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9. 03. 04.
“우리민족 기록문화 우수성 잠들고 있다”
의궤반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
서울시의회 부두완 의원 열의 빛나다
조선왕조 유산, 도굴, 매매 등 세계도처에서 시름 잠겨
의궤반환 국민여론 확산 절실, 문화상품 높은 가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의궤반환운동. 그저 단순한 되돌림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문화유산의 가치를 제자리에 있게 하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소중한 유산을 제대로 간직함으로써 관광문화 강국으로 도약하는 초석을 다지는 역할을 이루어야 한다. 조선왕조의궤를 되찾고 연구하며 그 진가를 보여주고자 동분서주하는 부두완 서울시의회 의원을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조선왕조시대의 의궤. 그 가치와 의미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역사의 소중한 자산이자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유산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소중한 유산을 우리가 보호하고 관리해 후대에 물려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어 안타까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현실을 인식한 서울시의회 뜻있는 의원들이 의궤반환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부두완 서울시의회 의원. 그의 가슴에는 의궤반환 소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고 있다.
“일본 같은 경우는 자국의 문화재를 찾아오기 위해 시민모금운동까지 전개합니다.” 부 의원은 세계기록유산에까지 등재된 의궤를 타국에 두고 지켜보아야만 하는 안타까움을 우리모두 적극 참여해 의궤반환의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문화재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이를 고도의 전통문화상품으로까지 발전시켜 관광객유치에 이르게 함으로써 경제적 효과도 유발할 수 있다는 전략이다.
그러기 위해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활동에 나서야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부 의원은 “한국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펼쳐 보이고 민주적으로 만들어진 실록의 정신을 제대로 알려야 외국인들도 의식의 전환을 가져올 것”이라며 “이러한 분위기가 고조되면 세계 곳곳에 산재한 의궤를 찾아올 수 있다”고 방법을 제시한다.
구체적인 활동방향으로 조선왕조 의궤 활용 및 홍보를 위한 권고결의문까지 만들어 실행에 들어갔다.
백성을 위하는 군주의 애민정신이 녹아있는 기록물을 세계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의미를 이해하고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부두완 의원의 복안이다.
“의궤반환운동이 쉽게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시민위원회,조례 등을 만들어 각종 행사를 하고 인식전환을 도모할 필요가 있습니다”의궤반환의 기치를 국민여론 확산으로 불타오르게 함으로써 목표를 이룰수 있을 것이란 점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부 의원은 우리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인식하게 하고 보물급 이상 7만3천여종으로 추정되는 우리의 소중한 유산을 소재파악이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다.
의궤의 반환에 따른 방안으로 유통경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특히 일본궁내청에 소장돼 있는 조선왕조의궤는 우리의 정신과 얼을 타국에 맡겨놓고 있는 실정이어서 반환이 절실한 실정이다.
부 의원은 ‘서울특별시의회 일본궁내청 소장 의궤 반환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가동해 의궤반환과 관련된 국내외 여론을 환기하고 관심을 제고하는데 필요한 각종 사업을 서울특별시가 수행할 것을 서울특별시장에게 제안한 상황이다.
의궤(儀軌)는 조선 왕실에서 국가의 주요 행사가 있을 때 훗날 참고하기 위해 남기는 기록문서를 말한다.
조선 왕실에서 주관하는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임시 기구인 도감(都監)을 두어 이를 주관하게 했는데, 행사를 마치면 도감을 해체하고 의궤청(儀軌廳)을 설치해 의궤의 편찬을 맡아보게 했다.
이 소중한 유산은 가치가 크게 인정돼 지난 2007년 6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의궤는 조선 건국 당시 태조 때부터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많은 관련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데 현재 조선 초기 의궤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전(現傳)하는 가장 오래된 의궤는 1601년(선조 31년) 의인왕후(懿仁王后)의 장례 기록을 남기기 위해 편찬된 ‘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懿仁王后山陵都監儀軌)와‘의인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懿仁王后殯殿魂殿都監儀軌)다. 보통 필사해서 제작했기 때문에 소량을 제작해 특별 제작한 1부는 어람용(御覽用)으로 왕에게 올리고 나머지는 관련 기관과 사고(史庫)에 나누어 보관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 침입한 프랑스군이 외규장각(外奎章閣)에서 300여 책의 문서를 약탈해갔다. 이들은 현재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는 실정이다.
홍순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