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3. 08. 20.


“죄송합니다!”

 

필자는 아침마다 대중목욕탕에 들른다. 술을 즐기기 때문에 숙취도 해소하고 매일 가벼운 운동도 할 겸해서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는 편이다.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목욕탕에 가면 늘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항상 웃어주며 옷장 키를 건네는 인상 좋은 아저씨와 늘 먼저 인사 건네는 이발소 아저씨, 그리고 온탕 온도 조절도 하고 이곳저곳을 청소도 하는 때밀이 청년과 매일 같은 시간대에 오는 고정 손님들이다.
며칠 전 냉탕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갑자기 큰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나이가 지긋한 분이 때밀이 청년에게 고함을 치며 나무라고 있고, 조선족으로 보이는 청년 역시 마주보며 씩씩대며 맞고함을 치는 모습이었다.
싸움의 발단을 들어보니 그 청년이 손님의 면도기를 쓰레기통에 버린 것이었다. 그 청년으로서는 손님들이 쓰고 치우지 않고 그 자리에 두고 간 수건이며 일회용품들을 정리하는 임무를 충실히 한 것뿐이고, 손님은 잠깐 사우나도크에 들어갔다 왔는데 자기 면도기가 없어졌으니 면도기를 쓰레기통에 넣은 청년에게 “왜! 멀쩡한 면도기를 버렸냐!”고 소리치고 청년은 당연히 “내 할일을 했을 뿐”이라고 항변하는 해프닝이었다.
그 청년이 한국 사람이었다면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 “면도기 어쨌느냐”고 물으면 “다 쓰시는 건 줄 알고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아이고! 죄송합니다.”라고 했으면 큰소리 날 일도 아닌데 아마 문화가 달라서 인지 그 청년은 자기는 잘못한 것 없는데 왜! 그러느냐고 눈을 부라리니 큰 소리가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였다.
어쨌거나 그 손님은 분이 안 풀리는지 목욕탕 매점아저씨를 붙들고 “이럴 수 있느냐”며 따지고, 한참 전에 먼저 나갔는데 필자가 나올 때보니 매표소 아저씨를 붙들고 한참을 투덜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죄송합니다!” 한마디면 끝날 일이 결국 목욕탕 단골손님 하나를 잃는 결과가 되는 것을 보면서 승자 없는 전쟁을 보는듯해 씁쓸했다.
인생 살다보면 이런 조그만 마찰이 수없이 많다. 운전하다가 가벼운 접촉사고도 빈번하고, 길 가다가 부딪히는 일도 다반사고, 상대의 말을 잘못 알아들어 오해하기도 하는 등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을 일들이 발생한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상대에게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고 먼저 말하면 금방 화가 풀릴 텐데 좀처럼 그 말이 나오기 힘든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존심이 세서 그런 것인지, 문화가 그런 것인지 도통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일본의 정치인들이 동 아시아 전쟁에 대해 사과 하지 않고 우기는 것을 보면 일본인들도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상대에 대한 배려나 사과를 하는 일을 꺼리는 것을 보면 많이 배우고 사람들에게 표를 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것에 더  인색한 것으로 보인다.
작금의 여야의 대치를 보면 그 사실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야당은 박근혜대통령에게 국정원 정치개입을 사과하라고 다그친다. 민주당의 대표는 박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하자고 졸라대는데 청와대는 줄 선물이 마땅찮은지 다른 얘기만 하고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서로 밀 당을 하던 싸움질을 하던 그들의 임기 동안 당연히 그러는 것이 습성화되었겠지만 그들의 장기간의 싸움으로 인해 당장에 우리 서민들이 점점 살기 팍팍해지니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  
“정말 유감입니다. 앞으로 공직자들이 절대 선거에 개입할 수 없도록 여야가 힘을 합해 강력한 수단을 만듭시다!” 이 한마디면 끝날 것 같은데 그 말을 하기가 그리 어려운지. 대통령이 그렇게 말하면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또 딴죽걸까봐 지레 겁먹은 참모들이 반대해서  그런지. 대통령이 결단을 해야 풀릴 일들이 산적한 현실에서 차라리 내각제 등 제도개선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별 생각이 다 드는 시절이다. 아무튼 큰 그림을 그리고 있으실 텐데 남의 속도 모르고 지껄여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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