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3. 07. 17.


"주민과 상인 간 의견차 좁혀야 상권이 살아난다”
부모를 존경하고 선생님을 존경하는 등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고 싶은 문부남 위원장

 

 

 


 올해로 출범 13년을 맞는 동선동(성북구)주민자치위원회의 수장이 된 문부남 위원장(69)은 위원회 초기부터 부위원장직을 역임해왔다. 문 위원장은 주민자치위원회의 성격상 위원장의 역할이 지대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올 초 경선을 통해 위원장으로 선출된 문 위원장은 지난 4월, 5회째 맞는 ‘동선동 아리랑벚꽃축제’의 성공적 개최에 상당히 고무된 표정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동선동 주민센터 내의 주민문고도 시설 등을 확충해 개방형 문고로 만들고 주민들이 편리하고 왕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태어난 문 위원장은 해방 후 부모를 따라 귀국했으며 1967년 성북구에 정착했다. 약 5년간 서울시 지적공사 공무원을 지냈고 지금은 안국엔지니어링(주) 이사 및 서울측량공사 소장으로서 측량사이기도 하다. 법원 소송건이 있을 때 지적측량 등 감정을 실시하는 여전한 현역이다. 34년 째 계속 해오는 일이다. 최근엔 측량회사와 인력이 많이 생겨 예전만큼 많은 일을 수주 받지 못한다고 하나 장마철인 요즘도 비가 오지만 않는다면 현장에 가야할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문 위원장이 인터뷰 전에 건네 준 활동자료에는 현재 맡고 있거나 관여하고 있는 조직 및 단체를 일괄 정리해 놓은 한 페이지짜리 문서도 있었다. 그에 따르면, 동선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외에도 성북구 효도실천협의회 회장, 성북구 민주통일협의회 수석 부회장(동선동 민주통일협의회 회장), 동선동 방위협의회 회원, 동선동 복지위원회 위원, 동선동 걷기 동아리 회장, 동선동 번영회 회장, 성북구 민주산악회 회장 등이 문 위원장이 참여하고 있는 단체의 면면이다.
 면면을 들여다보면 명예직을 얻고 매월 또는 매년 얼마씩을 회비나 기금으로 조성해 장학금을 지원하거나, 불우이웃돕기, 노인들을 위한 복지 지원, 식사지원 등의 봉사활동이 주를 이룬다.
상당한 돈을 들여서까지 많은 단체에 관여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왜 이런 일을 하시나요?”
“시키니까요...... ”, 웃음이었다.
“부추기고 시킨다 해도 본인의 의지가 있지 않으면 되지 않는 일이잖아요?”
“제가 성격이 급하고 빨라요. 내가 맡으면 좀 더 낫게끔 할 수 있지 않을까, 놀러가더라도 한 번 더 가도록, 자비를 들여서라도, 활성화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술을 좋아하고 얻어먹는 것 보다는 돈을 내는 쪽이라고 말했다. 술 좋아하고 사람 만나기 좋아하며 일을 도모하고 참여하는 일에 앞장서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문 위원장은 장황하게 말을 설명하거나 조리 있고 선별된 말로써 윤색하는 언변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소박하지만 자부심이 담긴 말을 털어놓을 뿐이었다.
 요즘 들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동의 번영에 대한 고민이라고 했다. 상권이 죽어가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유동인구가 많고 대학도 있어 학생들이 많은 동의 특성을 살려 특성화거리를 조성하여 지역내외로 유명한 지역특구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여가시설이 지금 보다 더 많아져 주민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외부로 빼앗긴 상권을 되찾고 활기 넘치는 동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나름의 견해도 지니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 지역주민들과 상가 주인들의 의견 차이가 좁혀져 지역개발에 합의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하기도 했다.

 문 위원장이 주력하고 있는 활동 중 하나는 ‘성북구 효도실천협의회(이하 협의회)’ 활동이다. 독자로서 노모를 모셨던 문 위원장이 어머니와의 오랜 친분을 맺은 어른들을 모셔서 매년 5월 어버이날을 전후로 식사를 대접하곤 했다. 이런 선행을 알게 된 협의회의 김춘식 전 회장이 협의회 합류를 제안했다고 한다.
 효 강의를 주로 했던 협의회는 올해 문 위원장이 회장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효잔치’를 했다. 각 동으로부터 효부, 효자를 추천받았고 올해는 안경회사를 스폰서로 삼아 10만원 상당의 안경을 맞춰드렸다고 한다.
 문 위원장은 돈 때문에 부모를 때려죽이기까지 하는 세태를 한탄했다. ‘효도’라는 개념조차 희미해지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공부만 잘 하면 만사가 좋다는 식의 지금의 교육방식을 나무랐다. 초등학교마다 강사를 초청해 효 강의도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효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효잔치를 지금보다 더 크게 하고 싶어 했다. 각 동마다 협의회 지부를 설치하여 구 전체가 명실상부한 효도 구가 되도록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김춘례 구의원이 상정한 ‘효행장려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통과된 것을 언급하면서 더욱 고무된 표정이었다.
 제6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2012)한 소설가 심상대의 아버지에 대한 회상 한 대목이 떠올랐다. 1960년생인 심상대는 어느 인터뷰에서 새학기가 되면 새로 받은 교과서에 달력으로 일일이 책표지를 싸고 붓글씨로 책 과목명과 아들 이름을 써넣어 주던 아버지 얘기를 했다. 대체로 모두가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 이 조그만 일을 통해서도 부모의 애틋한 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 어린 세대들은 어떤 회상을 통해 부모를 떠올릴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물질적 조건이 의식과 생각의 구조, 방법을 규정하기 쉽다. 삶의 조건에 큰 변화가 온 지금 옛 방식의 효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회의가 드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충효를 국가를 지탱하는 두 기둥의 이념으로 삼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로서가 아니라 인간이 동물 중에서도 양육기간이 가장 길다는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 부모의 자애와 자식의 효는 인륜의 근본이 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유자(儒者)의 근본 학문이었던 『소학(小學)』적 삶에 대해 소설가 김훈은 퇴계의 삶을 빌려 ‘물을 뿌려 마당을 쓸고, (어른이) 부르면 응답하는’ 삶의 지극히 소박하지만 그래서 더욱 엄정함을 경외(敬畏)했다. 문 위원장은 ‘요즘의 효는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먹고 살기는 어렵지 않으나 부모 세대가 이뤘던 것과 같은 부를 축적하기 어려워진 시대’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 인간으로서 소박한 삶을 건사하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워졌는지를 내포하고 있는 말처럼 들렸다.
 긴 성장기간 동안 필요한 양육과 교육도 더욱 복잡해졌고 앞으로 더욱 길어질 노년을 평온하게 보낸 뒤 고요한 자연사(自然死)를 맞게 되는 인생이 쉽지 않은 시대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고 의료환경이 고도로 발전했으며 기대수명도 높아진 이 첨단 시대의 아이러니이다.
 최종적으로 동선동의 이상적 발전방향을 묻자, 문 위원장은 ‘부모를 존경하고, 선생님을 존경하는 등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드는 것’이라는 대답을 했다. 소박한 대답이었다. 이 시대엔 이 소박함이 오히려 어렵고 무서운 이상(理想) 같아서 칠순을 보낸 한 어른이 ‘효의 전도사’를 기꺼이 맡아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오래 눈에 밟힐 것 같았다. 

 

박향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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