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2. 09. 11.
친구의 범위
친구! 참 언제 봐도 반갑고, 종일 만났다 헤어져도 또 만나면 즐겁고, 나이에 상관없이 소주 기울이며 욕지거리 섞어서 신나게 나라님을 포함해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 흉보면서도 조금도 어색함이 없는 사람, 그게 바로 친구다.
친구의 범위는 다양하다. 친구란 나이가 꼭 동갑이거나 비슷할 필요가 없고 형 동생 하면서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바로 친한 친구다. 물론 어린 시절의 동무나 성장하면서 사귀는 동창들도 친구랄 수 있지만 진정한 친구는 자주 만나서 이런 저런 세상사도 나누고 서로의 고충을 들어주고 때론 서로 도움도 받고 가정사도 챙기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친구일 것이다.
정치판에는 친구가 없어 보인다. 같은 정당(政黨)에 속했으면 그래도 친구나 마찬가지 일터지만 최근 경선을 치르는 대선 판을 볼라치면 저 사람들이 과연 한솥밥을 먹는 동지들이 맞는 것인지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최근 대선정국에 갑자기 친구 논쟁이 붙었다. 바로 안철수 교수(이하 존칭 생략) 측 사람으로 알려진 금태섭 변호사와 새누리당의 정준길 공보위원 간의 안철수 사퇴종용 논란이다.
두 사람은 서울법대 96학번 동기라고 한다. 두 사람은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의 길을 걷다가 변호사 개업 후 정치에 몸담았다고도 한다. 얼른보기에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검사까지 같이 했다면 상당한 친분이 있는 친구로 생각된다.
정준길이 출근길에 갑자기 금태섭에게 전화를 걸어 여자 문제와 투자비리 등을 거론 한 것은 속내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공보위원으로 발탁되자 안철수를 내려 앉혀 자신의 능력을 상부에 보여주려거나, 아니면 자기를 친구인 금태섭에게 과시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준길은 그의 말대로 안철수 검증하는 일이 자기일이라 서로 부딪힐 수 있으니 각자 조심하자는 뜻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기자회견장에서도 금태섭을 그냥 태섭이라고 부르며 가까운 친구간의 일상 통화였음을 유난히 강조하는 모습에서 더욱 안쓰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 쪽은 친구간의 일상통화라고 강조하는데 한 쪽은 그것은 명백한 사퇴압박이라고 주장한다. 친구들 간의 술자리도 아니고 하필 이른 아침에 그런 전화를 받은 금태섭도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서로가 검사 출신이 아니었다면, 혹시 둘 다 정치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다면 친구 간의 이런 아픔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사실 여부를 떠나 먼저 전화를 한 정준길이 불리해 보인다. 정준길은 자신이 이제 검사가 아닌 정치인이며, 상대도 이젠 단순한 친구가 아닌 유력 대선후보의 측근이라는 것을 먼저 알았어야 했다. 정치에 입문하는 순간 친구는 없어지고 적만 더 늘어가는 것을 먼저 배웠어야 했다.
권력이 높아지거나 돈을 많이 벌면 친구가 없어진다. 권력을 가진 친구가 다른 친구를 멀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친구들이 스스로 멀어져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옛날처럼 남을 욕하면서 술잔을 기울일 수 없기 때문에 만나봐야 재미도 없고, 진심을 털어놓기는 더욱 어렵고, 먼저 만나지고 하자니 무슨 부탁이라도 할까봐 전화를 안 받으면 어쩌지 하면서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친구란 그런 것이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고 그렇게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친구인데 그럴 수 있느냐”를 강변하기 이전에 아무리 친구지만 상대의 위치를 보고 할 말 안 할 말을 가릴 줄 아는 것이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우선의 덕목이 아닌가 싶다.
사실관계야 어떻든 아무리 정치판이라지만 친구지간에 출세를 위해 아등바등하는 모양이 보기 안 좋다. 이번 일로 정준길은 친구도 잃고 민주당과 안철수를 더 친한 친구로 만들어 준 묘한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