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4. 02. 26.
고향 기행- 편백나무 숲을 찾아 몸과 마음을 치유하다
정형진 성북구의회의원/정책학 박사
● 편백나무 숲, 치유의 마술사
숲은 치유의 마술사다. 로버트 프루스트는 눈 내리는 저녁 숲을 어둡고 깊고 아름답다 했고, 윌리엄 브라이언트는 숲을 신의 첫 성당과 같다고 명명했지만, 필자에게 있어 숲은 언제나 지친 심신을 맑게 해주는 명상과 치유의 공간이다.
내 고향 고창에는 산세 수려한 방장산이 있다. 어느 누구가 아스라한 기억 저편의 유년의 고향 산이 아름답지 않겠느냐만, 방장산은 어린 시절 청운의 꿈을 키워준, 넉넉한 어머니같은 존재로 필자가 유독 숲을 좋아하고 산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눈부신 화두로 떠오르는 요즘, 필자는 성북보건소 직원 몇 분과 고창 과 인접한 장성의 편백나무 숲을 찾기로 했다. 늘 바쁜 일상을 뒤로 하고 편백나무 숲이라며 도시에서 지친 심신을 풀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은 벌써 숲길을 걷고 있었다. 특히 편백나무의 효능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기에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편백나무 군락지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클 수밖에 없었다.
필자 일행이 고창 북단에 위치한 축령산에 도착했을 때는 구름 걷힌 겨울 오후의 하늘이 유난히 청정했다. 푸르고 수려한 편백나무들이 빽빽이 은화(銀花)의 축복 속 장관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마치 자연의 어떤 힘에 이끌린 듯 한발 한발 숲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양하 선생이 신록이 그의 눈을 씻고, 머리를 씻고, 그의 마음 구석구석을 씻어낸다고 표현했듯이, 박하사탕의 산림향이 코를 찌르며, 그 깊은 숲 편백나무에서 방출되는 피톤치드의 상쾌함이 필자의 온 몸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감싼다.
피톤(photon)은 ‘식물’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치드(cide)는 ‘죽이다’를 의미하는 라틴어다. 식물이 스스로를 해충, 곰팡이, 병원균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나무에서 방출되는 휘발성 물질로서 피톤치드는 활엽수보다 편백나무, 소나무 등 침엽수에서 두 배 정도 더 발산되며, 그중 편백나무는 소나무보다도 4~5배 정도 더 많이 발산한다.
계절적으로 피톤치드의 주성분인 테르펜은 겨울에 적고 봄. 여름에 점점 발산 량이 늘어나 8월에 최대가 되며, 하루 중에는 오후보다는 오전11시경이 최대로 발산된다고 하니, 최고의 삼림욕은 8월 오전 11시경 편백나무 숲이 가장 좋다하겠다. 그리고 그 농도는 산기슭보다는 경사가 심할수록 짙어져 산 중턱에서 제일 높은데, 이는 산정산보다 산중턱의 나뭇잎이 울창하기 때문이다. 삼림욕이 사람 몸에 좋은 과학적 이유를 열거하자면, 우리가 나무그늘에 가면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나뭇잎이 햇볕을 차단해 줄뿐 아니라 나무의 증산작용으로 나뭇잎에서 수분을 방출해 주위의 더운 열을 빼앗아 감으로써 주위를 시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나뭇잎은 대기오염 물질을 흡수하거나 잎의 표면에 흡착시킴으로써 오염물질을 없애주며, 나무가 방출하는 피톤치드에는 식중독균, 모기 , 집먼지 진드기 등 각종 해충을 억제해 주어 숲속에 있으면 그 좋은 작용의 피톤치드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삼림욕 효과 중 가장 큰 역할은 그 피톤치드의 냄새로 몸에 평온함을 주며, 기분전환을 시켜줌으로써 사람에게 심신의 안정을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숲의 여러 가지 기능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삼림욕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발표한 의학 논문에서는 숲 속 환경에서는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자연 살해 세포(Natural killer cell)의 활동성과 수가 증가하고 있고, 림프구(lymphocyte)의 세포내 항암 단백질이 증가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한 숲 속 여행을 다녀 온 사람에서는 7일 정도까지 자연 살해 세포의 활동성의 증가가 유지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피톤치드에 많이 노출된 인구 군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과 노아드레날린이 감소해 면역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연 살해 세포의 수와 활동성을 증가시키는데 기여한다는 보고도 있다. 