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0. 01. 24.
임플란트의 名家(명가) 대한치과를 찾아서
“아무리 해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한 상 학 원장 의 촌놈정신은 그가 가진 최고의 덕목이다”
대한치과 한상학원장은 보문동에서만 17년 동안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1994년부터 보문동에서 치과를 개업해 현재까지 보문동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다른 치과들이 돈버는 강남으로 이전할 때도 꿋꿋이 보문동을 지키면서 의료봉사를 마다하지 않는 대한치과 한상학원장을 찾아 그의 병원 운영 철학을 들어보기로 한다.
- 언제 보문동에서 개업하게 되었는지요.
1994년 제가 처음으로 서울을 올라와서 만난 곳이 이곳 성북구 보문동입니다.
지역분들과 같이 호흡한지도 벌써 17년이 지났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곳 보문동은 마치 고향처럼 느껴지고 성북구분들은 이제 다정한 이웃이 되었습니다.
- 남다른 성북사랑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특별히 지역을 위해 일한 것은 없는 것 같아 창피하고 쑥스럽지만, 굳이 말씀드린다면 지역분들의 건강한 차아관리를 위해 기본적으로 진료에 충실하고자하는 것이 가장 성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직업이 치과의사인지라 저를 찾아온 환자분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중요한 봉사의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봉사의 시작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많이 부족한 저를 믿고 진료를 받으신 환자를 위한길이 무엇이냐를 생각해보면 바로 이분들과 대화하고 호흡하는 길이 무엇일까를 늘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모임을 만들어서 환경정리차원에서 보문동과 안암동사이를 흐르는 성북천을매주 일요일 아침에 주민들과 청소를 하면서 주민들과 소통을 했고, 그때 느낀 점은 보문동 지역사회의 시민의식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즘은 금우집수리봉사단 부회장 자격으로 한달에 1회 저소득층가정의 집수리를 하는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집수리 봉사를 하면서 열악한 상황에서 남은여생을 보내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사회복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기도 했습니다.
자주는 참석하지 못하지만 우리 회원님들께서 성심성의껏 벽지나 장판 전기 씽크대 등등을 수리해 드리고 새로 교체도 해주십니다.
저는 그저 청소나 조금 도와주는 정도구요 정말 내일처럼 열심히 봉사하는 회원님들을 보면 많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 치과의사가 된 동기가 특별히 있는지요.
제가 대학에 입학할 시점인 1981년에는 솔직히 요즘처럼 대학의 학문범위가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의대, 사대, 문리대, 공대, 농대, 미대, 체대등 간단했어요.
주로 이과생들의 진학분야인 공대와 의학계열중에 선택을 했어요.
솔직히 요즘 같았으면 아마도 다른 전공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어요, 중학교 때 만해도 법대 지망생이었습니다만 고등학생이 된 후에 집안에 불행하게도 많은 병마가 부모님에게 나타났습니다. 아마 이 때 마음속에 무의식적으로 의대에 가야겠다는 마음속 결정이 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이 병마와 싸우시는 모습으로보고 병이란 무엇일까를 고심했지요.
그래서 대학을 졸업을 한 후에도 암에 관한 연구와 수련을 계속 하고 싶어서 미생물학을 2년동안 공부를 했습니다만 결국 치과의사가 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하늘이 이곳 성북에 와서 치과를 개업해 성북구 주민들과 함께 살라는 뜻이 아니었나도 싶습니다.
- 환자관리가 특별하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병원관리에 어떤 노하우가 있는 지요.
하하하, 저는 관리를 아주 못한 분류에 속한 의사라고 생각하는 데 그렇게 서문이 났다면 아마 환자분들과 대화를 많이 해서 인가 봅니다.
저는 무슨 병이든 환자와 의사간에 대화를 많아 해야 그 병을 완치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저 저는 멀리 보고요, 제 병원에 찾아오신 환자분들은 바로 내 부모형제같이, 바로 내 자녀라는 생각으로 제가 아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진료를 하는 자세가 아마도 저의 노하우라면 노하우인 것 같습니다.
- 부인도 같은 치과의사라고 들었습니다. 같이 운영하고 계신지요.
제 처와는 대학 동기입니다. 실은, 같은 학교를 함께 6년동안 같은 교실에서 강의를 들었 어도 대화 한번 하지 않은 관계였습니다만, 같이 인턴생활을 하면서 가까워졌지요.
