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1. 10. 05.
조직 對(대) 바람
김 세 현
행정학 박사 / 호원대 겸임교수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 민주당이 후보를 못내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를 두고 중앙 일간지들은 민주당의 굴욕 혹은 몰락이라면서 앞으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와 박원순 범야권 후보간의 대결을 조직 대 바람으로 몰고 가고 있다.
박원순 바람이 거세긴 거센 모양이다. 안철수 바람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겠지만 민주당이라는 거대 야당의 조직을 손쉽게 이기고 향후 본선에서 한나라당의 조직을 얼마나 흔들어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박원순 후보가 민주당을 선택할지 무소속으로 선거를 치를지 아직 확정은 안됐다지만 바람 앞에 무참히 쓰러져 언론과 서울시민에게 창피당한 민주당과 손학규 대표의 사정이 우선 딱해 보인다. 정권을 두 번씩이나 차지했던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도 못 낸다면 정당의 존립 근거가 흔들릴 수도 있으며 이러다가 내년 대선에 또 다른 시민후보를 꾸어 와야 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어 보인다.
한나라당의 사정도 거센 바람 앞에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 박근혜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느니, 그럴 경우 안철수 원장도 가세하면 조기에 대선정국이 달구어져 손해라는 등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박근혜 카드를 쓸까말까에 대한 손익을 따지기 분주해 보인다.
사실 자연의 바람은 그리 오래 불지 않는다. 아무리 센 강풍도 길어야 며칠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에 불고 있는 바람은 심상치 않다. 그만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뜻이다. 세계경제의 불안과 국내 물가의 폭발적 상승, 저축은행 사태와 일부 청와대 참모들의 비리 등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가득할 때 오세훈 시장의 이상한 투표와 갑작스런 사퇴, 그리고 일개사업가(?)와 대학원장에 불과한 안철수라는 사람이 불어 넣은 변화의 바람은 어쩌면 서울시민이 기다리던 바람이었다.
이번 안철수 원장이 불어넣은 이 바람은 나쁜 정치인들을 다 날려버리고 새롭게 정치권을 짜라는 서울시민의 준엄한 뜻이지 안철수라는 한 개인의 지명에 의해 서울시장이 당선되고 또 우리 시민이 안철수 씨를 대통령 감으로 선택하려 한다고까지는 믿지 않는다. 단지 정치인들이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각종 비리와 야권의 무능에 대한 견제와 질책의 바람이라고 믿고 싶다.
뿌리가 깊은 조직은 아무리 센 바람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아니 정치인들 말대로 진심으로 국민을 위한다면 꿈쩍 해서도 안 된다. 국가경제가 흥하고 국민이 잘 산다면 못난 정치인들로 인해 생긴 피해 정도는 감수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바람은 오랫동안 정성들여 키운 열매가 다 떨어지고 어쩌면 그 뿌리도 뽑힐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 바람이 자연의 바람처럼 그저 지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 바람이 유·불리에 대해서 여야는 계산해서도 안 된다.
서울시장을 누가 한들 어떤가. 누가 해먹은들 시민을 모두 만족할 시킬 수 있어 보이지도 않아 보인다. 서울시민, 더 나아가 우리 국민은 그저 이런 바람을 즐길 뿐이다. 그래서 이런 바람은 한번으로 끝날 바람이 아니라 가끔 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바람이 너무 자주 불면 바람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 바람을 이용하기 바쁠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진짜 바람이 꼭 필요할 때 그 바람을 불어줄 사람이 남아 있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