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1. 01. 20.
주택공급 고삐 바짝 당겨야 할 때다
▲박근종(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문재인 대통령은 1월 1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주거 안정을 위해 필요한 대책 마련을 주저하지 않겠다. 특별히 공급 확대에 역점을 두고,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다양한 주택공급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겠다.”라며 새해 첫 국무회의에 이어 다시 한번 ‘공급 확대’를 강조했다. 취임 이후 “투기 차단 대원칙에 어떤 타협이나 정치적 고려도 있을 수 없다.”라며 줄기차게 추진했던 투기 수요억제 일변도의 정책 기조에서 공급 확대를 통해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그동안의 부동산정책이 일자리와 교육, 직주 근접 교통 환경을 찾아 도심으로 몰리는 수요에 부응하고,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논리로 풀어야 할 주택문제에 ‘가진 자’의 투기적 수요를 옥죄는 규제에 몰두하는 이념과 가치의 잣대를 들이댄 데 대한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뉴욕과 도쿄 등 주요 도시는 도심의 주거공간을 확대해 글로벌 도시경쟁력을 키워가는 사이에 서울은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지난 20년간 주거지역의 용적률을 낮추고, 역세권 등 도심 개발에는 난개발 딱지를 붙여 제한을 가했다. 뉴타운 사업은 취소되기 일쑤였고, 재건축은 초기 단계부터 철퇴를 맞아 사업이 차질을 빚어냈다.
부동산114 조사에 의하면 올해 전국의 아파트 입주 물량은 26만5,594가구로, 지난해 36만1,320가구 대비 9만5,726가구 감소(26.5%)할 전망이며,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2만8,931가구로, 지난해 4만9,860가구 대비 2만929가구 감소(42%)할 전망이다. 이러는 사이 집값은 다락같이 올랐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 전셋값이 전국적으로 5%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고,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역시 4%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국민은행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 가격은 10억4,299만 원으로 1년 새 3.3㎡(평)당 3,352만 원에서 4,033만 원으로 20.31%나 올랐고, 2017년 5월 당시 3.3㎡(평)당 2,322만 원과 비교해도 3년 6개월 만에 4,033만 원으로 무려 73.68%나 뛰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1월 14일 발표한 ‘서울 아파트 6만 3천 세대 시세 변동 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 18년간 노동자 임금은 1천 6백만 원 상승한 데 반해, 서울의 아파트값은 3억 1천만 원에서 11억 9천만 원으로 무려 8억 8천만 원인 3.8배 상승하여 노동자 임금의 55배나 올라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는데 노동자가 임금을 한 푼도 안 쓰면 36년이 소요되고 노동자가 임금을 30% 저축하면 118년을 모아야만 한다는 충격적 발표는 이를 방증하기에 충분하다.
24차례에 걸쳐 대출·세금·임대차 등에 온갖 규제책을 다 동원해 받아든 씁쓸한 결과다. 오죽했으면 빚내서 투자한다는 ‘빚투’를 넘어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영끌’에 이어 퇴직금까지 끌어당긴다는‘퇴끌’이 나왔겠나 싶다. 이러한 점에서 부동산정책이 진정성을 갖고, 국민 공감대를 얻으려면 공급 확대 정책 기조의 획기적 전환이 절실히 요청된다. 먼저 주택수요자를 투기 세력으로 간주하고 ‘시장과 맞서는 부동산 전쟁’이 아니라 ‘시장 친화적 부동산정책’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언급한 역세권·준공업지역·저층 주거지 고밀도 개발은 물론, 민간의 주택공급을 촉진할 인센티브와 규제완화책으로 부동산시장에 확실한 메시지를 눈에 보이게 보여주고 손에 잡히게 지어줘야 한다.
우선 지하철 역세권 반경을 현행 350m에서 500m로 확대하고, 역세권의 평균 용적률을 160%에서 300%, 최대 700%까지 늘린 후 이를 바탕으로 주택공급을 활성화해야 한다.
