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9. 03. 26.
리스트 공화국
김 세 현
행정학박사/호원대겸임교수
지난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낸 사람이 구속되더니 이명박정권 수석비서관을 지낸 사람도 구속됐다.
소위 박연차라는 사람의 리스트에 올라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리스트라는 것이 뭔가? 영어의 뜻만 살펴보면 명단이라는 것 같은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를 자칭하는 사람이고 현 정권의 인사들과도 두터운(?) 인간관계를 가진,
외모로 보기에도 통이 커 보이고 정치의 생리를 알만한 기업인이 무슨 명단이나 작성해서 훗날의 어려움에 대비하려고 리스트를 만든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아마 그의 입에서 툭툭 나오는 중요인사의 이름을 언론이 그냥 리스트라고 부르는 것 같다.
권력을 잘못 남용해서 구속되거나 검찰에 소화되는 것은 조금 나아 보인다.
얼마 전 자살한 모 배우의 소위 성상납 리스트에 들어있는 고위 인사들 참 꼴이 우습게 됐다.
정치를 하거나 고위공직자 생활을 하다보면 기업인들과 친하게 되고, 친하다 보면 그들(기업인)의 청탁을 들어주게 되고, 고맙다고 건네는 호의를 무심코 받기 십상이다.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고, 그것이 죄가 된다고 생각지도 못하다가 검찰에 불려가는 공직자들도 있을 것이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 사실 불안하고 억울한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 누굴 믿고 살아야 할지도 걱정일 것이다. 그렇다고 친인척이나 주변의 아는 친구, 혹은 선후배들 멀리 할 수도 없고, 가까이 하자니 언제 그 사람에게 문제가 생겨 그 사람의 입에 의해 리스트에 오르내릴지 모를 일이니 세상인심만 탓할 뿐이다.
고위 공직자들이야 어쩌다 재수 없이 걸렸다고 항변이나 하고 권력주변인사에 이름이라도 오르내리면 그래도 힘 있는 척이나 할 수 있을 터인데 성상납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사실여부를 떠나 상당히 부끄러울 것 같다.
리스트를 누가 어떤 경로로 만들었는지 여부는 수사기관의 조사에 의해 밝혀지겠지만, 무슨 일만 터지면 이상한 리스트들이 증권가 찌라시(낱장광고)나 인터넷에 유포되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은 나라발전과 국민통합에 도움 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검찰의 고위 간부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4월 달에 아마 소위 정치권 리스트와 성상납 리스트에 올라있는 유명인사들의 줄 소환을 예견케 하며 현 정권의 수석비서관을 지낸 사람을 구속시킬 때는 이명박 대통령의 결심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 심리가 오래 서서 있다 보면 잠깐만이라도 앉고 싶고, 앉자 있다 보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다.
이번 양대 리스트 사건을 계기로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중요정치인들이나 공직자, 기업인들의 깊은 자기반성과 자아성찰이 있어야겠다.
나라가 전체가 이미 비밀이 없는 세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고, 지난 정권에서 검찰에 불려 갔다 온 후 자살한 유명기업인이나 공직자를 보아 왔고, 불과 얼마 전에 인터넷이라는 괴물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려 자살한 유명연예인도 겪었다.
국민이 보고듣기에 나쁜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는 것, 리스트공화국의 오명을 벗어나는 길, 그것이 누군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시대의 명제기도 하지만, 앉지도 못하고 열심히 서서 일하던 힘들었던 그때를 생각하며 조신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고위공직자나 성공한 사람들이 리스트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