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1. 04. 14.
세종대왕과 신사임당
김 세 현
행정학박사 / 호원대겸임교수
한때 잘 나가던 일본이 대자연의 힘 앞에 우왕좌왕하고 절대 권력을 행사하며 호위 호식하던 자들은 쫓겨나거나 내전을 치르는 등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도 한때 남성들만의 영역이라고 여겼던 군대나 검찰 그리고 법원에 여풍이 불고 있으며, 정치권에도 서서히 여걸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세상은 역시 변화무쌍한 곳이다.
돈만해도 그렇다. 민족의 큰 스승으로 존경받는 세종대왕을 1만원권 지폐에 새겨 넣어 그 분의 인본사상과 애민정신을 본받으려고 했지만 세월에 밀리다 보니 5만원권 지폐가 나오고 드디어 심사임당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고 말았다.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다. 신사임당은 율곡 형제를 가르치느라 일생동안 놀이 한번 간 일이 없으며 시, 서, 화의 여류명인일 뿐 아니라 어버이에게 지극한 효녀였다고 한다.
특히 신사임당은 현모가 되기 위해 출가 전부터 여성, 내훈, 여범, 열녀전, 명감, 소학 등 여성교훈서를 읽으면서 자신의 목표를 부부, 효친, 모의, 부의, 돈목, 검소에 두고 현모양처의 교육적 인간상을 그리면서 부덕, 부언, 부용, 부공 등 여유사행에 힘썼다고 한다.
한마디로 현모양처의 대명사인 분을 오만원권 지폐에 넣은 것을 보면 여성들에게 신사임당 같은 여인이 되라는 것인지 남성들에게 신사임당 같은 부인을 얻으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변화무쌍한 현대사회의 여인상으로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시대에 오만원권에 그려진 것이 조금은 의아하기도 하다.
아무튼 오만원권 지폐가 나온 2009년부터 세종대왕의 시대가 가고 신사임당의 시대가 도래했다. 한때 세종대왕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속설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시중에 풀린 오만원권이 20조원, 일만원권이 20조원 정도가 굴러다닌다고 하는데 일반인들은 오만원권을 보기 힘들다고 한다. 오만원권이 각종 뇌물이나 검은돈으로 사용되다보니 4억장이나 되는 지폐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마늘밭에서 110억원이 묻힌 오만원권이 발견 됐다. 도박 사이트를 운영해 번 돈을 감출 요량으로 땅에 묻은 돈을 경찰이 찾아낸 것이다. 그동안 오만원권이 땅속으로 몽땅 들어갔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근거 없는 소문은 없다는 것도 맡는 말인 듯싶어 찜찜하다.
돈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도구다. 이런 돈에 세종대왕이나 신사임당을 그려 넣어 돈을 쓸 때마다 그 분들의 업적을 기리고, 그 돈이 민족의 중흥에 유용하게 쓰이는 가치있는 도구가 되어야 함에도 부정한 일에 쓰이는 돈으로 인식되게 한 우리 후손들이 부끄럽다. 그렇다고 돈에 독재자나 악인의 얼굴을 그려 넣을 수도 없으니 사회지도층이라도 돈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고 돈에 그려진 분들을 욕되게 하는 짓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이번 일로 인해 도굴꾼들이 논밭을 헤매거나 저택의 정원이나 나무를 파헤쳐 대는 것은 아닐까? 같은 죄라도 문화재를 몰래 도굴하는 것보다 검은 돈을 찾아내어 쓰는 편이 훨씬 마음은 편할 수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