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1. 11. 09.
긴급인터뷰
"24시간 걸려있는 불법 현수막 단속하지 않은 것은 구청축에 문제 있어"
"다른 현수막은 떼어 가면서,
구청앞 현수막만 계속 방치하는 것은 청치적 의도가 있는 것!"
신재균 성북구의원, 구청 앞 안암동 철거민 데모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
성북구 안암동의 한 철거민이 요즘 거의 매일 성북구청사 앞뒤 도로변과 성북천변까지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시위하고 있다. 부와 권력으로 자신의 땅과 관련한 재산권을 침해했다며 신재균성부구의원의 실명을 거론하고 성북구청 공무원들까지 그를 비호한 것처럼 규탄 하고 있다.
당사자인 신재균 의원은“그분이 주장하는 바가 정당하다면 법적으로 문제삼으면 된다. 벌써 16년째 저러고 있다. 본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형사처벌도 안 된다는데 대한민국의 법에 문제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민원인 안모 씨가 고려대 땅에 집을 짓고 살면서 학교 측으로부터 철거를 당하게 되자 그 땅과 이웃한 곳에 건물을 지어 인촌고시원을 운영하는 신 의원의 농간으로 여기고 트집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저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고려대가 재판해서 땅을 되찾은 것입니다. 제 건물이 옆에 있다고 저한테 싸움을 걸어온 것인데, 저도 법적으로 대응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 의원은 안씨가 싸워야 할 상대는 자신이 아니라 고려대라고 거듭 강조했다. “벌써 진영호 구청장 시절부터 저렇게 시위를 해 오고 있습니다. 집회신고를 하고 제 이름을 써 붙인 플래카드를 달아놓고 하는 시위는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밤낮 24시간 떼지도 않고 놔두는 것은 불법이에요. 서찬교 구청장 시절엔 안 그랬어요. 낮에 신고가 된 시간에만 플래카드를 붙이고 그 시간 이후에는 떼야 되는 것 아닙니까? 토·일요일은 물론이고 국경일도 현수막을 붙여놔선 안 됩니다. 구청측에 왜 단속을 안 하느냐고 했더니 노부부여서 봐주고 있다는 식이에요.” 이게 말이 됩니까? 신 의원은 법으로 걸어도 자신은 전혀 범법 사실이 없어 자신이 있다며 당당한 태도였다.
“그 분 말대로 ‘떼부자’가 도망을 가겠습니까. 그런데 한 번도 법적으로 소송을 걸어온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24시간 현수막을 붙여놓고 시위를 하는데, 구청도 경찰도 못 건드리고 있어요.”
신 의원은 1948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중·고교를 졸업했다. 학생시절 매일 이른 아침에 신문배달을 하며 고학을 했으며, 그것이 습관이 돼 요즘도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특유의 부지런한 성격으로 건축업을 해 자수성가했다. ‘신일건설’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둘째 아들이 건축을 전공하고 “제이에스건설‘이
▲ 성북구청 정문 앞에 걸려있는 현수막 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해 가업을 이어받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안암동 성북천변의 집은 6층짜리 업무용 건물로 10여년 전에 지어 6층과 옥상 정원을 살림집으로 쓰고 있었다. 기자가 본 건물은 최근 새로 지은 빌딩처럼 외관도 그렇고 내부도 매우 깨끗했다. 엘리베이터로 6층에 올라가 다시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안내되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정도로 옥상은 울창한 숲으로 조경이 돼 있었다. 정자도 있고, 체력단련을 위한 운동기구와 미니골프연습장까지 갖춰져 있었다. 소나무도 몇 그루 눈에 띄었는데, 시멘트 바닥에 두텁게 흙을 깔아놓았다고는 하지만 잘 자라는 것이 신기했다. 그의 부지런하고 섬세한 손길 때문에 멋진 소공원이 만들어져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았다.
“30년 동안 건축일을 해왔고 해왔고 안암동에만 52년째 살고 있는 토박이나 다름없죠.”그는 그 빌딩을 짓고 나서 5층에 동네 학생들을 위해 무료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했다. 그리고 안암동 주민 자녀들과 고려대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의원에 나가면서 선거법에 위반된다는 선관위의 지적을 받고 그마저 계속 할 수 없게 됐다. 지금도 그는 선거법에 문제가 있다며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사업과 무료도서관을 계속 할 수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구의원을 지낸 동네 선배님들이 하도 권유를 해서 안 하겠다고 도망 다니다가 수락을 했지요.”
그는 2006년 첫 출마를 해 당선됐고, 지난 해 6·2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제 아내 덕입니다. 지역사회를 위해 저보다 봉사활동을 더 열심히 하니까요.”
그는 자신의 사업성공과 의정활동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부인 배영자 씨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배씨는 경남 밀양 출신이어서 보기 드물게 영호남이 결합한 부부다. 영호남 지역이 서로 적대시하던 시절 만나 집안에서조차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영호남의 벽을 허무는 화합의 표본이 될 정도로 금슬이 좋은 부부가 되었다.
신의원은 누구보다 가난을 잘 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법적으로 문제만 없다면 장학사업도 계속하고 싶어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구청앞 노부부의 장기 시위는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고 한다. 노부부의 사연도 안타깝고 법적으로 어쩔 수 없는 신의원이 처지도 딱해 보인다. 겨울은 다가오는데 해결의 실마리가 안 보이는 구청앞 시위에 구청을 방문하는 구민들만 고개를 갸우뚱하는 형국이다.
이중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