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2. 08. 17.


115년 만의 최강 폭우 취약계층에 더 가혹한 재난 방지를



 

                                     ▲박근종(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서울을 포함한 경기·인천·강원·충북 등 중부 지역에 115년 만의 기록적인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무려 11명이 숨지고 8명이 실종되는 등 인명 피해와 3,755여 동의 주택과 상가가 침수되는 등 재산 피해가 속출했고, 이재민도 548세대 982명이나 발생했다. 


지난 8월 8일부터 10일 오전 5시까지 서울 누적 강수량은 525.0㎜를 기록해 서울 연평균 강수량 1,387㎜의 37.85%가 넘는다. 특히,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는 한 시간 동안 141.5㎜가 쏟아져 80년 만에 시간당 최대 강수량을 기록하면서 서울 도림천과 중랑천이 범람하고 산사태가 발생했다. 도심이 마비됨에 따라 시민들은 출퇴근길 교통대란을 겪어야 했다. 


한반도에 걸쳐 있는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당분간 폭우가 계속된다니 인명 피해 최소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기후재앙 시대에 잦아진 극단적 기상을 ‘뉴 노멀(New Normal │ 새로운 표준)’로 상정하고, 재난 대비책과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하고 실효성 있는 면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비가 그치면 금세 잊어버리는 일시적·형식적 ‘땜질식 처방’이나 ‘사후약방문식’이 아니라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재난 대비 인프라 투자를 대폭 늘려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부는 기후 위기 일상화 시대에 맞춰 방재 대책을 시급히 재정비해야 한다. 동시에 기후재난에 따른 사회 불평등을 보완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다. 2010년 광화문광장 침수와 2011년 우면산 산사태를 겪으면서 서울시는 수해를 막기 위한 치수(治水) 사업을 확대했다. 2023년까지 상습 침수지역 34곳에 1조5,300억여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에 따라 방재시설을 정비해왔다. 하지만 이런 시설의 방어 능력은 30년 빈도에 해당하는 시간당 강수량 80~85㎜ 수준의 호우라고 한다. 


이번처럼 100년 빈도의 호우가 쏟아지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뿐 모든 피해를 막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이번에 피해가 컸던 서울 강남역 일대는 이 작업이 마무리되지 못했다고 한다. 더구나 구릉지대라는 서울의 지형 특성 때문에 일시에 쏟아진 빗물이 강남역이나 대치역 네거리처럼 10m 이상 낮은 저지대로 쏠렸다.


하지만 기존 계획에 따라 방재시설을 완비한다고 하더라도 이번처럼 처리할 수 있는 용량 이상의 폭우가 내릴 때는 대응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 기상청은 최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6차 평가보고서를 기반으로 2100년까지의 한반도 기후 변화 전망을 담은 ‘한반도 기후 변화 전망 보고서 2020’을 발표했다. 


함께 참여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수준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할 경우 한반도 연평균 기온이 2040년까지 1.8도, 2060년까지 3.3도, 2100년에는 최대 7도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다. 탄소 배출을 대폭 줄여도 80년 뒤엔 2.6도 상승한다는 전망이다. 또한 강수일수는 줄어들지만, 강수량은 3.8% 늘어나 폭우가 잦아진다고 한다. 방재시설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겠지만 기후 변화를 고려해서 방재 능력을 추가로 확충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번 폭우가 보여주듯 이상기후에 따른 피해는 취약계층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8월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반지하 주택에 물이 차 40대 발달장애 여성과 그의 여동생, 13살 된 조카가 사망했고, 서울 동작구 반지하 주택에서도 50대 여성이 숨졌다. 


이들이 겪었을 참담함과 공포, 절망을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전기가 끊겨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서 도로에 가득 찬 빗물이 폭포수처럼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부엌에선 하수가 역류하고, 화장실 변기는 오물을 내뿜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열악한 주거 환경에다가 장애로 인해 대피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피조차 어려운 취약계층에 날씨를 정확히 알리고 미리 안전한 곳으로 이동을 돕는 시스템부터 제대로 구축해야만 한다. 


이렇듯 이번 참사를 계기로 반지하 건물의 침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재촉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통계청 ‘인구총조사’ 통계를 보면, 반지하에 사는 가구 수는 지난 2020년 기준으로 전국 32만7,320가구다. 서울시는 지난 2010년 태풍 곤파스(Kompasu)로 인해 반지하 상당수가 침수 피해를 입자 저지대 주거용 반지하 신축을 금지했으나 아직도 서울시에만 2020년 기준으로 무려 20만849가구나 반지하에 살고 있다. 


특히, 관악구는 2만113가구로 서울시에서 반지하 가구 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북한의 공습이나 시가전에 대비하기 위해 집을 지을 때 지하공간 마련을 의무화했다. 따라서 반지하는 방공호나 참호 용도로 설치되었다. 그러다가 급격한 도시화로 주거난이 심해지자 경제적으로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세간을 놓고 살기 시작했고, 당국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이들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고려해 묵인해온 게 사실이다.