처는 치과교정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수여받고 같은 병원에 함께 일을 하다가 요즘은 늦둥이를 키우느라 집에서 자녀교육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함께 근무하다보면 같은 시간에 같이 공부를 했어도 서로 생각이 달라 젊었을 때는 많이 다투었지요.
지나고 보니까 그 시절에 공부가 많이 된 것 같아 아이들이 어느정도 성장하면 같이 일할까도 생각중입니다.
- 요즘 치과계에서 인기있는 임플란트는 언제부터 하셨는지요. 그리고 여러 의사들에게 세미나도하고 한 수 지도를 해준다고 들었습니다.
창피할 정도입니다, 별로 실력이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항상 생각하고 진료에 열중하고 있는 편입니다.
진정으로 저보다 훌륭한 선배님들께서 너무나 많이 계시고요, 감히 제가 조금 안다고 말씀 드리기에는 미천한 실력입니다.
벌써 세월이 많이 지난 것 같습니다만, 대략 20여년전에 엄청난 회오리바람과 함께 거대한 태풍같이 아주 미스터리 같은 학문이 스며들었어요.
바로 임플란트였죠. 임플란트는 지금까지의 의학의 철학을 다 뒤집어버린 것 말고도, 의학의 기초를 뒤 흔드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기초의학을 전공한 것이 큰 힘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당시에 “바로 이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초기에는 아주 몇 명 되지않는 의사들만 참가하면서, 어찌보면 독학하는 자세로 이분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대다수의 의사들이 반의반감할 때 저는 과감히 투자를 하고 개척해나가면서 주변 동료나 선후배님들께 적극 권장하고 함께 세미나도 열면서 이 분야의 지식습득에 열중했습니다. 지금도 그 세미나는 계속진행하고 있습니다.
- 주민들을 위한 간단한 치아관리방법에 대해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의학의 기본은 예방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것만 철저히 잘 지키면 병마로 인한 고통과 많은 의료비지출로 인한 괴로움은 없을 거라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치과분야는 진정으로 예방이 중요합니다. 아마도 전 인류가 생활하면서 유일하게 세계 어디를 가도 실천하고 있는 건강예방 프로그램이 양치질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만 봐도 국민의료비 요양비 지출 상황을 보면 치주염치료비가 감기보다 더 많은 경비가 소요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봐야합니다. 그 많은 경비와 시간을 할애해도 발병이 된다는 것은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정성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지요.
예를 들어 제가 칫솔질을 5분을 한다고 가정해보죠, 그러면 얼마정도의 찌꺼기가 제거된다 고 생각하십니까. 불행히도 60%를 넘지 못합니다. 이처럼 정확한 칫솔질은 무척이나 힘들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2분도 못한 경우가 허다할 뿐만아니라 하루에 3회도 못 한경우가 비일비제합니다.
항상 정성껏 닦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 강조합니다. 일반적으로 방청소를 할 때 구석구석 닦아 내듯이 구강내의 사이사이를 잘 닦은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실과 치간치솔 사용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신년 계획이 있을 것 같은데 한 말씀 부탁합니다.
사실 의사도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올 해도 역시 열심히 공부를 계속하고자 합니다.
지난 17년 보다 앞으로의 30년을 내다보고 주민들과 대화도 하고, 하늘의 축복으로 태어난 늦둥이와도 많은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기회가 되면 지역분들과 더욱 봉사하는 길이 무엇인지도 상의해 보려고 합니다. 주민들과 늘 함께하면서 그들이 바라는 좋은 동네 만들기에 함께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따르겠습니다.
한상학 원장은 전라도 사투리가 심하다. 그리고 지역분들과 허물없이 호형호제 하고 지낸다. 아마 그가 어릴 때 자란 시골의 따뜻한 情(정)을 그대로 보문동에 전파하려는 것일까?
때로는 젊잖 떨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는 촌놈이기 때문이다. 한원장의 성공비결은 바로 촌놈 정신으로 보인다.
의사가 촌놈정신으로 무장했으니 환자들이 편한 것이다. 아무리 해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한 원장의 촌놈정신. 그것이 바로 그가 가진 최고의 덕목이지 싶다.
김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