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0. 05. 26.
空約(공약) 선거
김 세 현
행정학박사 / 호원대겸임교수
지방선거에 한꺼번에 8명을 뽑는 선거를 하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 찾아보면 있겠지만 이번 6.2 지방선거가 너무 복잡하다보니 아예 선거를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까 걱정이다.
하도 출마자가 많아 여길 가도 어지러운 현수막에, 저길 가면 유세차량이 양쪽에서 시끄럽게 하고, 전철역 앞에는 각양각색의 옷과 모자를 눌러쓴 운동원들이 지지후보의 이름을 외쳐대고, 로고송의 홍보음악까지 비슷해 정말 누가누군지 헷갈려서인지 시민들은 외면이 점점 더해간다.
길거리에 어지럽게 널린 현수막에 써 붙인 公約(공약)이나 유세차량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듣다보면 어이없는 空約(공약)에 어리둥절하다. 구의원이나 시의원 출마자들은 자기들이 마치 구청장이나 시장 후보인양 온갖 空約(공약)들을 쏟아 내고 있다.
저 많은 일을 하려면 우리나리 예산을 다 써야 할 것도 같고, 거기에 25개 구청장과 서울 시장의 公約(공약)까지 합하면 이건 뭐 계산이 안 나오는 수치이건만 당선만 되고 보자는 식의 空約(공약)들을 저렇게 쏟아내고 당선되면 누가 책임질지 정말 걱정이다.
구의원과 시의원은 구청과 시청을 감시 감독하는 의회기관이지 예산을 집행하는 집행기관이 아니다. 집행기관의 예산은 이미 짜인 틀에 의해 집행해야 하며 예산이 늘어나면 그 만큼 세금을 더 내야 하니 지나친 공약은 결국 세금을 더 걷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
물론 집행부측과 타협하거나 예산결산위원회에 들어가 자기 지역구의 예산을 먼저 가져 올 수도 있겠지만 한쪽에서 가져가버리면 다른 한 쪽의 사업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으며 결국 집행부와 나눠 먹기식으로 결탁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 하는 것이다.
우리 시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정치인을 믿지 않는 풍토가 어쩌면 선거공약의 남발이 그 원인이 되었는지 모른다.
평소에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선거 때만 되면 굽실거리는 척하는 것이 밉고, 이런저런 선거를 많이 치르다보니 선거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우리 시민들이 정치인들을 믿지 않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차라리 구의원 시의원은 다른 공약은 빼고 구청과 시청 관리 감독을 잘하겠다고 하면 나아보이고, 구청장이나 시장은 도둑질 덜 하겠다고 말하는 편이 듣기 좋아 보일 것 같은데 온통 자기들 자랑뿐이니 시민들의 외면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말만 번지르르 하게 하고, 당선되면 다음에 진출해야 하는 자리는 어딘가를 먼저 계산해 보고, 새로운 줄을 서거나 만들 궁리나 하는 선거라는 인식이 이미 시민들의 가슴에 자리 잡은 것이다.
이번 선거로 구의원 선거가 마지막이라고 한다. 정기국회의 최종 통과가 있어야 하겠지만 구의원 선거가 없어지면 구청장 선거도 하지 말아야 한다. 서울시장과 서울시의원만 뽑고 구청장은 임명직으로 변환하는 것이 공평하다.
그래야 구청의 공직자들이 선거에 줄서지 않고 지방자치의 역행을 막을 수 있으며 구청장이나 구의원들의 지나친 空約(공약)으로 빚어진 시민의 불신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선거를 안 할 수도 없고, 좋은 후보는 안 보이고 그놈이 그놈인데 줄줄이 표로 한 번호에 냅다 찍어대자.” “설마 나하나 안 찍는다고 나라가 망하겠어!”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空約(공약)이 더 성행한다. 이번 선거부터라도 꼭 투표에 참여해 시민정신을 발휘하는 일이 정치인들이 시민을 깔보는 것을 막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