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2. 07. 20.
경기침체 공포로 치닫는 세계 경제의 먹구름
▲박근종(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세계 경제의 방향지시등이 ‘I(Inflation│물가상승)’에서‘R(Recession│경기침체)’로 향해 깜빡이고 있다. 경기침체 먹구름이 짙어진 가운데 유가·환율·금리 모두‘R’을 가리킨 것이다.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인플레이션(I) 공포’가 이제는 글로벌 ‘경기침체(R) 공포’로 선회한 탓이다.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가 지난 5월 4일(현지 시각) 통상적인 수준인 ‘스몰 스텝(Small step │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뛰어넘는 ‘빅 스텝(Big step │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은 데 이어 지난 6월 15일(현지 시각)에도 연방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 │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의 파격적인 금리 인상을 전격적으로 이어간 데다, 각국 중앙은행들도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소비 위축에 따른 생산 감소, 투자 축소로 인한 고용 불안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세계 경제가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신호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다 오히려 경기둔화를 불러들일 수 있다는 공포감은 고공비행하던 국제 유가까지 떨어트리고 있다. 국제유가는 수요위축 우려에 폭락을 거듭한 끝에 경기침체의 우려로 국제유가가 급락해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 7월 12일(현지 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8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8.12%(8.45달러) 떨어진 95.64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금융정보업체 다우존스 마켓 데이터에 따르면 이는 지난 4월 11일 이후 최저가격이다.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글로벌 기준유인 북해산 브렌트유 9월물도 7.1%인 7.61달러 떨어진 99.49달러로 마감했다. 브렌트유 가격도 지난 4월11일이후 3개월만에 최저가격으로 떨어졌다.
유가는 향후 경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Barometer)’로 통한다. 경기 상승기에는 원유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 때문에 유가가 오른다. 반대로 경기 침체기에는 경제활동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유가가 내려간다. 그동안 유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부족, 팬데믹 이후 경제 활동량 증가 기대에 따른 수요 확대로 상승해왔다.
지난 달만해도 WTI 7월물 선물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를 넘으며 “150달러 시대가 열린다.”는 관측도 나왔다. 전쟁으로 인한 공급부족이나 유럽 에너지 위기라는 거시적 변수는 변하지 않았는데도 유가가 급락한 것은 그만큼 경기침체 우려가 커졌다는 의미다.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가 이어지고 있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추가 증산이 무산됐는데도 유가가 하락한 것은 미국의 경기침체와 중국의 코로나 봉쇄로 에너지 수요가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 공포 속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했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 연말 75~65달러까지 폭락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의 시티그룹(CitiGroup)은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수요가 감소할 경우 국제 원유가격이 올해 말 배럴당 65달러, 2023년 말 45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침체 신호로 여겨지는 미국 국채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도 벌어졌다. 지난 7월 5일(현지 시각) 한때 2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2.792%로, 10년물 금리 2.789%를 넘어섰다.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다.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은 것이 일반적인데 단기 금리가 더 높은 역전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은 경기 악화가 예상된다는 뜻이라 ‘불황의 전조’로 통한다. 일반적으로 장기 채권은 단기 채권보다 금리가 높다.
그런데 이것이 역전됐다는 것은 그만큼 향후 경기를 나쁘게 보는 투자자가 많다는 의미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기가 식었다는 수요 둔화의 징조는 곡물 등 원자재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고, 안전자산인 금까지 모두 하락 중이다. 지난 7월 5일(현지 시각)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옥수수 9월 인도물은 3.4%, 대두 8월물은 9.75% 하락했다.
금, 구리, 은 등 금속도 줄줄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특히 지난 7월 5일(현지 시각)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8월물 금 선물은 전장 대비 2.1% 하락한 온스당 1,763.90달러에 거래를 마쳐 1,800달러 선 아래로 내려갔다.
반면에 유럽을 시작으로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가시화하자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최대 골머리였던 국제 원유와 곡물뿐만 아니라 안전자산인 금까지 모두 다 추락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달러의 몸값은 20년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달러가 왕(Dollar is King)’이라는 불변의 공식이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 7월 5일(현지 시각)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DXY│1973년=100)는 106.54선까지 뛰었다. 2002년 12월 2일 이후 최고 수준이다. 유럽발(發) 경기침체(Recession)가 몰려오자 안전자산인 달러로 자금이 쏠리는 모습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사상 첫 ‘빅 스텝(Big step │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가운데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하룻 만에 다시 1,310원대 아래로 내려갔다. 한국시간으로 7월 1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312.1원)보다 5.2원 하락한 1,306.9원에 마감했다.
그런데도 달러화는 소폭 올랐다. 이날 오후 4시 20분께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전장보다 0.11% 오른 108.26을 기록 중이다. 문제는 경기침체의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원화 약세는 피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또한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라는 이름의 회색코뿔소(The Grey Rhino)가 돌진하자 금융시장이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7월 6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49.77포인트(2.13%) 하락한 2292.01에 장을 마감했다. 코스피가 종가 기준 2,300선을 하회한 것은 지난 2020년 10월 30일(2267.15) 이후 1년 8개월 만에 처음이다.
다행히 7월 13일 한국은행의 ‘빅 스텝(Big step │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단행으로 한때 2,330선을 넘기도 했지만, 전날보다 10.85포인트(0.47%) 오른 2,328.61에 거래를 마쳤다.
이런 가운데 일본 투자은행 노무라(野村)는 한국,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이 1년 안에 경기침체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의회조사국(CRS)도 지난달 말 발간한 ‘미국 경제가 연착륙·경착륙·스태그플레이션 가운데 어디로 가는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경기침체 가능성을 제기했다.
미국 경제가 경기 경착륙 우려가 현실화할 경우 미국 경제는 40여년 만에 경기침체 이후 일시적으로 경기가 회복되다가 다시 침체되는 ‘더블딥(Doubledip │ 이중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다. 더블딥(doubledip)은 2001년 미국 모건스탠리사의 이코노미스트였던 스티븐 로치(S. Roach)가 미국경제를 진단하면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불황에서 벗어난 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이중 하강’ 현상으로 두 번의 침체의 골을 거쳐 회복기에 접어들기 때문에 ‘W자형’ 경제구조라고도 불린다.
문제는 ‘R(Recession │ 경기침체)의 공포’에 기업들이 움츠러들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기업 설비투자 규모가 지난해 상반기 대비 무려 35.2%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7월 1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시설투자와 유형자산 취득을 공시한 87개 기업의 투자금액은 토지·사옥 매입을 빼고 공장, 기계류 등의 투자만 집계한 결과 8조3,032억 원이다.
작년 상반기 59개 사가 공시한 투자금액 12조8,136억 원과 비교하면 무려 35.2%인 4조5,104억 원이나 감소했다. 기업당 투자금액도 954억 원으로, 전년 동기 2,172억 원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30일 발표한 ‘6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도 이달 모든 산업의 업황 실적 BSI는 5월의 86보다 4포인트 떨어진 82로 기준치(100)를 크게 밑돌았다. 지난해 2월의 76 이후 1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경제는 심리라고 했는데, 얼어붙은 기업경기심리가 올 상반기 ‘투자 절벽’을 불러온 것이다. 이를 결코 가볍게 볼일이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물가 및 서민 생활 안정에 초점을 맞추는 특단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각 경제 주체가 위기의 실상을 공유하고 스스로 내핍과 고통을 분담하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켜켜이 쌓인 총체적 난관과 경제위기를 극복해 나갈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