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9. 05. 20.


노숙자 이야기

 

 

 

 

 

 

 

 김 세 현
행정학박사/호원대겸임교수

 

 

 

 

우리나라에 거지나 넝마주이가 많았던 때는 아마 6.25동란 이후였던 것으로 안다. 어릴 때는 그들과 눈만 마주쳐도 무서웠던 기억도 어슴푸레하다.


나라가 세계 11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덕택인지 언제부터인가 거지는 없어지고 외환위기(IMF) 이후로는 노숙자라는 신종 거지(?)가 나타났다.


물론 노숙자는 옛날에 봤던 거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옛날이야 정말 먹고 살 것이 없어 비렁뱅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나라가 상당히 어렵다고 하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혼자 몸 추스르고 살기에 그리 어려운 상황도 아닌데 노숙자 생활을 즐기는(?) 이유가 궁금했으나, 옛날 거지가 무서웠던 것처럼 노숙자가 무서운 것은 아니지만 왠지 말 붙일 용기도 나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러던 차 며칠 전 가까운 친구와 저녁을 먹던 중에 노숙자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노숙자들은 필자의 예상대로 옛날 거지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얘기다. 노숙자 중 상당수는 아주 잘나가는 將星(장성)아들도 있고, 은행 지점장을 아들로 둔 사람도 있으며 집도 꽤 잘살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아들딸이나 가족에게 버림받은 것도 아니며 근로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도 일도 하기 싫고 구속받는 것이 싫어서 그냥 그렇게 노숙자로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 역시 노숙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 한 달 여 그들과 지냈다고 한다. 친구가 보기에 그들은 돈에 대한 집착도 없으며 밥에 대한 치열함도 없고,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마는 생활을 즐기는 어쩌면 최고의 자유인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실패한 충격으로 인해 근로의욕을 상실한 채 방황하는 생활의 고단함과 어쩔 수 없이 노숙자 생활을 해야 하는 서글픔으로 인해 돈 욕심도 있고 좋은 음식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있을 것으로 지레짐작한 것과는 전혀 딴판이라는 것이다.


길거리를 방황하는 사람들 즉 노숙자에게 가장 필요할 것 같은 돈과 밥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것 그것 참 믿기지 않는 일이다.


물론 노숙자들이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사람이 욕심을 버린다는 것, 어쩌면 무소유를 실천하는 법정스님 같은 高僧(고승)이나 故(고)김수환 추기경 같이 고고한 분들이나 가질법한 초 절정의 마음가짐을 노숙자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에 필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필경 인간이라면 권력과 돈 그리고 사랑 등 잡다한 욕심이 가득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노숙자로 살면서 돈이나 밥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다니? 인간이라면 오래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인데 하물며 노숙자들이 자기를 노숙자로 만든 돈에 대한 욕심이 없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더니 남들이 보기엔 그저 불쌍하게 생각하던 노숙자들이 오히려 “아이고! 각종 욕심에 가득 차 있는 저 한심한 인간들! 내가 보기엔 니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을 것을 생각하니 부끄러워 이제 더 이상 노숙자를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을 것 같다.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억울하다고 항변하며 검찰에 불려 다니는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에게 노숙자 얘기를 꼭 들려주고 싶다.


사람이기에 욕심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나치면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노숙자 이야기! 지나친 욕심을 버린 빈자리에 항상 간직해야겠다. 사실 얼마나 지켜질지 자신 없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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