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1. 08. 31.
善意(선의)와 대가성
김 세 현
행정학박사 / 호원대겸임교수
정몽구 현대차그룹회장이 저소득층 자녀들의 교육기회 제공을 위해 사재 5000억을 기부했다고 한다. 정회장의 통 큰 기부가 선의에서 비롯됐는지 다른 이유에서 어쩔 수 없었는지 모르지만 향후 굴지의 대기업가들의 사회환원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선의든 다른 이유든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더욱이 그 선행이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돌아가 궁극적으로 국가 발전에 기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돈은 그렇게 쓰는 것이다. 따라서 어려운 학생들이 학자금 대출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며 이리저리 돈을 빌리러 다니는 것이 안타까워 큰돈을 기부한 정회장의 진정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善意(선의)는 이렇게 좋은 뜻으로 돈을 내놓는 것이다. 반면에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에게 돈을 주고받는 일은 아무리 좋은 뜻으로 전했을지언정 잘못되면 대가성 있는 뇌물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어려움에 처한 동료교수에게 2억원을 건넸다고 한다. 물론 검찰은 대가성 있는 돈으로 규정했고 곽교육감은 선의로 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돈을 받은 교수는 다름 아닌 교육감 후보였으며 그 돈은 교육감 후보사퇴의 대가성이라는 검찰의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곽교육감은 법학교수 출신이라 누구보다 법을 잘 알 것이다. 그런 그가 2억원이라는 큰돈을 다른 사람도 아닌 경쟁자였던 사람에게 그냥 선의로 전달했다고 주장하며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에 대해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곽교육감 취임 이후 수많은 교장들이 교단을 떠났다. 교육자로서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오랜 관습처럼 죄의식 없이 잔돈푼을 받아 챙겨 썼다는 이유에서다. 30년 이상을 교단을 지키며 수많은 棟梁(동량)을 키워낸 교장들이 조그마한 실수로 인해 마치 큰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며 쓸쓸이 퇴장해야 했다. 물론 교육계는 어느 분야보다 맑고 깨끗해야 한다. 그러나 고의와 선의를 구분하지 않고 마녀사냥처럼 일괄 매도되는 현실에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한 것이 사실이다.
곽교육감은 서울시교육청의 首長(수장)이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바른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기도 하지만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보호하고 지도할 책임도 있는 자리다. 자신은 善意(선의)라며 2억원을 선뜻 내놓으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면서 명절에 돈 몇 푼 받은 교장들에게는 일벌백계라니 아무리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명예는 한번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힘들다. 교장으로서 받은 돈이 선의 혹은 관례인줄 알았던 교장들은 변명도 제대로 못해보고 교단을 떠나야 했다. 곽교육감이 건넸다는 2억원이 대가성이 있는 돈인지 그의 주장대로 선의인지는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곽교육감의 태도에 화가 날 뿐이고 만약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없었다면 모르고 지나갈 뻔도 했던 사건이라 더욱 기분이 상한다.
이미 도덕적으로 상처를 입은 곽교육감의 진퇴문제는 스스로 결정할 일이겠지만 자신은 아닌척하면서 다른 사람의 조그만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首長(수장), 그런 사람이 어디 곽교육감 뿐일까?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