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6. 12. 14.


구신녀와 정부3.0

서울북부보훈지청 보훈과 이강준

  얼마전 재미있는 단어를 신문기사로 접했다. ‘구신녀’다. ‘구급 신규 여자공무원’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구신녀에는 이런 저런 외압과 무관하게 규정대로 법대로 일을 처리하는 조금은 융통성 없는 공무원이라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어려운 취업 환경에서 젊은 공무원들에게는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따라서 어떤 외압에도 이를 위협하는 규정위반은 절대 저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말이라고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단어가 요즘 우리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최순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연은 이렇다. 최순실이 공공기관에 업무를 볼 일이 있었다. 그런데 본인이 가지 않고 대리인을 보냈단다. 하지만 ‘구급 신규 여자공무원’이던 담당 공무원은 서류가 미비하다며 접수를 반려했고 결국 최순실이 직접 방문해 일을 처리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스게 소리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둘렀다고 하는 최순실도 이 구신녀에게는 꼬리를 내리고 본인이 직접 찾아와 일을 처리했다는 이야기다.
특정인의 이권을 위해 온갖 불법이 저질러지고 그것이 전 국민을 분노케 한 요즘같은 시기에야 이 구신녀의 ‘법대로’처신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지만 최순실 사건이 없었다면 구신녀의 이러한 행동은 많은 사람들에게‘불친절하다’거나 ‘융퉁성없다’고 비난받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라. 만일 사정이 있어 어떤 업무를 처리하라고 지인을 보냈는데 서류가 미비하다고 반려하고 직접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면 과연 당신은 어떤 심정이겠는가? 많은 경우 전화를 해 그 구신녀를 비난함은 물론 이런 불편함을 성토하며 비효율적인 정부 조직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았을까?
사실 정부는 국민들의 이러한 불편함을 없애고 국민의 편의와 필요를 사전에 파악해 대처하고자 ‘개방, 소통, 공유, 협력’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정부3.0을 모토로 정부의 일하는 방식을 전면적으로 개선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범위에서 정부의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것을 뜻한다.
 정부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이고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법과 절차에 따라 공무원이 정당하게 처리한 업무임에도 민원인에게‘불친절하다’,‘무능하다’라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 실제 법제도가 미비하거나 해당 공무원의 자질이 부족한 경우도 있겠으나 이러한 비난은 ‘자신의 입맛대로 일처리를 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의 토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법의 위에서 자신의 요구대로 정부가 움직여주기를 원한다면 그 또한 최순실 같은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정부3.0의 성공은 비단 정부와 공무원들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불합리한 부분은 적극적으로 지적하되 설사 자신의 뜻대로 일처리가 되지 않더라도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진 결정은 국가 구성원으로서 존중하는 국민의 태도가 보다 합리적이고 유능한 정부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한 토양 안에서 많은 구신녀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기 소임을 다하며 국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답답해 보이더라도 법을 바라보는 구신녀들이 권력자의 입만 바라보는 일부 공무원들보다 국민과 국가에 훨씬 더 큰 보탬이 된다는 것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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