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4. 02. 05.


어리석은 사람

 

 

 

지난해 말 국내 유수의 카드사인 KB국민·NH농협·롯데카드 등 3개 카드에서 유출된 개인정보는 1억 건이 넘고, 피해자는 1천500만~2천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해져 세상이 떠들썩하다.
지난 2월 1일 오후 6시 기준 국민·롯데·농협카드의 탈회 건수는 총 84만 건, 재발급·해지 건수는 612만 건으로 집계됐다고 하고, 최근에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통장에서 자동이체로 돈을 빼 간 사건이 발생해 주민번호와 계좌번호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적이다.
사방에 내 주민번호와 통장번호를 건넨 우리 국민은 “혹시 내 통장은? 내 카드는 안전한 걸까?” 누굴 믿어야 할지 발만 동동 구르는 형국이다.
이런 와중에 이번 사태를 총 책임져야할 주무부서 장관이라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며 우리 국민을 \'어리석은 사람\'에 비유하는 어처구니없는 망발을 해대어 그렇지 않아도 화가나있는 피해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다.
그 장관은 "금융소비 때 더 신중하자는 취지에서 말씀드린 것이지 책임을 소비자에 전가할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며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장관이라는 사람이 평소에 청와대만 쳐다봤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라니 한심할 따름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월 27일 "최근 공직자들의 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국민 마음에 상처를 주고 불신을 키우고 있어 유감"이라며 재발 시 문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국민을 어리석다고 말하는 장관에게 경고에 그쳤다는 것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처사다.
사실 그의 말대로 우리 국민이 어쩌면 어리석을 수도 있다. 지갑을 열면 이 카드 저 카드해서 한 10장정도 있으니 말이다. 어떤 이는 백화점에 자주 가고 포인트 적립해주니 백화점 카드 서너 장에, 은행가서 대출받으려면 기본이 은행카드 한 장, 핸드폰 살라치면 또 카드 한 장에 자동이체까지 해야 하는 등등 본인이 원해서라기보다는 어리석게도 거의 강요에 의해 지갑만 두꺼워 진다.
이런 사정을 알 리가 없는 잘난 장관이 “능력도 없는 것들이 뭐 그리 카드를 많이 가지고 있느냐”고 질책하는 말로 들려 어리석은 필자의 경험을 변명삼아 늘어놓는 중이다.
그러나 그 장관, 그리고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들은 우리 국민의 어리석음에 고마워해야 한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이 카드 저 카드를 써대며 돌려막으면서 열심히 일해 돈도 갚고, 또한 직간접으로 세금 내면서도 이런 사회를 부추긴 정부나 기업을 탓하기보다는 “내 탓이오!”하면서 자기 신세한탄 한다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만약에 우리 국민이 우리가 뽑아준 사람들이 이런 사회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임명받은 고위공직자들이 뻔히 보이는 이번 사태를 방조하거나 일정부분 협력했다는 것을 눈치 챈다면 정치해먹기 어렵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우리 국민은 일제 강점기 때 맨손으로 3.1운동을 했고, 6.25동란의 쓰라림도 이겨냈으며, 민주화 운동도 체험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보기에는 어수룩하게 보이지만 일단 화가 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우리 국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습성이 3개월이면 다 잊는다는데 어물쩍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 곧 다가올 지방선거국면에 불을 지피면 이까짓 카드사태 정도는 곧 묻힐 텐데 까짓 장관들 실언쯤이야 어리석은 국민이 얼마나 알아듣겠냐면서 뒤돌아서서 자기들끼리 낄낄거릴 것을 생각하니 화가 치민다.
그 사람 말대로 차라리 어리석게 사는 것이 편한 세월이고, 소위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인식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시절에 뭘 그리 혼자 똑똑한 척 하는지 이놈의 오지랖이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