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2. 05. 02.


거금을 내놓고 생색내기 보다는

어려운 분들을 직접 찾아다니는 청년기업인 
이호건 (주)고려승객 대표이사

 

 

 


 마을버스회사 (주)고려승객의 이호건 대표이사는 올해 34세의 경영인이다. 지난 4월 18일자(본지 제253호)에서 이미 보도한대로, 이 대표이사는 서울성북우체국(국장 변급섭)이 취약계층후원사업 일환으로 추진한 ‘우체국 만원의 행복보험’ 무료가입 행사에 후원금 4백만 원을 기탁했다. 우체국 ‘만원의 행복보험’이란 각종 위험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저소득층 근로가정을 지원하는 상해보험의 일종으로 대표적인 소액서민보험 상품이다. 본인 부담금은 연 1만 원이고 나머지 초과보험료는 우정사업본부의 공익자금으로 지원한다. 보험가입 후 1년 동안 각종 상해로 인한 치료비용과 피보험자 사망시 최대 2천만 원까지 보장된다.


 성북구의회 정형진 의원을 ‘삼촌’으로 부른다는 이 대표는 정 의원에게서 이번 행사의 취지를 듣고 바로 그 자리에서 후원금 기탁을 결정했다고 한다. 
 “저희가 운행하고 있는 마을버스 노선 일대에 사시는 지역주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서 더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 대표기 운영하는 (주)고려승객은 미아삼거리-동덕여대-장위중학교(성북10번), 길음역-고대역(성북15번), 고려아파트-종암동(성북21번) 노선을 운행하는 마을버스 운송업체다. 현재 버스 11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운전기사 25명을 포함 총 3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 마을버스회사를 경영하시게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작은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었습니다. 고향(전라남도 고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 후 상경해 작은 아버지 밑에서 밑바닥부터 일을 배웠습니다. 처음부터 사무나 경영을 한 것이 아닙니다. 재개발되기 전 월곡동에 있던 정비소에서 정비 뿐 아니라 부속품이나 돌아가는 사정들을 배웠습니다. 이때부터 동네 어려운 분들을 많이 접했지요. 재개발이 됐음에도 산동네에 사시던 그분들은 다시 밑으로 내려왔지요. 그래서 그분들 생각도 나고 해서 이번 일(성북우체국 만원의 행복보험 무료가입행사)에도 참여하게 된 거고요.
 그렇게 밑바닥 일부터 배웠고, 회사를 경영하기 위해 필요한 세무나 회계 등은 나중에 학원을 다니며 공부해서 회계관리사 자격증도 땄습니다. 2002년부터 시작했는데 작은 아버지께서 고향으로 내려가신 뒤 제가 이어받았고 올해 10년이 됩니다. 처음에 마을버스 7대로 시작해서 4대를 더 증차해 11대가 됐고, 노선도 한 개 노선에서 시작했는데 제가 2007년도에 노선 한군데를 더 신설 지금은 3개 노선을 운행합니다.”

 이 대표는 걸어 다니면서 직접 노선개발을 했다고 한다. 아파트단지와 주택이 많아 주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상당거리를 걸어야 한다든지 대중교통이 있다 해도 주행간격이 길어서 이용에 불편을 겪는 지역들을 조사했다. 개발기획부터 서울시의 승인이 날 때까지 1년 정도가 걸렸다. 마을버스 운행시간은 새벽 5시 30분부터 밤 1시까지로 이 대표는 하루에 한 대 내지 두 대 정도 탑승해서 운행되는 상황을 살피곤 한다.
 
- 성북라이온스클럽을 비롯해 평소 봉사와 후원 활동을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일들인지 소개해 주십시오.
 “지금 제가 가장 많은 활동을 하는 곳은 성북라이온스클럽입니다. 행사가 있으면 찬조도 하고, 한 달에 얼마씩 모아서 주민센터에서 소개받은 어려운 분들을 직접 찾아가서 후원하고 있습니다. 1년 반 전쯤 조그마한 모임에서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만났는데 거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재향군인회도 들어가게 되고 경찰서에서 하는 청소년육성회 활동도 합니다.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성북구청장님(김영배)이 의장으로 계시는 통합방위협의회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이 협의회에서는 군부대 지원과 인도의 학교건립사업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인도학교건립은 신부님 한 분이 주도하시는 일인데, 인도의 어려운 아동들은 여전히 수 킬로를 걸어가 제대로 된 건물도 없는 허허벌판 같은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을 위해 학교 건물을 짓는 활동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사회복지분야의 봉사활동을 하시고 계셔서 자연스레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 마을버스 운영의 애로사항이라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차고지 문제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주변에 땅은 없고, 구하기 힘들지요. 지금 저희는 임대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증차를 하려면 증차 대수에 맞게 차고지도 확보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차고지 때문에 옮겨 다니는 회사들도 있습니다.
 저희도 증차 계획이 있는데, 미아삼거리에서 장위중학교를 운행하는 성북10번 노선은 승객 대비 차가 부족한 편입니다. 사람이 많아서 한 번에 모두 태우지 못하고 뒤차를 기다려야 하거든요. 저희가 자격도 되고 조건에 맞춰 접수를 했는데 시청에서 이 문제를 아직 처리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민원을 제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동덕여대 앞길이 일방통행이 되면서 저희는 수익 면에서 큰 타격을 받고 있고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저희 노선이 모두 왕복노선은 아닌데, 예전에 일방통행이 되기 전 양방통행이었을 때는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5분 정도 걸어가면 됐는데 일방통행이 되는 바람에 약 10분 정도 더 걸어야 합니다. 이 일방통앵길이 밤이면 주차장이 되다시피 하거든요. 승객들이 짜증을 내고 주민들도 그렇고 주변 상가들도 모두 불편한 상황입니다. 진짜 문제가 있거든요. 증차문제와 함께 이 문제도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시정을 요구할 계획입니다. 저희가 손해를 보는 만큼 승객들도 손해를 보는 거거든요. 일방통행을 폐지하고 양방통행으로 바꿔주길 원합니다.”

