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2. 09. 22.


영혼 파괴 스토킹 강력범죄, ‘미봉 대응’과 ‘반짝 관심’으론 한계




 

                                          ▲박근종(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지난 9월 14일 오후 9시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이 스토킹(Stalking)을 해오던 30대 직장 동료에게 피살당한 사건이 발생하여 국민적 충격과 함께 “국가가 죽였다.”란 원성과 공분이 비등한 가운데 언제까지 이런 참극이 되풀이돼야만 하느냐는 절망적인 질문 앞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 2016년 5월 17일 새벽에 발생한 “강남역 ‘묻지 마 살인’ 이후 6년간 변한 게 없다.”라는 각계의 분노 성명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스토킹을 중범죄로 인식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 10월 21일 시행되었지만, 안타깝게도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스토킹 범죄는 올해 상반기만도 2,924명으로 폭증했다. 지난 2월 14일 서울 구로구에서 경찰 신변 보호를 받던 40대 중국 국적 여성이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전 남자친구의 흉기에 찔려 숨지는 일이 일어난 데 이어 지난 6월 6일 경기 성남에서도 이미 한차례 피해자를 스토킹한 혐의로 입건됐던 남성이 다시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했고, 이틀 뒤인 8일 경기 안산에서도 60대 남성이 교제하다가 헤어진 40대 여성이 만나주지 않는다며 흉기를 휘두른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지난 7월 5일에는 경북 안동시청  50대 여성 공무원이 또 스토커에게 살해당했다. 그때마다 재발 방지책 강화에 대한 여론의 요구와 당국의 약속이 반복됐지만 어처구니없는 참극이 또 발생한 것이다.


이미 구로구 사건 때 경찰이 스토킹 가해자의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이를 반려하는 바람에 살인 범행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와 국민적 공분을 샀는데, 이번에도 이러한 문제점은 똑같이 반복됐다. 이번 사건도 피해자의 목숨을 살릴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매번 놓쳤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와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인 용의자는 2019년 그와 관계가 소원해지자 약 3년간 무려 350여 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스토킹을 하고 불법 촬영을 한 뒤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며 만남을 강요해 두 차례 고소됐다. 하지만 구속된 적은 없었다.


지난해 10월 첫 고소 때 경찰이 그를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이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라며 기각했다. 피해자에 대한 안전조치는 1개월에 그쳤고, 스마트워치 지급도 없었다. 


그 뒤 피해자가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추가 고소했지만, 경찰은 아예 구속영장을 신청조차도 하지 않았다. 경찰·검찰·법원의 들쭉날쭉한 판단이 스토킹 범죄 대응의 실패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실질적인 제도나 관행의 개선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국가가 죽였다.”란 원성과 공분이 비등하는 이유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70조(구속의 사유)는 제1항에서 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 제2항에서는 법원은 제1항의 구속 사유를 심사함에 있어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스토킹 범죄는 2차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범죄 특성을 고려해 ‘피해자 위해 우려’를 현행 제2항 심사기준에서 제1항 구속 사유로 강화하는 등 서둘러 법체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또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미비점도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법무부는 지난 9월 16일 여성계와 전문가들로부터 비판받아온 스토킹 범죄의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폐지하고, 사건 초기 잠정조치로 가해자 위치추적을 신설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스토킹범죄)는 제1항에서 스토킹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항에서 흉기 또는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이용하여 스토킹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제3항에서는 제1항의 죄는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함으로써 스토킹 범죄에 노출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히면, 수사기관은 가해자 처벌 절차를 밟을 수 없다. 


또한, 같은 법 제9조(스토킹행위자에 대한 잠정조치)는 제1항에서 법원은 스토킹범죄의 원활한 조사ㆍ심리 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결정으로 스토킹 행위자에게 △ 피해자에 대한 스토킹 범죄 중단에 관한 서면 경고, △피해자나 그 주거 등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접근 금지, △피해자에 대한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국가경찰관서의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의 유치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해자의 위치추적은 규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같은 법 제18조(스토킹 범죄)는 제3항을 삭제하고, 제9조(스토킹 행위자에 대한 잠정조치)는 제1항에 제6호를 신설하여 ‘가해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법제화해야 한다.


차제에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에 따른 신변안전 조처를 스토킹 피해자에게도 적용할 필요도 있다. 같은 법 제2조(정의) 제1호의 “특정범죄”의 범위에 ‘스토킹 범죄’를 포함시켜 소토킹 범죄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인권침해가 이뤄지지 않는 한도 안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철저히 분리하는 실효성 있는 피해자 보호제도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스토킹 범죄에 대한 지속적인 사회적 경각심이 필요하다. 스토킹은 강력 범죄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피해자에게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주는 ‘영혼 파괴 범죄’다. 또한 단순한 괴롭힘을 넘어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살인의 전조 증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안일하게 ‘애정문제’에서 기인한 ‘사랑싸움’정도로 치부하는 잘못된 사회통념이 문제다. 따라서 초기부터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그래야만 2차 범죄도 사전 예방할 수 있다. 누군가 목숨을 잃는 극단적 상황이 벌어져야만 ‘반짝 관심’을 갖거나 온정주의에서 나온 땜질식 ‘미봉 대응’으로는 결단코 비극의 재연을 막을 수 없다. 


이미 노정된 제도의 허점부터 신속히 보완하고 수사기관의 적극적 대처가 일상화돼야만 스토킹 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방어역량이 담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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