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1. 06. 22.
부패 공화국
김 세 현
행정학박사 / 호원대겸임교수
“나라 전체가 썩었다.” 賣官賣職(매관매직)이 횡횡하던 조선시대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17일 이명박 대통령이 70여명의 장차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일개 사기업의 사주가 한말이 아니라 일국의 대통령이 한 말이라면 나라의 공직사회가 부패공화국이라는 말이나 진배없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공직의 최고 자리 즉 총 책임자인 대통령의 입에서 나라 전체가 썩었다는 말이 서슴없이 나올 정도면 공직사회가 짐작할 만하다.
조선시대도 나라가 안 망하고 잘 넘겼는데 이제라도 바로 잡으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나,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시간이나 때우면 되겠지 할 수도 있는데 대통령이 작심하고 질타하는 것을 보면 부정부패의 상태가 꽤 심각한 지경인가 보다.
조선시대야 절대왕권인지라 왕에게만 잘 보이면 권력을 좌지우지 해 몇 명 안 되는 암행어사쯤은 수하로 둘 수가 있었다지만, 요즘은 세상이 투명한데다 검찰과 경찰, 감사원, 각종 감독원, 국민권익위원회를 비롯한 각 부처의 감사관 및 국영기업체의 감사까지 수만명의 암행어사들이 깔려있는데도 나라전체가 썩어가는 것을 방치했다면 그들끼리 서로 짜고 해 먹은 것이라고 밖에 단정 지을 수 없는 노릇이다.
옛날이야 왕들이 간신배들에게 둘러싸여 言路(언로)가 막혔기 때문에 부정부패가 심했다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이를 막을 수 있다. 대통령이 자기와 같은 고향사람이나 학교동문 혹은 같은교회 다니는 사람들로 진용을 짜서 나라를 움직이다보면 서로 잘 아는 사람끼리 밀고 당기고 돌아가면서 다해 먹는다. 이를 감시해야 할 사람들 역시 대통령을 도와 선거운동을 했던 사람이거나 그 사람들(소위 실세)의 추천으로 좋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이쯤 되면 부정과 부패, 내통은 당연한 일이고 대통령은 그저 “다 내사람들인데 잘되고 있겠지”하다가 뒤통수 맞고 그때서야 “나라가 다 썩었다” 고 소리 지른다.
어디 그 뿐인가. 서울시를 포함한 전국의 광역과 지방 자치단체까지 들추다 보면 숨이 막힌다. 그저 모르는 것이 건강에 좋을 뿐이다.
대통령이나 단체장들이 고향사람, 학교동문, 같은 교회 다니는 사람을 우선 찾는 이유가 서로 잘 알고 믿음이 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잘 아는 사람을 쓰거나 혹은 그 사람들이 추천한 사람을 쓰려고 한다. 사실 대통령이나 단체장들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쓸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사고 치지 말고, 그저 걸리지 말고 運(운)좋게 지내다 나가주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정도 부패로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보다 더한 조선시대도 넘겼고 소수의 부패한 고위공직자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다수의 공직자들의 수가 훨씬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냥 기분이 상하고 이 나라 국민인 것이 부끄럽고 짜증난다. 고위공직자의 부패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물론 본인도 이 정도 일 줄은 몰랐겠지만 사실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이상 일수도 있다. 대통령이 화낸다고 단번에 어쩔 수 없는 일도 아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줄 한번 잘 서면 평생 먹을 것이 주어지는 시스템이 문제고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회풍토를 탓할 뿐이다.
나라의 대통령은 나라가 썩었다고 하고, 국민은 4대강 주변이 쓰레기로 인해 썩어 간다고 말한다.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사람도 썩고 땅도 강도 썩어 가는 세상, 눈과 코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