 

- 서울시의 대중교통 환승제가 미치는 영향은 어떻습니까?
“이명박 시장 시절 중앙차로와 함께 카드제를 도입하면서 시작된 건데 환승제 전에 수익성이 좋았던 노선을 갖고 있던 회사는 환승제로 인해 손해를 보는 셈입니다. 환승의 경우 정확히는 모르지만, 서울시 보조금이 60원부터 많게는 400원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현재 일반 시내버스의 운전기사들은 서울시의 준공무원 수준이지만 마을버스는 아직 아닙니다. 마을버스 운전기사의 경우 최저임금이 1백 8십만 5천 원 수준입니다. 최저임금을 지켜야 하고, 완전 월급제입니다. 일반 시내버스의 기사 월급은 3백에서 3백5십만 원 수준이고요.”

 

- 마을버스의 준공영제 또는 완전공영제에 대한 생각은 어떠십니까?
 “마을버스업체 중에서도 수익이 좋은 쪽이 있고 영세한 쪽도 있는데 저희는 중간 정도입니다. 금액상으로 크게 이익을 내거나 손해를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쩔 때는 속편하게 서울시에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운전기사의 월급 책정 등 어떻게든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해주니까요. 그러나 아직은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서울시로 들어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시내버스는 완전공영제이고 마을버스는 거의 준공영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서울시가 많은 부분에서 관여하고 있고 인센티브제 같은 제도 도입으로 조금씩 지원도 하고 있습니다. 서비스평가에 따른 등수를 매겨 서비스에 좀 더 신경을 쓰도록 유도하고 있기도 하지요. 아직까지는 민간사업체로 가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서울시 마을버스운송조합은 총 122개 업체가 소속돼 있는데 성북구에 7개 업체가 있으며 이 대표는 훗날 성북구 마을버스운송조합 지부장을 하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다. 
 좌우명이 ‘후회 없는 삶을 살자’라고 소개한 이 대표는, 해보지 않고 ‘할 걸 그랬나보다’, 고 후회하기 보다는 잘못되더라도 일단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쉬움을 갖는 게 싫다고 했다. 그러나 사업하면서 놓친 건 특별히 없다고 했다. 회사에 대한 전망이라든지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묻자 “평범하게 잘 사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빠르면 55세 혹은 늦어져 58세 정도가 되면 정년퇴직하여 고향에 내려가 시골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특별히 꿈을 꾸고 있는 건 없습니다. 지금 하는 사업 안정적으로 잘 하고 지금 있는 것 잘 지키는 것 뿐, 큰 욕심은 없습니다.”
 이 대표는 좋은 일에 참여하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또 좋은 일이 있으면 참여하고 싶다면서 너무 거하게 소개되는 것 같다고 겸연쩍어했다. 이 대표는 어려운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자신의 눈으로 보고 확인하며 후원하는 일이 좋다고 한다. 특별히 고등학생 아이를 둔 40대 알콜중독 가장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고 그와 같은 취약가정들이 이 대표가 자주 찾는 대상이다. 조그만 모임에서 시작된 만남과 인연으로 적극적인 봉사와 후원활동을 하게 된 이 대표는 어디에서나 가장 젊은 편에 속한다. 
 후원금의 많고 적음,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위한 대가(代價)의 유무, 개인의 선한 마음에 기댈 게 아니라 보다 촘촘한 복지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식의 차가운 생각은 잠시 접어두자. 다만,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기꺼이 하는 그 뜨거운 마음을 우선 생각하는 건 어떨까? 시인 안도현이 물었던 질문처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 中)

                                                                    박향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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