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9. 04. 08.
親舊(친구)와 子息(자식)
김 세 현
행정학박사/호원대겸임교수
친구, 언제 만나도 즐겁고 보면 볼수록 정이 두터워가는 사람이다. 자식, 언제 봐도 사랑스럽고 안타까우며 평생을 짊어지고 갈 우리의 業(업)이고 피붙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선후배도 어쩌면 나이와 직업은 다를지 모르지만 크게 보면 이들 역시 친구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소위 전직 대통령의 친구라는 박연차라는 기업인이 검찰에 불려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친구들의 이름을 술술 불어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충격 속에 의아해 하고 있다.
박연차 씨는 그의 말대로 국내 30대 재벌에도 끼지 못하는 피라미 수준이다.
그런 그가 그렇게 많은 돈을 그것도 각계에 뿌렸다는 것이 우선 놀랍고, 그런 돈들이 대가성 없는 단순 후원금인줄 알고 받았다가 낭패 보는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동료 정치인들이나 고위공직자들 역시 아차 싶어 주변의 친구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정치인의 뇌물수수, 이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으며 공직을 이용해 富(부)를 형성한 전직대통령 주변에 대한 철저한 수사에 우선 전적으로 공감 한다.
또한 공정한 수사를 위해 현 대통령의 수족도 과감히 단죄하는 것에도 적극 찬성한다.
그러나 죄에는 경중이 있으며 돈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을 보는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요즘같이 투명한 세상에 자기 무덤인 줄 알면서 비록 친구일지라도 대가성 있는 돈을 받는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은 없을 것이다.
이번에 구속된 박연차 씨는 겉모습에서만 봐도 입도 무거워 보이고 행동거지도 커 보여 친구가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의 입에서 의외의 인물들이 툭툭 튀어나오고 입이 무겁다는 그가 술술 불어대는 이유가 자식들 때문이라고 한다.
자식 앞에서는 그의 입도 열렸다는 뜻이다.
그의 말 한마디에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앞날이 달렸다니 나라꼴이 참 한심하다.
그의 입만 바라보는 정치인들이나 고위 공직자들도 사랑하는 자식들이 있을 텐데, 박연차 씨라는 사람이 돈을 주었다는(돈의 용도는 정확히 모르지만) 말 한마디에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죄의 경중이나 유무에 상관없이 그 순간부터 얼굴 들고 다니기 어렵게 되고, 오랫동안 쌓아왔던 명성을 하루아침에 잃어야 하니 참 딱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정치인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들은 친구사귀기에 주저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자식들에게도 친구들 리스트를 미리 알려 “저 친구는 내 허물도 안고 갈 수 있는 진짜 친구고, 저 친구는 그냥 술친구고, 저 친구는 도무지 모르겠고” 등등 아이들에게 주저리주저리 해야 할 지경에 빠질지도 모른다.
세상을 살면서 좋은 친구 셋만 사귀면 성공이라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 친구가 정말 막역한 친구인가, 아니면 나는 저 친구의 진정한 친구인가”를 뒤돌아보니 정말 필자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간임을 이번에 알게 됐다.
내 자식은 귀하다. 그렇다면 남의 자식도 귀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좋을 때는 한 없이 좋다가 급하면 자식 핑계로 팽개치는 친구보다, 비록 어렵더라도 자식을 부탁하며 쓸쓸이 사라져가는 친구 어디 없을까? 필자도 그런 사람이 못되면서 그냥 그런 친구가 그리운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