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3. 11. 26.
성북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 인정받아 국민포장받은
김양순 성북소방서 여성 의용소방대장
‘인간이 인간의 재난에 덤벼들 태세를 갖추고 바람 부는 허공의 꼭대기에서 인간 세상을 정찰하고 있는 모습’, 소설가 김훈은 그의 중편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에서 동네 어귀에 세워져 있던 소방망루에 대한 유년의 기억을 그렇게 묘사했다. 사내아이에게 소방관은 ‘망루 꼭대기에서 세상의 재난을 정찰하는 사람’으로서 의(義)와 용(勇)의 화신 같았을 것이다.
이제 소방서는 화재진압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재난구조와 방재를 책임지며 우리의 일상에 밀접한 기관으로 존재한다. 의용소방대는 소방서의 소방업무 지원을 위해 조직된 지역주민의 봉사조직이지만 설치, 근무, 처우 등에 대한 내용은 소방기본법을 따르며 운영비용은 소방방재청의 지원을 받는다. 의용소방대는 화재진압 시 후방 지원을 기본으로 각종 재난재해복구 지원, 소방 홍보 활동과 대민 봉사활동까지 아우르며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지역주민이면 지원이 가능하나 연령제한과 정년이 있다. 각 지역의 조례에 따라 인원도 정해져 있다. 무보수이긴 하나 출동 시 수당이 지급된다. 교육 및 훈련비, 피복비가 지원되며 자녀 장학금 등이 지원되기도 한다.
지난 9일은 제51주년 소방의 날이었다. 서울 성북소방서(서장 박근종)는 13일 오전 성북소방서 4층 가람홀에서 기념행사를 가졌다. 기념식에서 의용소방대 김양순(61) 여성대장은 각종 재난현장 지원활동과 불우이웃돕기 등 각종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해 의용소방대 뿐만 아니라 성북구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포장을 받았다. 국민포장은 훈장 다음의 훈격에 해당되며 국민의 복리증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포장이다. 이 날 김양순 대장은 포장증서와 기장을 전달 받았다.
김양순 성북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장(이하 김 대장)은 결혼 이후 30대에 접어든 80년대부터 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해왔다. 전임 대장의 추천이 있어 약 2년간 홍보부장을 역임했고, 대장 퇴임 후 대장 직무대리를 거쳐 대장에 취임했다.
당시는 도봉, 강북 노원까지를 관할하는 북부소방서 시대였다. 김 대장은 1995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지금까지 활동해오면서 겪었던 일 중 가장 가슴 아픈 일로 꼽았다. 오랜 세월 동안 의용소방대원이자 대장으로 수없이 많은 사건사고 현장에 출동했지만 김 대장에게 가장 마음에 남는 현장을 꼽을 때 주저함 없이 떠올리게 되는 사고이자 재난이었다. 사고 발생 소식을 접수한 후 소방대와 바로 출동했다. 지역연합 회장까지 겸임하고 있던 터라 지역의 대원들까지 소집하여 이끌었다. 소방대와 현장인력들의 식사를 지원하는 등의 활동으로 폐허 현장에서의 하루가 뜨고 졌다.
김 대장은 또한 80년대 이른바 ‘미아리 88번지’(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로 미아리 텍사스로 불린 집창촌이 있었다)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로 일하는 여성 12명이 사망한 사건도 회고했다.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서울시는 미관상의 이유로 이 일대에 차단벽을 설치하고 주민들의 민원 해소 차원에서 담을 세우는 등 격리를 위한 시설을 설비했다. 소방도로 확보 등을 고려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각 영업점은 일하는 여성의 탈출을 막기 위해 방들을 쇠창살로 봉쇄했다. 화재가 났고 진압은 늦어졌으며 탈출할 길이 막힌 어린 여성들이 불에 타 죽었다.
2000년대 중반 고양시 일대에 홍수가 나 행주대교 둑 일부가 터진 일이 있었다. 김 대장은 대원들과 함께 출동해 수해현장에 투입됐다. 수마가 한바탕 휩쓴 후 흙과 오물로 뒤범벅 된 수해지역을 한 구획씩 다잡고 치워가며 복구 지원을 했다. 당시 홍보부장이었던 동료와 함께 활동을 했다. 곁에서 오랫동안 계속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을 만큼 마음에 들고 기댔던 동료이자 젊은 후배이기도 했다. 그런 그는 어느 날 이른 아침 갑작스런 부음으로 김 대장과 작별했다. 그 전날도 서로 ‘안녕’을 나누며 헤어졌었다.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김 대장은 말했다.
김 대장은 인원은 부족하고 여전히 충분치 않거나 오래된 장비들을 쥐고 출동하는 소방대원들의 모습을 많이 봐왔다. 장비 부족이나 노후 등으로 화재진압 현장에서 순직하는 대원들이 있다는 건 우리 사회의 수치다.
의용소방대 대장은 임기 3년에 연임이 가능하며 소방서장이 추천하고 시장이 임명한다. 김 대장은 내년 봄이면 연임 임기도 끝나기에 아무래도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김 대장은 털어놨다. 새로운 장이 자신이 남긴 일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대원들에게 봉사를 강조해왔지만 지금은 조심스럽다고 했다.
대장직 후임 지원자들이 많이 있는지 질문하자 미소를 지을 뿐이다. 이 일은 봉사하는 일이라고 했다. 지금의 조건에 별다른 이의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봉사한다는 철저한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요즘에는 봉사 보다 사사로운 명예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대도시는 지방만큼 의용소방대의 소방 현장 출동이 많지 않고 대민 봉사 활동이 많은 편이라고 김 대장은 말했다. 예전에는 재난 현장에 출동하는 일이 잦았지만 최근에는 복지관 장애인 목욕 봉사 등 봉사 활동을 주로 한다. 특히 심폐소생술 교육과 홍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호천사대 활동은 많은 사람들이 심폐소생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전파하는 데 힘쓰고 있다.
곧 다가올 임기 종료와 정년(만63세)을 몇 년 앞두고 있는 김 대장은 의용소방대 활동 뿐 아니라 민주평통 성북구 부회장, 성북구 통합방위협의회 간사, 성북경찰서 경찰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활동도 하고 있다.
김 대장은 의용소방대에서 물러나면 그동안 못했던 여행도 다니면서 노후를 즐기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러나 바로 이어서 그럴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을 던졌다. 아마 다른 일을 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이 이어졌다. 멀리는 새마을운동부터 늘 지역과 사회의 크고 작은 조직에 참여해왔다. 일 욕심이 많거나 혹은 조직행동 지향적 성향을 지녔다고 볼 수도 있다. 90년대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부터 정치계로부터 끊임없는 영입 제의가 있었지만 김 대장은 정치 쪽은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분야로 선을 긋고 있었다. 뜻이 있었다면 아마 진즉에 진출했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기 전 곁에 있던 대원이 김 대장은 재력가라고 농처럼 귀띔해주었다. 재력가라고 해서 모두가 또는 아무나 ‘인간의 재난에 덤벼들’어 인간이 마주한 참상 가까이에 머물 수 있는 건 아니다. 김 대장을 만나러 가면서, 의용소방대원 정복을 입은 그녀와 마주앉으면서, 모두가 불을 피해 달아날 때 소방호스의 관창을 쥔 채 불구덩이를 향해 달려드는 소방관이나 재난을 향해 뛰어드는 구급대원 들의 출동 모습을 상상했다.
재난을 당했을 때 사이렌을 울리며 구하러 오는 누군가 있다는 믿음은 사회와 인간에 대한 희망을 지키는 망루 하나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박향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