정비사업은 민간 참여를 유인할 수 있도록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며, 준공업지역 개발의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사업부지 확보 비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주거와 산업시설이 혼재된 ‘앵커(핵심) 산업시설’을 조성하고, 저층 주거지 개발을 위해 ‘미니 재건축’인 소규모 재건축 사업을 활성하고, 동네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기존 도시재생에 주택공급 기능을 보강하며, 사업 속도가 다른 소규모 단지들끼리 통합 재건축을 추진해 건폐율과 용적률, 주차장, 일조권 등 도시계획 규제 완화 등의 혜택을 주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관리방식의 심사기준을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도심의 주택공급을 신속히 확충하기 위해 용도지역을 적극적으로 ‘종상향’으로 변경하고, 건폐율을 넓히고, 층수를 높이고 용적률을 상향한다고 해도 물리적 여건상 아파트가 빵이 아니기에 밤을 새워서 만들어도 수년이 걸릴 뿐만 아니라, 용도변경에 대한 인허가권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가 갖고 있으며,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임대차 기간 10년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주택공급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신축보다는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다주택 소유자의 매물 유도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정부와 여당의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단호한 의지와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를 위한 결연한 정책 견지는 높이 평가하고 바람직하다고 본다. 2018년 부동산 불로소득이 세후 118조 원이나 되고 이는 지난해 서울시 전체 예산 35조 원보다 3배 이상 된다. 누구는 최저임금이라도 벌어보겠다고 밤낮으로 땀을 흘리는데, 누구는 부동산으로 쉽게 돈을 버는 현실은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투기 차단과 다주택 소유자의 시세차익 환수를 목표로 추진해온 정부와 여당의 깊은 고민은 이해하고 불가피하지만, 일정 기간을 정하여 한시적으로 다주택 소유자들이 집을 팔 수 있는 ‘퇴로’를 열어주는 것도 주택시장 매물을 늘리는 공급 확대 정책이 될 수 있다. 차제에 집을 사지도, 팔지도, 보유하지도 못하도록 만든 양도세, 취득세, 보유세 등 부동산 중과세 전반을 되짚어볼 일이다.
현행 양도세 체계에서는 증여의 폭증과 거래 절벽만 키울 뿐이다. 왜냐하면 다주택 소유자의 시세차익을 환수한다는 경제정의 실현은 높이 평가하지만 실질 수요자들에게는 직접적 이익이 없어 별 의미가 없다. 따라서 현 양도세는 팔려는 사람에게도 사려는 사람에게도 모두 다 부담스럽게 느낄 뿐이다.
오히려 세금을 올리면 집값이 오르고 집값을 올리면 세금이 오르는 악순환만 반복되고 가속화될 뿐이다. 양도세를 현행 수준보다 더 낮춰도 매물이 나올까 말까인데 올해 6월이면 양도세 중과가 더 무거워진다. 다주택 소유자들이 집을 팔 이유가 전혀 없는 이유다. 현재 서민들을 가장 괴롭히는 전세난 해결을 위해 당장 필요한 것은 수년 후에나 지어질 3기 신도시나 강남 대단지 재건축 같은 것이 아니다. 당장 한두 달 안에 전세 수요를 매매로 돌릴 수 있는 적당한 가격대의 다양한 매물이 필요하다.
결국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책으로 다주택 소유자들의 매물이 시장에 나오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그리고 가장 단순하고 손쉽게 다주택 소유자 매물을 늘리는 방안이 바로 거래세를 낮춰주는 것이다. 다주택 소유자들의 매매수익을 부정하면서 시장에 매물이 쏟아지게 하는 비책이나 묘안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결코 선거용 선심이나 백기를 든 정책의 후퇴가 아니라 주택시장을 정상화하는 빠르고 손쉽고 바른 방법이다. 장기적으로는 공급 중심의 투기 차단과 다주택 소유자의 시세차익 환수를 추진하되 단기적으로는 주택을 짓는 실질적 공급과 다주택 소유자들의 매물이 시장에 나오도록 유도하는 ‘투트랙 전략’을 써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