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9. 12. 10.
등산의 교훈
김 세 현
행정학박사 / 호원대겸임교수
어느 개그맨이 삶에 지친 동료에게 평생 헬스회원권을 마련해주겠다고 데리고 나서 인근 북한산에 함께 올랐다고 한다.
그냥 등산가자고 했으면 분명히 따라가지 않았을 테지만 웬만한 헬스회원권이 수억에 달하는 시대이다 보니 설레어 따라나섰고 평소엔 뒷산도 오르지 않던 그가 그 후엔 등산매니아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등산만큼 큰 돈 안들이고 운동도 하고 좋은 공기와 성취감을 맛보는 스포츠도 드물 것이다.
혼자 하는 등산도 있겠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가방에 오이 몇 개와 막걸리라도 한 병 차고 올라가 정상에서 한잔씩 돌려 마시는 맛이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꿀맛이다.
히말라야를 비롯한 오르기 어려운 세계의 유명한 산을 오르며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전문 산악인들은 산이 있기에 오르지만 우리 서민들은 적은 돈으로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산에 오른다.
예전에 김영삼 전대통령은 민주산악회라는 것을 만들어 전국에서 모인 민주화 동지들과 산에 올라 우애를 다지며 미래를 기약했던 모습도 떠오른다.
인근의 북한산만 올라도 족히 두서시간을 걸어 올라야 한다. 체력이 건장하고 평소 등산을 많이 경험한 이들은 모르겠지만 일반인들은 정상까지 오르기가 상당히 버겁다. 그래도 앞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언제 왔는지 모르게 중턱에 서 있다. 물론 앞만 보고 열심히 올라왔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또 힘은 얼마나 썼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정상만 보고 올라간다.
우리는 산을 오르며 자연의 위대함에 몸을 낮추고 나약한 인간들의 허무한 욕심을 나무란다. 거대한 산에 함부로 도전하거나 산을 얕잡아보면 반드시 후회하는 일이 생긴다.
한 여름에도 산정상의 기후는 급변 할 수 있고 하산할 생각 없이 막걸리 마시며 오래 머물다간 낭패 보기 일쑤다. 정상에 머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으며 산 아래를 굽어보며 모든 것을 다 얻은 승자의 표정을 짓는 것도 순간에 불과하고 내려갈 길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서 공부하다가 직장 혹은 사업에 열중해야 하고, 아이들 낳아 뒤치다꺼리 하다보면 어느새 중년이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기업의 CEO도 돼 있고, 권력의 중심부에 오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남들보다 더욱 노력해서 빨리 성공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이 현실이고 조금 있으면 후배나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권불 10년도 옛말이다. 요즘의 권력은 불과 2~3년이다. 죽을 고초를 겪거나, 어쩌면 너무 쉽게 정상에 오른 사람들 많이 봐왔다.
권력! 사실 잡아봤자 별거 아닌데, 물론 주변에 함께 고생한 사람들은 다 보상받겠지만 본인은 정작 일 좀 하려다 보면 벌써 하산을 생각해야 한다. 물론 하산 길은 겨울이다. 미끄럽기기 그지없지만 손잡아 줄 사람도 별로 없다.
힘들게 산에 올라 정상에 서 있는데 알아주는 사람 별로 없는 것이 또 산이다.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은 낮은 산에 오르는 사람에 비해 위험한 것 역시 당연하다.
봄에 산에 오를 때는 여러 사람이 함께 올라 몰랐지만 겨울에 산에서 내려올라치면 힘들기 짝이 없다.
대통령선거를 치룬지가 벌써 2년이 지났다.
이 대통령의 임기도 어느 덧 중반이다. 어쩌면 쉽게 올랐을 수도 있고 어쩌면 힘들게 올랐을 수도 있는 정상의 자리다. 지난 2년 일 같은 일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힘들게 보냈다. 이제 남은 3년은 지난 2년 보다 더 빠르게 지나갈 수도 있다.
산에 오를 때의 겸손한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고, 정상에서 그리 오래 있지 못함, 그리고 하산 길에 서로 손을 잡지 않으면 미끄러질 수 있다는 것, 등산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그나저나 세월 참 빠르다. 정상을 노리는 분들에게 길게 느껴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