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2. 12. 05.
거꾸로 가는 대선과 역사인식
2012년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로 양강 구도로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 전 대선후보(이하 존칭 생략)가 과연 문재인 후보를 지지할 것인가의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안철수는 지난 3일 해단식에서 “대선이 거꾸로 가고 있다.” “문재인 후보를 성원해달라”는 선에서 기자회견을 마쳤다.
안철수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흑색선전, 이전투구, 인신공격이 난무하고 있다”며 “이런 대립적인 정치와 일방적인 국정이 반복된다면 새로운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금 대선은 미래보다는 후보들의 과거의 흠을 뒤지고 후보의 생각보다는 전임자나 현 대통령의 실정을 파헤쳐 우위를 점령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여야가 진보와 보수를 표방하지만 정책공약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이번 선거에서는 후보 개인의 과거 행적은 어느 정도 국민에게 알려져야 한다. 과거 정권에서나 현 정권에서 후보들이 맡았던 직책, 그리고 그가 했던 말과 행동 등도 표를 결정짓는 중요변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간다는 것은 역사를 선거전에 이용한다고 뜻하는 말일 수도 있고 시대정신이나 미래가치를 논하기 보다는 상대의 흠이나 들추는 과거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역사인식이라는 것이 그리 거창한 말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역사고, 후보들이 과거에 했던 각종 말과 행동이 바로 역사다.
자기가 속했던 부분은 좋은 역사고 남이 속했던 역사는 나쁜 역사라고 우기면 곤란하다. 서로 약간 다른 입장이긴 하겠지만 어차피 같이 써가는 역사이고 그런 역사 덕분에 대통령 후보에 오를 수도 있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대한민국은 불행한 역사가 많다. 일제시대, 군부독재, 광주민주화운동 등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은 나라다. 일제시대를 눈물로 살았던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직 생존해 있고, 군부독재를 겪었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을 지냈으며, 그들을 따르던 사람들도 대통령 혹은 국회의원이 되어 이 나라 정치를 이끌고 있으니, 한 쪽을 그저 나쁜 역사라고 몰아 부칠 일도 아니다.
며칠 전 광주민주화 과정을 다룬 영화 26년을 보았다. 그동안 잊고 지내던 광주와 80년대, 그리고 현 시대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이미 30년이 넘었고 민주화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보상이 이루어졌으니 끝난 것으로 알았던 광주가 아직도 아파하는 것을 보고, 돈 몇 푼과 명예회복만으로는 불행한 역사가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우게 만든 영화였다.
대선을 앞두고 개봉한 26년은 여야의 대선후보와 70~80년대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들이 꼭 봐야할 영화다. 과거를 똑똑히 기억하라는 것도 아니다. 거꾸로 가라는 것도 아니다. 어느 한사람이 사과하고 감옥에서 평생을 썩히라는 것도 아니다.
당신들은 당시 역사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도 하고, 대통령 후보도 하고, 국회의원이나 각종 좋은 자리 나눠먹지만, 역사인식이나 미래의 큰 꿈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민초들의 값진 희생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인식을 생각할 겨를도 없는 대다수 국민, 과거나 현재도 역사를 이끄는 사람들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선거 때가 되면 증오하는 반대쪽에 표를 던져야 하는 국민을 진심으로 생각해보라.
국민대통합도 좋고 탕평도 좋다. 정치개혁도 좋고 정권교체도 좋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도 역사에 의해 아파해 하며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미안해하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그저 정권만 잡아 특정지역에 자리 몇 개 나누어 주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표는 찍어주지만 마음 속 깊이 새겨진 분노가 치유된 것은 아니다. 보좌관의 죽음 앞에 이틀을 문상하는 박근혜의 마음으로, 안철수의 도움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문재인의 간절한 심정을 광주에 보이라.
그 길이 탕평과 정권교체 등등 당신들이 바라는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중요 가치라는 것을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