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1. 08. 24.
임재범과 오세훈
김 세 현
행정학박사 / 호원대겸임교수
지난 21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 무릎을 꿇고 울었다고 한다. 24일 치러질 무상급식 투표를 독려하기 위한 초강력 정치 쇼라는 비난을 받을 것을 충분히 계산했을 오시장이 무릎을 꿇은 것에 모자라 회견 중에 눈물을 여섯 번이나 흘린 것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옛말에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 는 말이 있다. 태어날 때와 부모님의 喪(상)을 당했을 때, 그리고 나라가 망하거나 망할 처지에 있을 때라고 알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남자는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가르친 이유는 남자가 자주 울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니 남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 남자들은 자주 운다. 군대 갈 때도 울고, 직업을 못 구해 돈이 없어 울고, 시험에 낙방해도 울고, 심지어 여자 친구에게 차여도 우는 세상이니 남자의 눈물은 이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철인 삼종 경기에 참가할 정도로 강한 남자,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지낸 남자 중의 남자(?)인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개적으로 울어버렸으니 그동안 알게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를 창피하게 여겼던 남자들이 조금은 홀가분하게 생겼다.
오시장이 무릎 꿇고 눈물 흘린 것에 대해 일부 비판적인 언론은 ‘나는 가수다’의 임재범을 모방했다고 비아냥거렸다. 임재범은 나가수라는 프로에 출연해 호소력 있게 노래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어 방청객과 시청자의 눈물을 자아냈고 일약 국민적인 스타가 되었다. 오시장도 눈물을 흘리고 무릎까지 꿇은 것을 보면 뭔가 울컥한 것이 있었나 보다.
가수는 3분 내지 4분여의 노래로 청중과 시청자를 감동 시킨다. 그 3~4분에 한편의 서사시나 영화 같은 감동을 주는 가수들의 에너지가 놀라울 뿐이다. 정치인들은 연설을 자주한다. 미국의 케네디나 영국의 처칠 등 유명 정치가들은 명연설로 군중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정치인들만 있지, 정치가가 없기 때문이다. 똑같이 세치 혀를 동원하는 연설이지만 정치가의 연설에는 진심이 있고 정치인들의 말에는 사심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오시장의 기자회견을 본 시민들은 오시장의 무릎 꿇음에 대해 판단 할 것이다. 오시장이 무릎을 꿇을 정도로 서울시민에게 잘못한 일이 있는 것인지? 서울시민이 아니라면 오시장이 과연 누구에게 무릎을 꿇은 것인지? 임재범처럼 갖은 고생을 다하다가 뒤늦게 빛을 본 경우도 아닌 것 같은데 서울시민에게 무슨 감동을 주었기에 저렇게 눈물을 흘리는 것인지? 그 진심여부를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가수는 청중을 울게 만든다. 가수가 스스로 울어버리면 울음은커녕 그 감동은 사라진다. 코미디언이 남을 웃겨야 하는데 자신이 먼저 웃어버리면 무슨 꼴인가?
오시장은 가수가 아니다. 일부러 청중을 감동 시킬 것 까지도 없다. 서울시장은 울면서 기자회견을 할 것이 아니라 서울시민을 웃게 만들 책임이 있는 자리다. 지금 우리 경제는 景氣(경기)가 침체되고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고 있다. 우리 서울시민은 무상급식을 단계적으로 하든, 전면시행하든 이미 지난 선거에서 정치인들에게 위임했다. 자기들끼리 협의할 내용을 가지고 182억원을 들여 주민투표까지 가야하는 여야의 정치력 부재를 탓할 뿐이다.
어려울 때를 잘 넘기는 지혜, 그것이 지도자를 가리는 길 일진데 투표율이 오시장이 원하는 만큼 나오기 힘들어 보이고, 이만한 일에 시장직을 거는 오시장의 결단을 보면 정치인 오세훈이 가는 길은 아무리 봐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