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3. 05. 07.


             갑(甲)과 을(乙)

 

 


대기업의 한 상무가 기내에서 라면이 맛이 없다고 승무원을 폭행하면서 불거진 갑과 을에 대한 논쟁이 중견 제과업체 회장이 차를 빼라는 호텔 현관 서비스 지배인의 뺨을 장지갑으로 때렸다고 전해지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남양유업의 영업사원이 대리점 주에게 폭언을 퍼붓는 녹취가 공개되면서 갑의 횡포를 비난하는 댓글이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다고 있다.
대기업 상무는 이번 일로 사직을 했고 제과업체는 폐업을 선언했다고 한다. 사실 대기업 상무와 여 승무원 사이는 갑을 관계라고 보기 어렵다. 이들은 단지 승객과 승무원으로 잠시 만난 것뿐이며, 여행을 하다보면 별별 꼴불견 행동을 하는 승객을 자주 보는데 이는 갑으로서의 행동이 지나치다기보다는 그저 그 사람 개인의 도덕성 해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냥 지나쳤던 일들이다.
그 상무도 기업에서는 을의 신세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자마자 바로 면직됐다. 제과업체 대표도 이번 사건으로 코레일 납품이 어렵게 되자 결국 회사의 문을 닫아야 하는 을의 신세일 뿐이다.
남양유업은 이번 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하고 주가폭락에 불매운동 등 고초를 겪고 있다. 회사에서는 을이었던 문제의 욕설을 한 직원 역시 해고 됐음은 물론이다.
이번 세 가지 사건만 보아도 갑도 항상 갑이 아니라 대부분 을의 입장이었다는 공통점을 알 수 있다. 그 사람들이 자기도 때로는 직장이나 사업에서 갑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든다.
우리 국민은 국가에 대해 갑도 되고 때론 을도 된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을이 되었다가 선거가 끝나면 다시 갑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과거 정권이 저지른 만행의 대가를 치르는 돈이 일 년에 1300억 원이 든다고 한다.
국가에 의해 피해를 본 것이 아니라 권력을 잡기 위해서, 때로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저지른 특정인들의 악행에 대해 후세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정권에 피해를 당한 분들의 명예회복과 그분들의 후세에게 얼마간의 돈으로라도 아픔을 치유해주자는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재개발을 한다고 해놓고 사업을 중단 한 것에 대해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고, 개인의 빚을 국가가 나서서 탕감해주는 것이 과연 전체국민을 놓고 볼 때 옳은 행정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찬성하기 어렵다.
선거를 치러 엄청난 위치에 올라 만인의 갑이 되어서 불쌍한 을의 빚도 탕감해주고, 아픔도 치유해주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단지 을의 입장에서 갑에게 사정하던 모습은 안 보이고, 당당한 갑이 되어서 쪼그라진 을에게 이것저것 던져주는 것으로 비쳐 불쾌할 뿐이다.
갑과 을은 어느 사회나 존재하고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갑만 탓하거나 을의 편만 드는 것도 사회 발전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갑의 입장이 된 사람들이 노블레스오블리주 즉 사회에 대한 책임을 실천하고,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갑의 입장이 되더라도 을 시절의 아픔을 잊지 않는다면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사회분위기가 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여 안타깝다.
특히 을이었다가 갑자기 갑이 된 분들, 을 시절의 아픔과 시련을 절대 잊지 말고 불편부당(不偏不黨)을 유지해주길 간곡히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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