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3. 04. 19.
산불, 반복되는 4월의 잔인함 언제까지
동해안 지역에 또다시 대형 산불이 났다. 지난 4월 11일 오전 8시 22분경 강원 강릉시 난곡동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초속 20~30m의 ‘태풍급’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경포호와 사근진 해변까지 급속히 번져 막대한 피해를 낳았다. 2005년 4월 양양 낙산사를 태운 동해안 화재의 악몽이 재현된 것으로 동해안 최대 관광지인 강원 강릉시 경포 해변 인근 마을과 관광시설이 화마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소방과 산림당국에서는 올해 들어 산불로는 처음으로 소방 진압 최고단계인 ‘대응 3단계’를 발령한 데 이어 전국 소방동원령 2호를 내리고 전국에서 소방장비 275대와 진화인력 725명이 출동하는 등 2,764명의 인력과 400대의 장비를 투입해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강풍으로 헬기를 투입하지 못해 초기 진화에 애를 먹었고 불길은 주택가 등으로 급격히 확산됐다.
이 불로 안현동에 거주하는 80대 주민 1명이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대피 중 주민 1명도 2도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았으며, 진화 중이던 소방대원 2명이 가슴 부근에 2도 화상을 입는 등 총 14명이 다쳤다. 축구장 면적(0.714㏊) 530배에 이르는 산림 379ha(헥타르)와 주택 59동, 펜션 33동, 호텔 3동, 상가 2동, 문화재 1동 등 총 100채를 태웠다.
다행히 오후 3시 18분쯤부터 오락가락했던 ‘단비’가 화마(火魔)의 기세를 누그러뜨렸고 바람도 잦아들면서 8시간 만인 오후 4시 30분쯤 큰 불길이 잡혔지만, 인근 주민 557명이 사천중학교와 경기장 시설인 아이스아레나로 긴급대피했고, 리조트와 호텔에 투숙했던 관광객 708명도 인근 안전지역으로 긴급 대피했으며, 강릉 일대 15개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고, 동해에서 강릉 간 열차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경포호 일대와 강릉 앞바다가 검은 연기로 뒤덮이는 화마 현장을 목격한 시민들은 매년 봄마다 되풀이되는 산불 재난의 악몽을 떠올리며 반복되는 4월의 잔인함에 몸서리쳤다.
해마다 연례 행사처럼 반복되는 동해안 산불은 부주의 원인도 있지만, 기상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번 강릉 경포대 산불도 지속적인 ‘건조특보’에 ‘양강지풍’이 불어 대형 산불로 확산된 것이다. 화재는 습도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데 공기 중의 수분함량을 나타내는 ‘상대습도’보다는 목재 등의 건조지수를 나타내는 ‘실효습도’가 화재 발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보통 ‘실효습도’가 50% 이하가 되면 인화되기 쉽고, 40% 이하에서는 불이 잘 꺼지지 않고, 30% 이하일 경우 자연발생적으로 불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실효습도’ 35% 이하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건조주의보’를 발령하고, ‘실효습도’ 25% 이하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건조경보’를 발령한다. 지난 4월 11일 강원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영동 전역 건조특보가 발효됐다. 영동지역의 경우 실효습도가 25% 안팎으로 대기가 매우 건조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강원 영동지역 강풍은 ‘양간지풍(襄杆之風)’이나 ‘양강지풍(襄江之風)’의 영향이 크다. 양간지풍은 양양과 간성, 양강지풍은 양양과 강릉 사이에 부는 국지성 강풍으로 고온 건조한 데다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들은 푄 현상(Foehn wind)의 일종으로, 영동지역에 동풍이 불 때 습기가 많은 동해안 공기가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수증기의 응결로 영동지방에 비가 내린 후 영서지방에 고온 건조한 바람을 일으키는 ‘높새바람’과는 방향이 반대로 봄철 남고북저(南高北低)의 기압 배치 상황에서 서풍의 기류가 형성될 때 영서지방의 차가운 공기층이 태백산맥과 상층의 역전층(Inversion layer) 사이에서 압축되면서 속도가 빨라지고, 태백산맥의 급경사면을 타고 영동지방으로 불어 내려가면서 순간최대풍속은 35.6m/s까지 관측된 기록이 있을 정도로 강한 바람으로 변하여 영동지역 봄철 대형 산불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날 강원도에서 최대순간풍속이 가장 빨랐던 곳은 설악산으로 136㎞/h(37.8m/s)를 기록했다.
이번에도 ‘양강지풍’이 확산시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017년 삼척·강릉 산불도, 2019년 고성·속초 산불도, 역대 두 번째로 큰 피해를 낸 지난해 울진·삼척 산불도 모두 이 ‘양간지풍’이나 ‘양강지풍’이 불길을 키우는 ‘화풍(火風)’이 됐다.
이번에도 건조경보가 내려진 산야에 불어닥친 ‘양강지풍’이 전깃줄 위로 나무를 부러뜨리면서 불씨를 일으켰고 순식간에 화마를 퍼뜨렸다. 전국적으로 5년 만에 초속 20~30m의 봄 강풍이 몰아치고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요란한 비까지 내리는 이상기후 와중에 동해안에 대형 산불이 났다는 것도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남겼다.
불시에 일어난 천재지변이라면 막기 어렵겠지만 봄철 동해안 산불은 이제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매년 어김없이 반복되고, 갈수록 규모가 커지는 재난임을 익히 잘 알고 있는 터다. 올해 들어 산불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올 4월 12일까지 전국적으로 437건의 산불이 발생하여 3,575.1ha(헥타르)의 소중한 산림을 불태웠다. 고작 100일 사이에 최근 10년간 연평균 발생 535.4건의 81.16%나 발생했다.
최근 10년간 산불 발생 원인을 분석해보면 연평균 발생 535.4건 중에서 32.57%인 174.4건이 입산자 실화였고, 12.79%인 68.5건이 쓰레기 소각이었으며, 5.62%인 30.1건이 담뱃불 실화였다. 주의하면 막을 수 있다는 교훈이다. 상시 대비해야만 하는 재난으로 인식하고 국가적 차원의 범국민적 산불 예방이 첩경이다.
무엇보다도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한 ‘산소기지(山消氣地│山림청ㆍ消방청ㆍ氣상청ㆍ地자체)의 튼실한 공조 기반 합동작전·공동대응의 유기적인 협업이 긴요하다.
유사시 ‘산소기지’의 기관별 연락관을 행정안전부에 파견 상황 전반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통제·관리하는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로 작동하는‘산불 워룸(War room)’을 설치 즉각 가동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수립 신속히 실행에 옮기는 조기 진화 시스템을 더욱 촘촘히 챙기고, 더 철저히 가다듬어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산불 앞에서도 속수무책이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