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2. 11. 07.
학(鶴)과 오리
학은 우리말로는 두루미라고 하며 흔히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로 알려져 있고, 천년을 장수하는 영물로 인식되어 왔다.
학의 고고한 기상은 선비의 이상적인 성품을 상징해왔으며, 장수를 상징하는 대표적 존재로도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문인들은 그림이나 시의 소재로 학을 즐겨 사용했고, 복식(服飾)이나 여러 공예품에 학을 많이 사용해 오고 있다.
오리는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물새 중의 하나이다. 오리는 짝을 이룬 뒤 하나가 죽으면 뒤따라 죽는다고 해서 부부간의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또한 신앙 대상인 솟대의 꼭대기에 있는 새는 일반적으로 오리로 추정된다. 이는 오리가 여느 새들과 다르게 수륙(水陸) 양쪽에서 모두 활동하는 속성을 지녀서 인간과 신의 중개 역할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은 시베리아 지역에 살다가 10월 말경 남하해 철원지역 등에서 월동하다가 3월이면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학은 다리가 가늘고 머리가 긴 조류다. 따라서 ‘학수고대’란 말은 학의 목처럼 목을 길게 늘이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어떤 소식을 몹시 기다림을 일컬을 때 쓰인다.
반면에 오리는 한자어인 오리 압(鴨)을 파자(破字)해 얻을 수 있는 으뜸 갑(甲)을 그 상징의미로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오리를 연못과 함께 묘사해 재복(財福)을 상징했으며, 우리와 마찬가지로 풍요와 다산의 동물로 인식되었다.
동양화에서 오리는 장원급제(壯元及第)를 의미한다. 오리를 뜻하는 한자인 ‘압(鴨)’자에는 1등을 뜻하는 한자인 ‘갑(甲)’자가 있어서 오리 그림은 장원급제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림에서 오리가 2마리 있을 경우에는 ‘二甲’이 되어 2번의 과거에 모두 장원급제함을 뜻한다. 연꽃과 오리 2마리가 있을 경우에는 ‘연과이갑(蓮科二甲)’이라 해 2번의 과거에 연달아 장원급제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학은 우리가 자주 볼 수 없지만 오리는 가까운 개천에만 나가도 여러 마리가 떼를 지어 다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요즘에는 오리고기가 웰빙음식으로 소문나서인지 가는 곳마다 오리고기 요리 집을 볼 수 있다.
오리는 또한 레임덕이라는 말로 오리가 기우뚱거리면서 걷는 것을 묘사해 정권 말에 정상적인 리더십이 발휘되지 못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정치야 늘 레임덕이 반복되니 굳이 더 이상 레임덕 얘기는 할 필요도 없겠지만 작금의 대통령 후보들을 보면서 오리와 학이 동시에 떠오른다.
대통령 후보 시절은 당연히 군계일학(群鷄一鶴)이 되어 학 같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지만 대통령만 되면 오리 신세가 되니 하는 말이다. 우리는 사실 학같이 고고한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 오리 같이 결국 뭍에 올라 기우뚱거리는 것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학의 자태가 곱긴 하지만 잠깐 볼 수 있는 철새에 불과하고, 오리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뭍에 올라 기우뚱거리며 볼품없는 신세가 되는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3인의 대통령 후보를 보고 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모두 고고한 학(鶴)의 자태다. 박근혜는 이미 여당의 후보로 확정됐고 문재인과 안철수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논의 중이다. 한쪽이 양보하고 일정지분을 받는 식의 단일화 협상은 곤란하다. 지는 쪽은 그냥 학으로 남는 것이 어쩌면 본인과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단일화 결과가 나와 봐야겠지만 권력 나눠 먹기식으로 “너는 뭐를 맡고 나는 뭐를 하겠다.”고 한다면 국민이 등을 돌려 본선에서 이기기도 힘들겠지만, 설사 당선된다한들 시작부터 삐걱거려 애꿎은 국민만 힘들기 때문이다.
이제 곧 여야의 후보가 결정되면 누가 대통령이 되던 현재의 정치행태에서 한사람은 학이 되고 한사람은 낙동강 오리신세가 됨은 명약관화다. 누가 된들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마는 그저 우리 서민들은 살기 팍팍한 생활에 숨통이 트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도 줄 후보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