또한 국내 연구진이 흰 쥐에 전기 자극으로 스트레스를 가한 뒤 각종 나무의 피톤치드를 쏘인 결과 스트레스가 크게 완화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좋은 삼림욕의 기운을 한껏 쏘이며, 지친 일상이 힐링 되는 동안 꿈결처럼 편백나무 숲 끝자락인 전북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문수사거리에 도착했다. 흩날리던 싸락눈이 어느새 함박눈으로 바뀌며, 하늘과 땅과 숲이 한데 어우러져 피아의 구분이 없는 백옥의 설원이 펼쳐지는 숲 속은 과히 겨울풍광의 백미로 그것을 볼 수 있었던 우리 일행은 행운아들이었다. 더불어 오는 길에 세계에서 가장 조밀한 밀집도로 구성되어 있다는, 그 유명한 고인돌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2000.12. 2)된 447기를 볼 수 있었던 것도 이 즐거운 여행길의 덤으로서 도시의 찌든 풍경 속에 피로한 눈도 주인 따라 누려보는 모처럼의 호사중의 호사였다.
● 숲은 공기청정기, 내일을 위한 비전
보통사람은 눈앞의 현실을 보지만, 훌륭한 지도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이다. 방금 필자가 지나온 축령산 편백나무 숲은 삼림욕(Forest bathing)의 명소를 예견한 임종국 선생의 피와 땀이 이루어 낸 결실이다.
한국의 조림 왕이라고 불리는 춘원 임종국(林種國: 1915~1987)이 1956년부터 1987년까지 사재를 털어 숲을 가꾸었다고 한다. 이 숲은 산림청과 유한 킴벌리(주), 생명의 숲 국민운동이 주최한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숲’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숲을 가로지르며 조성된 약 6km의 길은 국토교통부에 의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길을 편하게 만들어 놓아 장애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쉬이 걸을 수 있어 좋았다.
임종국 선생은 벌거숭이 땅에 1956년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해 ‘87년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오로지 나무들만 생각하셨다. 자신의 땅도 아닌 국유지에 나무를 심고, 그 나무들을 가꾸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며 자신의 가산을 다 나무 심는 일에 탕진하고도 그 일을 멈출 수 없었던 선생은 다 자란 나무를 담보로 빚을 얻어 계속 나무를 심었다. 결국 그 빚을 감당하지 못해 선생에게는 자식 같았던 나무들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을 임종국 선생이 돌아가신 후 산림청이 2002년에 사들여 2009년부터 ’치유의 숲‘으로 가꾸게 되었다고 전해한다.
우리 일행의 편백나무 숲 방문은 임종국 선생이 훗날을 보고 아낌없이 가꾼 숲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고, 오롯한 행복이 되는 것을 보며 큰 깨달음을 얻고 돌아가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어떤 삶을 빚어내든, 내가 어떤 삶의 경로에 있던 눈앞의 내 자신의 이익보다는 내일을 위한 비전을 갖고 다른 이들에게 치유의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가꾸고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 어느새 눈이 걷히고 보름달이 환하다. 그 달을 업고 돌아오는 길이 왜 이리 시리고 벅찬지....순박하게 살아가는 우리 성북구민들이 함께 이 힐링의 기쁨을 함께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잘 가꾼 편백나무 숲에서 주민들이 그들의 건강한 꿈을 맘껏 꿀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해본다. 그 한 가운데 편백나무 같은 존재가 되어 우리 주민들에게 힐링의 기쁨이 되고, 잠시나마 고단한 일상의 짊을 내려놓을 수 있는 버팀목의 일군이 되리라.... 그리고 이 같은 필자의 비전이 현실로 곧 이루어진다는 속다짐을 해 본다. 혹여 이런 내 속내가 들켰을까나 하는 수줍음에 슬쩍 일행을 쳐다보며 괜스레 길을 재촉해본다. 이제 편백나무 숲을 뒤로 하고, 언제 또 다시 이 산야를 볼 수 있을까 ……
기약 없는 이별 속 나른한 귀경길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