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6. 06. 08.
무후선열 17위를 아십니까?
서울북부보훈지청 보상과 양소영
“아버지,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부모는 늘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아니길 기도하며 아들을 담담히 보내려 애쓴다.
아들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부모님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본다.
목숨을 담보로 독립운동을 하러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을 부모님의 주름이 눈에 선하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부부의 날 등 가족 기념의 날이 유독 많은 5월이다.
그중에 5월27일은 광복군무후선열 17위 추모제가 있는 날이다.
무후선열 17위란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임시정부는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한국광복군은 중국 각지에서 중국군와 협력하여 일본군과 싸웠는데 이런 활동 중에 수많은 한국광복군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중에 후손을 남기지 못하신 분들을 무후선열이라 칭한다.
후손이 없거나 유해조차 찾을 수 없어 유품만으로 합장되어 있는 17위 선열들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 수유리에 합동묘역을 단장을 하였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들은 무후선열이란 의미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고 그로 인해 찾아와 주는 이도 거의 없는 이분들에겐 가정의 달 5월이 더욱 쓸쓸해 질 수밖에 없는 달이다.
한국광복군 무후선열 합동 묘비에는 ‘비바람도 찼어라! 나라 잃은 나그네야. 바친 길 비록 광복군이었으나 가시밭길 더욱 한스럽다. 순국하고도 못 잊었을 조국이여! 꽃동산에 뼈나마 여기 묻히었으니 동지들아 편히 잠드시라’가 새겨져 있다. 17위 선열들은 김성률, 김순근, 김운백, 김유신, 김찬원, 동방석, 문학준, 백정현, 안일용, 이도순, 이한기, 이해순, 전일묵, 정상섭, 조대균, 한휘, 현이평 등 17위다.
이분들도 예전에는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남편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후손이 없다고 하지만 현재는 우리 모두가 그분들의 후손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의 우리가 있음을 깨닫고 충혼이 서려 있는 그곳에 가족들과 함께 찾아가 참배함으로 후손들인 우리가 여전히 잊지 않고 있음을 전해야 한다.
다시 한번 호국영령들의 거룩한 희생과 애국충정의 숨결이 서려 있는 선열분들의 묘역에 우리의 발걸음들이 많아지길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