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2. 12. 19.
“벽도 천장도 버티고 뚫어라!”
후배 공무원들의 지침서 펴낸 안희옥 전 국회의원
서울시에서 9급으로 출발해 1급까지 오른 안희옥 전 국회의원이 ‘인생갈림길 너는 알고 가는가’ 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여성공무원으로서 불모지를 개척하는 심정으로 동사무소에서 출발해 청와대 비서관과 전국구 국회의원, 그리고 청소년 사업을 하면서 역으로 서울시의회에 진출해 서울시의원을 지낸 인생역정을 진솔하게 서술했다.
청소년이 국가의 미래라는 신념하나로 적자에 시달리던 성북청소년수련관 관장을 맡아 우뚝 키워냈고 서울시의원으로서 석관동과 장위동 지역 발전에 헌신해오다 지금은 다시청소년 사업에 온몸을 바치고 있는 안희옥 전 의원을 만나본다.
-책을 쓰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일종의 책임감입니다. 대한민국이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양성평등사회로 가는 격변기에 행정현장에 있었던 여성으로서 변화의 현장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습니다. 학자들이 남겨줄 이론적인 접근보다는 정책 추진과정에서 얽힌 배경이며 취지, 그리고 뒷이야기나 에피소드 등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만 알고 있는 내용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이런 이야기들은 여성정책이 쏟아져 나올 때 행정업무를 맡았던 실무자의 한사람으로 알려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매일 들고 다녔던 손 때 묻은 다이어리 40년 치 50권, 보도관련 신문기사 스크랩 10권, 정부와 기관의 백서 그리고 각종 자료집을 버리지 않고 지니고 있어 엄두를 내기 쉬웠습니다.
9급 공무원부터 시작해 1급까지 오른 지난 반세기의 내 자산을 주변에서 경험을 묻어두지 말고 세상에 알리라고 권유해 와서 책을 내게 된 것입니다.
-공직생활 중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다면?
공직생활의 하루하루가 긴장된 순간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라면 1998년 2월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1급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령이 났을 때 입니다.
알다시피 김대중 대통령은 오랜 시간 동안 야권에서 활동하며 핍박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챙겨 줘야 할 사람들도 많은데 청와대 중요자리에 공무원으로서 누릴 것은 다 누리던 나 같은 사람에게 자리가 돌아오자 김전대통령과 동거동락했던 동지들은 엄청나게 실망해서 “안희옥이 누구냐”는 뒷말과 함께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습니다.
청와대 비서관을 직업 공무원 중에서 인선하는 것이 좋겠다는 방침을 정했지만 현직 공무원 중에서 뽑았다는 후문을 들었을 뿐 국민의 정부와는 지연은 물론 아무런 연고도 없었기 때문에 무수한 뒷말을 견뎌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남들은 1년이면 부처로 되돌아가는 청와대를 만 2년 원만히 근무한 것에 만족합니다.
-후배 공무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두 가지입니다. 일을 하는 방법과 세파를 견뎌낼 때 명심해야할 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일을 할 때는 다음의 원칙을 세워두라고 권유합니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목적은 분명’‘기초는 튼튼’‘계획은 치밀’‘추진은 과감’‘마무리는 꼼꼼’다섯가지입니다.
목적은 일하는 내내 잊지 말아야 할 가이드라인이며 충분한 자료검토가 관건입니다. 계획을 세울 때는 진행순서는 물론 문제점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것까지 포함시켜야 합니다.
일단 방침이 결정되면 추진은 과감해야 하며 문제점이 드러나면 보충은 하더라도 시작된 사안은 끝까지 밀고 나가야합니다. 결과가 나오면 꼼꼼하게 평가해 다음 사람들이 일할 때 참고를 하도록 하는 센스도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듯 승진이며 다면평가와 같은 결과물입니다. 100% 만족할 사람은 없을뿐더러 누구나 상처를 갖고 있는 것인데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사표를 쓰고 싶을 때 ‘버티고 뚫어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유리벽과 유리천장은 어디에도 있지만 이를 이겨내려면 버티고 뚫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공무원을 하고픈지..
100% 다시 공무원을 하고 싶습니다. 행정분야에서 몸담은 시간이 33년인데 일에 미쳐 겁 없이 자갈 밭길과 불모지를 개척했습니다. 직업공무원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위직 1급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했고 지방, 중앙, 대통령 비서실까지 두루 거쳐 행정기관의 메카니즘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폭 넓게 경험한 공무원들은 흔치 않기 때문에 다시 태어난다면 훨씬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행정분야에서 일한 공직생활은 황소처럼 묵묵히 걸어온 삶이었으며 내게는 큰 보람이기도 했습니다.
-청소년 사업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을 때 그만두면 뭐할까 고민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청소년을 위한 봉사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여성문제는 단체도 많고 어느 정도 자리도 잡혀있었지만 청소년문제는 아직도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다고 느꼈습니다. 희망차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서울시에서 청소년과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으니 청소년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근무가 끝날 무렵 문광부에 법인허가를 내고 정당생활을 하면서 2000년 12월 경 청소년 여가선용지도협회를 발족했습니다.
잘 노는 것이 청소년의 특권이라는 믿음으로 청소년들이 젊음과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도록 놀이문화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학교 공부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그런 행사를 주로 찾기도 했고요.
청소년사업을 하면서 청소년지도자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 때문에 이직률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됐고, 기업들의 지원도 예전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좋은 인재들이 남으려고 하지 않아 아쉬움이 큽니다.
청소년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만큼 그들이 입시라는 지옥대신 존재의 이유를 고민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청소년과 청소년지도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안희옥 전 의원은 서울법대 출신이다. 웬만하면 국회의원까지 지낸 분이 서울시의원에 약 도전하기 어려울 법 한데 안 의원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일에 대한 열정과 청소년에 대한 사랑과 신념은 여는 젊은이 못지않게 차고 넘치기 때문으로 보인다.
안의원은 지금도 사단법인 한국청소년 연맹에 매일 출근한다. 이번 출간한 책의 수입금도 전액 청소년 사업에 쓸 요량이라고 말한다.
10여 년 전 청소년 사업을 완수하기 위해 성북청소년수련관을 맡게 됐다고 신문사를 찾아왔던 초롱초롱함이 지금도 그대로 느껴진다. 인생의 후반을 잘 살아가는 모습에서 발산하는 경이로움이라고나 할까? 그녀를 보면 힘이 절로 힘이 난다.
김세현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