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4. 01. 15.


"인간은 무한하지 못하고 유한하다"
김계영 동서병원장

 

 

 

 



 

 

고용노동부는 매년 노사상생협력과 일자리 창출 등에 힘쓴 개인, 사업장, 그리고 자치단체를 선정하고 포상한다. 2013년도 ‘노사상생협력’ 유공 개인부문의 수상자로 성북구 하월곡동에 자리한 동서병원의 김계영 원장이 선정돼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병원을 관할한 고용노동부의 감사관이 동서병원의 직원 이직률이 낮은 점 등을 추천 이유로 삼아 품신했고 심사를 통해 결정됐다. 시상식은 지난 12월 20일 63컨벤션텐터(여의도동)에서 열렸다. 
 
재활요양전문병원인 동서병원은 1982년 동성의원으로 개원한 이래 93년도에 현재 위치로 확장 이전하면서 척추관절전문 병원으로 알려졌다.
김 원장의 조부는 전라도 곡성에서 한약방을 운영했다. 가난했던 시절이었기에 김 원장은 국비로 학업을 할 수 있는 해양대학교나 사관학교로 진학하려 하였으나 의사였던 둘째 형의 권유로 의사의 길을 걷게 됐다. 아버지처럼 정형외과의가 되고 싶다는 아들은 의사고시를 앞두고 있다.
 
요즘 의대생들이 힘든 외과를 기피한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김 원장의 외과의에 대한 자부심은 여전한 듯했다. 김 원장은 ‘외과 마인드’를 자주 언급했다. 그런 김 원장도 후회하는 것이 있었다. 그 ‘외과 마인드’ 때문에 수술뿐만 아니라 교정·교합 등의 방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디스크 치료에서 수술 우선이 아니라 자연 치료를 권했던 배경에는 89년도에 영국 런던에서 정형의학(ortho-pedic medicine)을 공부했던 것과 관련 있다. 지금은 재활치료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도수정복술’, 카이로프래틱 또는 한방에서는 추나요법과도 비슷한 치료법에 눈뜬 김 원장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자비를 들여 해외 전문의를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회의 불신과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초청한 의사에게 무례할 정도로 우여곡절을 겪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당시 한국의 정형외과 분야에서는 낯설고 확신할 수 없는 치료법으로 여겨졌다.  
김 원장 또한 당시는 젊었고 수술에 대한 의욕이 강했던 때였다고 회고했다. 지금도 외과는 의대생들의 로망이라고 말했다. 동서병원은 그렇게 수술 잘하는 병원으로 입소문 타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김 원장은 척추관절 전문 병원에서 지금의 재활요양병원으로 전문 영역을 바꿨다. 2011년의 일이었다. ‘갑자기’라고 김 원장은 말했다. 병원을 바꾸면서 수술에서도 손을 뗐다. ‘외과의의 정년’이라고 했다. 또한 일대에 젊은 의사들이 중심이 된 비슷한 과목의 병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금의 병원 체제로 바꾼 다음 한동안 환자 진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울했다고 한다. 수술 장비라든지 MRI 기기 등을 처분했을 때 느꼈을 외과의로서의 김 원장의 감정에 대해서 쉽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닌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병원을 바꾼 것이 얼마나 잘 한 일인지 느끼고 있는 중이라고 김 원장은 말했다.

 “인간은 생로병사의 길을 가게 된다. 지금 우리 병원은 ‘병’ 단계에 와 있는 노인들이 주로 이용한다. 나도 나이들면 그 단계를 갈 것이다. 인간은 무한하지 못하고 유한하니까”, 김 원장은 말했다.
 
김 원장의 말처럼 3층부터 7층까지 마련된 입원실의 환자도, 재활치료장에서 치료를 받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동서병원은 정형외과를 비롯해 재활의학과, 신장내과, 소화기내과, 호흡기내과, 신경과 등에 전문의를 두고 있으며 이외에도 종합건강검진을 할 수 있는 체제도 갖춘 병원이다.
 
김 원장은 노인들의 병을 치료하고 돌보는 요즘의 ‘정형내과의’ 같은 생활을 신이 새롭게 열어준 인생의 한 장으로 여기고 있었다.  “지난 연말 병원 송년회를 했다. 매년 하던 일이지만 지난해에는 새삼스럽게 ‘인간의 삶이란 이런 거구나’를 느꼈다. 뿌듯하고 의사로서의 보람을 십분 느꼈다. 걸을 수도 없었던 환자를 수술해서 걸어나게 했던 때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보람이었다.” 직원은 물론 움직임이 가능한 모든 환자들과 보호자들, 그리고 간병인들까지 모여 준비한 음식과 선물을 나눴고 공연을 즐겼다.  
 
재활요양전문병원이지만 재활치료만으로는 병원 경영이 힘들 수 있는 구조라고 했다. 재활치료 수가가 높지 않다. 병원 입장으로서는 자꾸 비보험 쪽을 개발하다보니 환자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의료보험체계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료보험비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지금의 의료민영화를 의료법인 내에 주식회사를 만들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의료민영화는 지금도 많이 왜곡돼 있는 의료를 더 왜곡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간호사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다는 점을 김 원장은 강조했다.

 “그 과정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마인드의 문제다. 의사면허증을 가진 사람이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요즘 요양병원이나 요양원도 의사 아닌 사람들이 운영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특히 건설업자들 중에 그냥 놀리고 있는 공간을 고용 의사 하나 내세워 요양원 등으로 만들어 운영하기도 한다. 환자를 수익을 내는 상품으로 보는 것이다.”
 국가가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김 원장의 원칙주의와 의사로서의 명예와 자부심이 다시 한 번 드러나는 말이었다.
 
김 원장은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김 원장은 오래 전부터 사회복지에 관심을 기울여왔고 10여 년 전부터는 일본의 ‘개호보호’에 대한 연구도 한 바 있다. 우리 보다 앞서 일본의 노령화사회에 대비한 사회복지 체계를 들여다보면서 준비한 ‘마인드’가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김 원장은 최근 인수한 ‘은초록 사회복지법인’ 운영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위탁받은 어린이집과 재가노인요양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발전시켜 병원 부설 요양원으로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김 원장은 복지법인 발전과 관련한 일을 하다 부딪힌 현실의 벽을 실감한 듯했다. 병원이 위치한 성북지역의 사회복지 영역은 이미 자리 잡은 한 재단의 광범위한 영향력 하에 있음을 최근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병원 또한 심한 경쟁에 내몰린 상황을 짐작했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경쟁과 효율을 동일시하면서 개방과 규제완화, 영리화(민영화나 경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해도 본질은 영리추구보장과 사유화의 강화다) 추진의 근거로 삼아왔다. 이제는 공공영역까지 손을 대려하고 있다. 이 방향이 가져올 결과가 어떨지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바보가 아닌 이상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김 원장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던 날 아침 들려온 뉴스는 예사롭지 않았다. ‘한류스타 가족도 피하지 못한 가족 비극’이라는 헤드라인이 붙기도 한 이 사건은 치매를 앓는 부모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었다. 이번 사건은 유명인의 가정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더 주목받았을 뿐 이런 가족의 비극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개인이나 가족 단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오래 전에 넘어선 상태다. 계속해서 경쟁이라는 명목 하에 민간부문에 떠넘기고 누군가의 이익을 극대화해주기 애쓰는 이들의 주장에 분노할 때다.   
                                                                

박향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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