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8. 10. 15.
행정전문가 안희옥 서울시의원 주민의 일꾼으로
장위, 석관의 미래를 준비하는 행복감에 피곤함 잊어
1965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안희옥 서울시의원. 졸업 후 1년여 동안은 사법고시 준비를 한다. 우연한 기회에 서울시 공채시험에 응시해 합격하면서 그녀는 공직에 몸 담는다.
행정전문가로의 출발은 이렇게 시작된다. 동사무소 근무에서부터 서울시 여성정책 비서관을 거쳐 청와대에서 여성정책을 수립하는 대통령비서실 여성정책비서관을 끝으로 33년의 행정전문가로 인정을 받으면서 공직을 마무리 한다.
안의원의 내공은 그녀의 공직 경력에서 잘 나타난다. 마포부녀복지관장, 가정복지과장, 서울시 청소년국장 등을 역임하고 1997년 8월 여성으로는 최초로 1급 공무원인 서울시 여성정책보좌관으로 승진한다.
김대중 정부시절에는 우리나라 여성정책을 총지휘하는 대통령비서실 여성정책비서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가정도우미’ 제도를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2001년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여성위원장으로 발탁되어 정치권에 몸담게 된 안의원. 집권당으로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권유를 받고 정치에 입문한다.
선거대책위원회 여성위원장을 맡으라는 언질을 받았지만, 다른 여성인사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러면서 전국구 35번을 배정 받는다. 16대 국회의원 임기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기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다.
행정전문가인 그녀가 중앙정치에서 손을 놓고 성북으로 내려온다. 성북구 장위동에 위치한 청소년수련관 관장으로 인연을 맺는다.
서울시청 근무시절 청소년정책청소년 지낼 때 청소년과 맺은 인연이 이유가 됐다. 안의원은 2005년 청소년을 위한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서 청소년 한마음연맹이라는 비영리법인을 설립하기로 계획했고 이루어냈다.
“제가 마지막으로 나라를 위해 할 일은 우리나라 청소년을 건전하게 육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밝힌다.
그 후 서울시의원으로 출마를 결심한다. 2006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서울시의원으로 지방 정치에 입문한다.
일부 사람들은 중앙정치에서 지방정치로 입문한 안의원을 비하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시 의원으로 당선된 안의원은 행정전문가로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친정과도 같은 서울시에 근무한 경험을 살려 지역의 민원을 해결해 나갔다. 집행자에서 감시자로 나타난 안의원을 보고 시 공무원들은 바짝 긴장했고 업무에 적극 협조했다.
안의원은 서울시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2년 동안 예결위원으로 활동했다. 그 분야가 안의원 전공이었기에 활동에 막힘이 없었다.
그래서 129억이 넘는 예산을 따내 지역구인 성북구로 보내졌다. 예산은 주변 환경을 개선하고 소외계층을 보살피고 청소년 육성에 필요한 윤활유로 사용되었다.
안의원은 “지금까지 확보한 예산이 시설에 투자 되었다면 내년부터는 프로그램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보람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안희옥 의원. 그녀는 성북구의 일꾼으로 인정해 주길 원한다.
중앙정치인이 아닌 지역 일꾼으로 인정받길 원한다.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구슬땀을 마음껏 흘리길 원한다.
그녀의 조용한 미소 뒤에는 결연한 의지가 배어 나온다.
안의원에게는 성북의 행복과 미래를 위한 프로젝트가 구상되어 있다. 또한 그녀는 뛰어난 기억력을 자랑한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소상히 외운다. 나이를 뛰어넘는 재담은 안의원만의 매력이다.
김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