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4. 03. 12.
세상이 어려울수록 ‘보다 나은 삶, 보다 나은 의미’를 추구하는
김기용 (사)한국청소년육성회 수석고문
우리 곁에서 이미 자라고 있는 우리의 미래, 청소년들의 지킴이, 사단법인 한국청소년육성회(이하 육성회)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지난해 5월 육성회 수석고문에 위촉된 김기용 전 경찰청장을 만났다. 김 수석고문은 2012년 5월 경찰청장에 임명돼 2013년 3월 퇴임했다.
김 고문은 지난 2월 『운명아 비켜라 : 아라이, 경찰청장이 되다』(고요아침)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했다. 출판기념회를 가졌고 모금된 천만원을 육성회에 기탁했다. 지난주는 김 고문이 충청북도 도지사 새누리당 공천 후보로 출마할 것인지 여부로 민감했던 시기였다.
1957년 충북 제천 출신인 김 고문은 책 부제에도 나오는 ‘아라이’로 청소년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아라이’란 흔히 음식점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이를 부르는 말이다. 352쪽에 이르는 김 고문의 자서전은 우리에게 익숙한 서사를 보여준다.
가난한 집, 무기력하거나 무책임한 아버지, 생활력 강하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 고아원생활, 선반공장 견습공, 학원 기도를 하면서 고학을 하기도 했다. 9급 공무원,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고졸 사원이었고, 행정고시 재경직에 합격, 상공부 사무관으로 근무했다. 다시 5년 뒤, 경찰이 되기로 결정, 20년 뒤 마침내 대한민국 경찰조직의 수장인 경찰청장에 오르는 인생역전의 서사가 펼쳐진다.
- 35세에야 경찰로 전직을 한 이유가 무엇인가?
중앙부처에서 일했던 5년 동안 했던 일의 성격은 대체로 국가계획을 수립하는 일이었다. 법령을 만드는 일이 주였다. 중요한 일이지만 업무 결과나 효과를 구체적으로 계량화하기도 어렵고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도 없었다.
반면 경찰업무는 구체적이다. 서민과 관련된 일들이 많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라고 봤다.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만 업무는 난이도가 높다. 보람은 있었지만 대한민국에서 경찰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김기용 개인으로서는 어려웠다.
- 어려운 삶 속에서도 ‘보다 나은 삶, 보다 나은 의미’를 찾았다는 표현이 책에 자주 나온다. 어떤 삶의 가치를 지향하며 살았는지 궁금하다.
그런 욕구, 의지, 용기의 원천이 무엇이었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아마 책을 좋아했고 많이 읽었던 것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 주어진, 한번 밖에 없는 삶을 헛되이 하거나 하찮게 보내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의미 있는 일을 하려면 조직 내에서도 높은 위치에 서야 내 뜻을 관철 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한국전력에 근무할 때 고졸 사원이었다. 천정을 깨고 싶었다.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다.
- ‘기회의 사다리’를 언급했다. 검정고시, 행정고시 등 국가시험과 방송통신대학이라는 제도와 그 제도를 공정하게 운영해준 국가와 사회에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궁금한 건, 그 이후, 즉 시험까지는 어떻게 해볼 수 있겠는데, 그렇게 조직에 들어가서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어떤가? 청소년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은가?
고아원에 맡겨졌던 어려운 시절에, 해야 할 일은 꼭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체득했다.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힘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원칙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키려 노력해왔다. 경쟁이 심한 조직 내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다. 이 원칙을 지키지 못해서 스스로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다.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자주 인용하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있다. ‘남자는 스스로 서야 한다. 스스로 서지 않으면 아무도 세워줄 수 없다.’ 힘들 때, 포기하고 싶을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나 스스로 서지 않으면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스스로 서면 학연, 지연 말고도 사람의 인연, 인복, 인덕이 생긴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보다 높은 꿈을 가지는 것이다. 나보다 높은 자리에서 전체를 보는 것이다.
- 청소년들을 만나보면서 요즘 청소년들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스스로 서라’, 그 이상을 말해줄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가?
환경은 많이 변했지만 본질적인 변화는 없다. 스스로 서라고 말하는 것은 냉정하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국가나 사회, 어른들이 해결해야 할 일이다. 아이들은 아무리 어려운 여건에 있더라도 지금보다 나은 내일,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어차피 골이 깊어진 빈부의 차이를 보면서 뭐라고 얘기해 줄 수 있나? 아까 얘기한 원칙을 가지고 스스로 서야 한다.
- 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책을 썼던 목적은 불우한 아이들과 경찰에 대해 국민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을 전달하기 위해 썼다.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과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출판기념회를 했다. 그런데 출판기념회가 마침 지방 선거와 맞물렸다. 사람들이 내가 정치를 하려는 걸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충북지사 후보가 뚜렷이 없던 때였다. 나이도 젊으니 뛰어보라고 등 떠미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정치를 다시 생각하고 내가 할만한 사람인지 고민했다. 아무래도 나 같은 사람이 정치를 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 결심을 망설이게 하는 건 어떤 점인가?
우리 사회에서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는가이다. 법을 어기지 않고 자기의 뜻을 관철할 수 있는 환경이 돼 있는가가 중요하다. 나는 단기필마로 해야 되는 사람인데 우리나라에서 세를 모은다는 건 흙탕물에 뛰어든다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해서 내가 뜻하고 원하는 정치를 할 수 있느냐에 대한 판단이 안 선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이후 ‘정치인으로 살 것인지, 접고 작은 곳에서 봉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옳은지’, 김 고문의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박향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