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3. 02. 12.
7번방의 선물
설 명절 극장가를 한국영화가 평정했다고 한다. 설 연휴만 130만 명을 동원한 영화 7번방의 선물은 개봉 19일 만에 600만 명을 동원했고 베를린도 2주 만에 4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하니 한국영화의 힘이 새삼 느껴진다.
필자도 7번방의 선물을 관람하며 많이 웃고 눈물도 조금 훔쳤다. 6살 지능을 가진 정신지체 장애를 앓고 있는 주인공과 그 딸의 연기도 연기지만 극중의 내용이 어쩌면 아직도 이 땅에 보이지 않는 특권층이 힘없고 ‘빽’없는 서민들을 알게 모르게 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 같아 분노감도 일어났고, 결국 진실이 승리하는 장면에서 아직 이 나라는 희망이 있다는 안도감도 함께 주는 수작(秀作)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블록퍼스트급 영화보다는 적은 제작비를 들인 잔잔한 영화에서 훨씬 더 감동과 환희를 느낀다는 것이다. 충분히 있을법한 얘기들을 영화소재로 삼아 국민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여 생각을 공유하게 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소통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런 메시지들이 정치권이나 특권층에 고스란히 전달되어 민심을 바로 알리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지난 설 연휴에 어김없이 민심 챙기기에 바빴다고 한다. 이제 이달 25일이면 새롭게 출범할 박근혜정부의 통치스타일부터 김용준 첫 국무총리 지명자의 낙마와 이동흡 헌법재판소 소장 후보자의 특정업무경비 개인 유용 여부, 그리고 곧 다가올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비롯, 장관급에 누가 이름을 올릴 것이냐는 대한 관심 등등 설 차례 상에 올라온 갖가지 이슈들을 들었을 것이다.
설 민심이야 계층이나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어느 정치인 한사람의 말이나 한 지역의 여론이 전체 민심을 좌우할 수는 없다. 민심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설 연휴에 우리 국민 200만 명 이상이 극장가를 찾았다면 바로 거기서 나오는 민심이 진짜 민심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야 새 정부를 꾸리느라 시간이 없겠지만 그 주변에서 여론을 전하는 역할을 하는 참모들은 꼭 한국영화를 관람하기를 부탁한다.
그들은 영화 베를린을 보면서 남북분단을 보는 국민의 눈높이를 확인해보고, ‘남쪽으로 튀어’에서 나오는 “나 국민 안 해!”라는 대사의 참뜻을 대통령 당선인에게 여과없이 전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식 후 첫 행사로 거창한 취임식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즐겨보는 영화를 참모들과 함께 단체관람을 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우리 국민, 특히 서민들은 4대강 사업처럼 큰 틀에서 이루어지는 공약이행이나 공짜복지에만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다. 대다수의 국민은 특권층들이 누리는 각종 혜택에도 별 관심이 없다. 어차피 그들의 행태를 다 알 수도 없고 설사 안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한편의 영화를 보면서 울고 웃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비록 한편의 영화로 가슴속에 응어리가 다 풀리지는 않는다지만 영화 속에 나오는 끊이지 않는 특권층의 비리와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생각들을 현 시대와 비교해보면서 술잔을 기울인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정부에게 거는 기대가 더욱 크다. 기존의 위정자들처럼 자기임기에 거대한 업적을 남기려는 시도보다는 우리 국민이 원하는 작은 행복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것, 자기들만의 정의(正義)가 아닌 국민 모두가 인정하는 정의를 구현하는 것, 믿었던 사람들도 청문회 때만 되면 또 뭐가 터질까 걱정보다는 이 정부는 공정(公正)하다는 것 하나라도 제대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새 정부의 선물이다. 영화를 볼 때마다 대한민국은 과연 공정한가?를 되씹을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