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1. 05. 19.


팝아트의 성장

 

 

 

 

 

 

전 윤 종 기자

 

 

 

 

이제는 더 이상 팝아트라는 단어가 생소하지 않은 시대다. 팝아트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아마 앤디 워홀이나 백남준같은 팝아트 아티스트의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미국에서 파생된 문화라고 알기 쉽지만 사실 팝아트의 전조는 1950년대 초의 영국으로 본다. 당시의 영국 문화는 1945년을 기점으로 많은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시기였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영화등과 같은 대중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매체들과 음반이 출현한 시기였고 이로 인해 외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국의 대중문화를 전 세계로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위에서 팝아트는 자연스럽게 영국에서 미국으로 전파되었고 이 후부터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팝아트적인 성격이 구체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구체화된 팝아트는 1950년대 중반부터 당시의 대중 문화적인 이미지를 활용하면서 그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팝아트는 팝아트 아티스트들의 작업적 특징으로 인해 새로운 다다이즘이라는 \'네오 다다\'로\'신사실주의\'로, \'신통속주의\'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규정되어 오면서 다양한 관심을 받아왔을뿐만 아니라 동시에 많은 논쟁거리를 만들며 성장해오고 있다.
팝아트의 성공에는 텔레비전이나 다른 여타의 매스 미디어, 당시에 유행하던 상품광고,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유리벽, 고속도로변의 빌보드와 거리의 교통표지판 등등의 다중적이고 일상적인 것들을 차용해서 각각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의미에서 더 나아가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었고 단순한 청량음료에 머물지 않고 문화의 한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코카콜라와 당시에 하위장르라 생각되었던 그래픽 노블 속의 주인공 등과 같이 모든 사람이 매우 접근하기 쉬운 소재들을 선정해서 미술 속으로의 접목을 강행, 모든 예술을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단지 이 둘로만 나뉘고 있던 이분법적인 생각과 위계적 구조를 불식시켰다.
이러한 팝아트의 성장은 산업사회의 현실을 미술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한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바로, “네오 다다”로 불리웠을 정도로 다다이즘의 성격을 이어받았던 표현방식이 이 후 다다이즘에서 추구했던 반(反)예술적인 정신을 미학화 시켜 상품미학에 대한 진정한 비판적 대안의 제시보다 소비문화에 함몰되어 그것에 굴복했다는 비판이다. 
이와같이 팝아트에 대한 여러 논쟁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작품의 상업적 가치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시장논리에 따라 상업화 되어가고 있는 상황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얼마 전 내한했던 제이 쿤스의 작품은 현재 시가 300억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금액이다.
영국에서 젊은이들의 사회에 대한 비판의 한 표현으로서 등장했던 문화가 오늘날 엄청난 상업적 가치를 지닌 문화로서 성장한 것을 보면 문화의 시대상을 알 수도 있을 듯하다.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진 팝아트, 때마침 “L.O.V.E"로 유명한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들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시간적 여유가 허락된다면 전시회를 찾아 작품
감상을 해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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