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0. 05. 20.
유머와 가벼운 입
김 세 현
행정학박사 / 호원대겸임교수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격언이 있다. 얼마나 상대방에게 진솔하게 대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으로 알고 있다.
요즘 젊은 여자들은 신랑감으로 유머가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한다. 어느 자리에서나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사람이 인기가 있어 주변의 부러움을 사며, 유명 연예인 중 유재석이 인기가 많은 이유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분위기를 잘 이끌어 가기 때문이라고 하니 세상 살아가는데 유머감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강조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최근 유럽 각국 지도자들의 가벼운 입이 유로존의 경제위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전해진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14일 TV인터뷰에서 “유럽이 재정위기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할 수 있는지 여부는 미지수”라고 말해 주가와 유로화 하락을 부추겼고, 그리스의 파판드레우 총리는 “부채 상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유로존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다가 “유럽이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을 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외국 총리야 그렇다치고 우리 한국에는 정운찬 국무총리가 故(고) 한주호 준위의 고향집을 방문한 자리에서 “잘못된 약속도 지키려는 여자 있다”는 농담을 던져 주변을 놀라게 하더니, 어느 모임에서는 “나도 충청도에 살고 있었으면 당연히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충북경제자유구역 지정문제를 전격 지시한 것과 관련해서 “그동안 나는 시기상조라며 반대했는데 나만 바보가 됐다. 뒤통수를 맞았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어느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잘못된 약속도 지키려는 여자 분이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던 것 같고요.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게 실수입니다. 정운찬 총리께서 착하고 그런 분인데 또 한편으로는 농담을 잘하세요. 근데 그게 사실 잘못, 실수를 저지르신 거죠.”라고 하면서 정총리를 두둔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총리도 사람인지라 얼마든지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때론 실수도 하고 그래야 인간미도 있고, 딱딱한 일과에 기자들과 농담도 던지며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사석에서 그런 말들을 쏟아 내는 것을 보면 정 총리가 많이 지쳐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천안함 사건이 아직 해결되지도 않고,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故(고) 한주호 준위의 부인을 찾아간 총리의 입에서 그런 농담이 나왔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의 총리는 유럽의 총리들과는 다르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은 내각제이기 때문에 총리가 전권을 행사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총리는 내각의 수반이긴 하지만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보좌 역할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박근혜 전 대표나 이명박 대통령에게 서운한 것도 있을 것이다.
대학의 총장 시절이야 짜여진 일에 시간만 내면 그만이지만 나랏일은 그리 녹녹치 않다. 또한 다양한 변수를 가진 정치판과 정치쪽에만 머리 좋은 정치인들을 상대하기엔 정총리는 어쩌면 너무 순진한 사람일 수도 있다.
정두언 의원의 말대로 착하고 농담도 잘하는 학자 출신 정총리가 정치라는 바다에 던져져 갖은 풍랑을 만나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그러나 큰 정치인이 되려면 다른 것은 몰라도 가벼운 입은 꼭 닫아야 한다. 농담도 가려서 해야 하고, 실수나 잘못도 한 두번을 넘으면 그 말에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운찬 총리 정도면 시장바닥 선술집에서 필부들이 하는 농담이 아닌 윈스턴 처칠 같은 명품 유머를 해야 이름값을 하는 것이라 생각이 드는데 정총리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