk)를 분산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노동 시장의 이중구조 타파와 고용 유연성 확보를 위한 노동 개혁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기간제법의 한계와 주 52시간 근로제 등 일률적이고 경직적인 노동 규제는 기업이 신규 채용을 주저하게 만드는 핵심 원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굳어진 이중구조를 깨트리고 임금 및 고용 체계를 유연하게 개편하여 청년들이 체감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한편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답변에 따르면 AI 투자가 둔화될 경우 내년 반도체 수출 물량이 최대 1,000억 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한다. 산업 다변화를 통해 반도체 호황 이후를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민간 소비 항목만 유독 위축되고 있다는 것 또한 심각하게 봐야 할 대목이다. 수출과 투자 등 대부분에서 증가세를 보인 데 반해, 민간 소비는 0.2% 감소했다. 전체 소득은 늘었음에도 정작 가계에선 씀씀이가 줄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한국은행이 이날 함께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에서도 확인된다. 경기 비관 전망이 늘면서 10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5.4로 전월보다 1.2 포인트나 내려갔다.
반도체 호황의 과실이 아무리 넘쳐나도 대다수 소비자 지갑을 열지 못한다면 반쪽짜리 성장일 뿐이다. 민간 소비를 끌어올려야만 반도체 편중의 리스크(Risk)도 완화시킬 수 있다. 소비 없는 성장은 머지않아 바닥을 드러낼 우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출 호황으로 경제 전체의 소득 여건은 개선됐지만 그 효과가 가계의 소비심리와 실제 지출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성장의 온기를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는 일이 과제로 남았다.
호황의 열기에 취해 개혁을 외면한다면, 다가올 하강 국면에서 우리 경제가 치러야 할 대가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뼈아플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지금 벌어들인 소득과 시간적 여유를 노동, 금융, 규제 개혁의 불쏘시개로 삼아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4% 성장을 바라본다는 화려한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닫힌 국민의 지갑을 열고 차가운 민생 경제에 온기를 불어넣을 구조개혁의 고삐를 바짝 좨야 할 때임을 각별 유념하고 실행으로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