당연히 반지하 주택은 환기나 채광은 물론 집중 호우시 외부의 우수(빗물)가 쉽게 유입될 뿐만 아니라 물 빠짐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람이 거주하기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경제적 고충과 주거난 그리고 생활고로 인해 불가피하게 거주하게 된 공간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침수 피해에 대한 위험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반지하 침수 예방 대책으로 물막이 설비인 차수 판(遮水板 │ 물막이판)과 하수 역류방지 장치, 모래주머니 등을 개인이 신청하면 설치해 주고는 있지만, 현실은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 변화로 지금과 같은 재난이 잦아질 것이라고 예견되는 만큼 침수 피해 예방을 위해 리모델링 지원, 임대주택 공급 등 반지하 가구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컬럼비아대학교 ‘존 C. 머터(John C. Mutter)’ 자연과학 교수는 ‘재난 불평등(The Disaster Profiteers)’에서 ‘재난의 상황은 늘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며, 자연보다는 인간이 더 큰 피해를 준다.’라고 역설했고,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키스 페인(Keith Payne)’심리학 교수도 ‘부러진 사다리(The Broken Ladder)’에서 “모든 악은 가난이 아니라 불평등에서 나온다.”라고 하며, “가난하고 불평등하면 사람의 마음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멀리 보지 못해 가난한 게 아니라 가난해서 멀리 못 보는 것이다. 그렇다. 이번 폭우는 기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그에 따른 피해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을뿐더러 재난은 결단코 평등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는 사실을 극명히 드러냈다. 한국 사회 ‘재난 불평등’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문제는 같은 재난에도 체감 피해는 같지 않다는 점이다. 동일한 기후재난이 발생해도 선진국 사망자 수는 개발도상국의 30%에 그친다고 분석한 연구조사도 있다. 재난 취약계층은 재난 피해에서 회복하기 위한 보험 등 재정자원도 부족할뿐더러 안전한 주거와 식량·연료를 확보하는 데도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교수는 “자연 파괴로 불평등이 커져도 지배계층은 이익을 누린다.”라고 역설하며, “이는 결국 문명 붕괴를 가속화 한다.”라고 지적했다.


올해 유럽은 폭염, 미국은 폭우에 시달리는 등 이상기후가 일상화한다는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이 폭우로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은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8월 9일(현지 시각) “지난달 지구의 기온은 평균보다 0.5도 가까이 높았다.”라면서올 해가 지구의 7월 기온이 가장 높았던 3개 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다고 밝혔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지목한 ‘7월에 지구가 가장 더웠던 해’는 2016년과 2019년, 그리고 올해라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엔 5일 1년 치 강수량의 75%가 하루 만에 쏟아졌다. 이날 기온은 섭씨 56.7도로 역대 가장 높았다. 일리노이주에는 1, 2일 8월 한 달 치 강수량이 모두 내렸다. 


유럽은 40도를 넘는 폭염과 가뭄, 산불에 시달리고 있고, 남반구 호주는 때아닌 겨울 홍수에 고통을 받고 있다. 올 2∼4월 브리즈번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 3일 새 676.8mm의 비가 내렸다. 1974년 이후 48년 만에 최악의 홍수로 이재민 3만 명이 발생했다. 


유엔(UN) 산하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폭염이나 폭우, 가뭄 등 기후재난이 잦아지고 그 강도도 세질 것이라고 경고했고 유럽연합(EU)은 이상 고온으로 올해 곡물 수확량이 작년보다 5% 감소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세계 최대 재보험사인 독일 뮌헨재보험(Munich Re)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세계가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약 4,300명으로 작년 동기의 1.9배에 달했고, 피해 손실은 650억 달러(약 85조1,800억 원)에 달했다고 밝혀 이를 방증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도 당연히 예외일 수는 없다. 기상청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후센터는 지난 6월 14일 발표한 ‘온실가스 감축 없인 21세기 말 유역별 극한 강수량 최대 70% 이상 증가’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재난 및 인명 피해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인 하천 홍수 발생과 관련된 유역별 극한 강수량의 미래변화 분석결과를 발표했는데, 21세기 후반기에 100년 빈도 극한 강수량이 한강 동해 권역은 약 73%, 낙동강 동해 권역은 약 69%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저탄소 시나리오의 경우에는 100년 빈도 극한 강수량 변화율이 21세기 후반기 대부분의 권역에서 50% 이하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온실가스 감축이 없다면 21세기 말 우리나라에 홍수 잦아진다는 결론이다. 


한반도에는 그동안 여름 장마철 한 달 동안 350㎜ 정도의 누적 강수량을 기록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사이에 양동이로 퍼붓듯 500~600㎜가 쏟아졌으니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고 이상기후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자연 재난을 완벽하게 막기란 말처럼 결단코 쉽지 않다. 


안전 부문의 선제적 투자가 그나마 현실적 대책이다. 강우 빈도와 예산 효율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와 같은 이상기후에 유연한 선제 대응으로 현대적인 방재시설 개선과 함께 재난 약자와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대책을 서둘러 강구하고 근본적으로 기후 변화를 늦추기 위한 정부 당국은 물론 사회 전반의 노력도 병행돼야 할 과제이다. 


모든 재난에 왕도는 없겠지만 경계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alertness)에 입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모든 장비와 기술적 전문인력 그리고 첨단시스템을 상시 갖추어둠으로써 재난 발생을 경계하고 대비하되, 그것을 전혀 사용하지 않도록 예방·경계 활동을 통해 유도하는 능동적인 자세와 전문성을 발휘하여야 한다. 


그러한 준비는 어떠한 일이나 물건의 초과분 또는 잉여분을 의미하는 가외성(Redundancy)을 인정하고 여유 자원관리(Slack management)와 가치 있는 낭비(Valuable waste)를 실천함으로써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처럼 기록적인 폭우에 반지하 주택 침수가 잇따르고 인명 피해도 발생하자 급기야 지난 8월 10일 서울시는 지하·반지하는 사람이 사는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다행스러운 조치지만 근본적인 주택공급이 병행되어야 할 사안이다. 이번만큼은 임시방편에 그치는 단기적 대안이 아니라 시민 안전을 지키고 주거 안정을 제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재난으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지키는 기본적 의무를 다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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