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3. 12. 26.


“까치야! 새 이빨 다오”
‘진료실에서 엿본 세상’ 책으로 펴낸 한상학 대한치과 원장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위치한 대한치과의 한상학 원장이 최근 책을 출간했다. 제목은『까치야! 새 이빨 다오』(도서출판 문), ‘진료실에서 엿본 세상’이 그 부제다. 책은 302페이지에 이르고 삽화가 곁들어 있다.
진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시작되지만 한 원장은 이 책을 쓰기 위해 매일 1시간 일찍 출근해 글을 쓰곤 했다고 한다. 책에서는 집필 기간이 1년 9개월이라고 밝혔지만 제목은 오래 전부터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이빨’은 ‘이\'를 낮잡아 부르는 말 이라고 정의돼 있다. 인간의 것 보다는 동물의 것을 부를 때 쓰며, 인간의 것이라 하더라도 상스럽거나 낮추어 부를 때에 쓰는 말이 ’이빨‘인 것이다. ‘치아‘는 ’이‘를 점잖게 이르는 말이다.
 인간의 ’이‘를 진료함에도 굳이 ‘이빨’이라고 제목에 붙인 이유는 이 말이 주는 울림 때문이라고 한다. 유치(乳齒)가 빠질 때 아이의 두려움과 무서움을 달래며 어른들이 불러주던 노래, 거기에 치과의사의 마음도 담겨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아프고 병든 이를 건강한 새 이로 잘 치료할 수 있기를 비는 마음, 그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 치료하며 보낸 지 27년이다. 치과의사는 외부에서 보기에 사람들이 인정하고 선망하는 직업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말 못할 답답함을 안고 살아가는 직업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 원장은 계속 쌓이는 답답함과 자신을 괴롭히는 아픔의 뿌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즐겁지 않을 것 같았다.
 내원하는 모든 환자와 취하는 모든 진료에 임할 때 갖는 한 원장의 진심을 보여주고자 했다. 의사가 아닌 우리는, 대개는 치과 치료를 받는 환자일 경우가 대부분일텐데, 책을 읽다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의사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제목부터 소제목, 삽화를 곁들이는 기획까지 모두 한 원장이 주도했다. 집필 방향은 일찍부터 정해졌다. 현장감 있는 내용을 쓸 것. 실제 진료실에서 의사와 환자가 주고받는 대화를 생생하게 살렸다. 20년 전이라면 나올 수 없었을 글이라고 한 원장은 말했다. 오늘 치과 진료 현장은 예민해질 때로 예민해진 환자, 빈부격차에 따라 치료 시 쓸 수 있는 도구나 재료가 천차만별인 가격구조, 미비한 의료보험 체계, 과다해진 경쟁 등이 한데 얽혀 있는 현장이 다. 치과의사의 감정노동 강도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결국 근본에는 환자와 의사간의 믿음과 신뢰가 무너진 작금의 상황에 대한 한 원장의 근심이 있다. 
 또 다른 집필 방향은 철저히 1인칭, ‘나’의 경우에 한할 것. 동료의사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한 원장의 진료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회를 보는 거울이 됐다. 
 책은 총 22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 장의 소제목에도 한 원장의 마음이 담겨 있다. 
 ‘숨은 그림찾기’(4장)는 치아 치수염 같은 통증을 통반한 질환으로 밤새 앓다가 의사를 찾았을 때, 신경치료를 위해 환자 입안에 코를 박고 신경관 입구를 찾아 헤매는 의사의 마음과 행동을 표현한 것이다. 신경관을 찾고 치료를 할 때 환자의 통증은 마취를 필요로 할 정도인데 그 치료 과정은 마치 ‘암흑으로 덮인 좁고 긴 터널의 여행’(5장)과 같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이를 닦아야 함을 강조하며 스케일링 치료의 과정을 비유한 ‘때밀이의 깊은 사연’(7장), 치주염 치료를 위해 확보해야 하는 치조골을 찾는 한 원장의 바람은 ‘완전한 하얀 속살을 기대하며’(15장) 같은 제목을 입었다. ‘하얀 속살’이란 바로 흰색을 띤 치조골이다. 
 한 원장은 특히 원가에 대한 얘기를 꼭 쓰고 싶었다고 한다. 원가만을 생각하는 환자들의 태도를 한 원장은 안타까워했다. 진료실을 황폐하게 만드는 가장 흔한 동기 중 하나가 원가를 둘러싼 얘기와 관련 있다. 초보 화가의 그림 값과 대가의 그림 값이 다른 것에 비유했다. 진료란 그런 것이다.
 의학이라는 학문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환자를 돈으로만 보는 건 안된다. 비 보장 대상이 많은 치과 의료보험 체계에 대해서도 의사입장에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환자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 원장은 이른바 ‘네트워크 치과’를 강하게 비판했던 사람이다. 네트워크 치과란 한 사람이 수십 개 병원 지점을 소유하면서 치료비 결정과 장비구입 등 경영을 도맡고 지점에 있는 의사는 진료만 하는 형태의 병원을 일컫는데 이들은 의료를 전형적인 돈벌이 수단으로만 악용한다고 한 원장은 비판했다. 한 원장의 주장은 단호했다. 의료와 병원이 장사나 기업과 다른 점은 이윤 추구 이전에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공공사업의 목적을 갖는 것에 있다. 한 원장의 이러한 의료철학은 공공영역이 계속해서 무너지려 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의 근심과 맥이 닿아 있다. 
 의료민영화에 대해서도 한 원장은 정부의 정책방향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관(정부)과 의료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소비자, 이 세 주체의 협의가 필요함에도 지금은 관에서만 주도하고 있다고 봤다.
 한 원장은 20여 년 전 일찌감치 임플란트에 관심을 돌리고 진료 현장에 도입했을 정도로 연구와 실험에 열정을 지닌 의사이기도 하다. 
 치과 진료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만한 신소재나 새로운 기법 등과 관련해 최근의 관심 사항을 질문했다. 한 원장은 ‘줄기세포연구’를 꼽았다. 이 연구는 발생학, 해부학, 생리학, 약리학, 미생물, 배양, 그리고 외과 분야에 이르는 전반적인 분야의 기본이 잘 갖춰져야 한다. 아직은 추상적인 단계이지만 모든 과학의 발전이 그렇듯 20년 후엔 지금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놀라운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치의과대학 졸업자 상위 0.1~0.2%까지 진료현장에 나와 있다. 이 상위 인력들에게 연구할 기회와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게 의료발전을 위해서 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한 원장은 생각하고 있었다.     
 보문동에 개원한 지 20년이 되는 한 원장은 그동안 보문동과 성북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 봉사하는 의사로도 알려져 있다. 2011년부터 맡았던 보문동복지협의체 위원장은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노후불량주택 수리봉사(금우회집수리봉사단)는 6년 동안 계속해오는 일이다.  한 원장은 도배를 맡고 있다. 헌 이를 주고 새 이를 달라고 염원하듯 불렀던 노래처럼 헌 집을 고쳐 새 집을 주는 한 원장의 봉사가 책 제목을 다시 보게 한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어린 시절 두려움과 무서움에 떠는 아이를 달래면서 흔들리는 유치를 빼기 위해 어른들께서 노래처럼 불렀던 그 말, 이 사소한 전언 속에는 무한한 희망과 고통을 인내하게 해주는 힘이 실려 있다고 나는 믿는다.
(『까치야 새 이빨 다오』중, 6장 0.5밀리미터의 오차를 넘지 말라, 방어선(DMZ)을 지켜라, p.83 ) 
                                                              

 

박향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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