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3. 05. 24.


고독사 위험군 152만 5천 명, 촘촘한 사회안전망 서둘러 구축을

박근종(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주변과 단절된 채 외롭게 살다 홀로 임종하는 ‘고독사(孤獨死)’가 해마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처음으로 실시한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독사 건수는 2017년 2,412건에서 2021년 3,378건으로 5년간 연평균 8.8%씩 늘어나 40%나 급증했다.

1인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고독사 위험군’은 전체 1인 가구 717만 명 대비 21.3%나 되며, 전체 인구의 3%나 되는 152만 5,000명으로 추정됐다. 우리나라 국민 5명 중 1명이 넘게 ‘고독사 위험군’인 셈이다.

이렇듯 ‘고독사 위험군’의 급증 추세에 따라 더욱 촘촘하고 두터운 ‘약자 복지’ 확대를 위해 ‘고독사 예방’ 등 새로운 복지 수요에 ‘적극적 대응 체계 마련’이 긴요해졌다. 우선 ‘고독사’에 대한 개념부터 명확히 정립해 볼 필요가 있다.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에 따르면 ‘고독사’란 가족, 친척 등 ①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②자살ㆍ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③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반면,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서 정의한 ‘무연고 사망’은 시신을 인수할 연고자 존재 여부를 핵심으로 ①연고자가 없는 사망, ② 연고자를 알 수 없는 사망, ③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사망을 의미한다. 가령 요양병원 치료·보호 중 사망 시 사회적 고립이 아니므로 고독사에는 해당하지 않으나, 시신 인수할 연고자가 없을 경우 무연고 사망에는 해당한다.

고독사 문제는 더는 강 건너 불구경에 머무를 일이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18일 고독사를 예방하고 관리할 정부 차원의 첫 기본계획인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2023~2027년)’을 수립해 발표했다. 고독사 증가세는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이웃과의 단절이 늘어난 탓이 크다. 따라서 정부는 고립 가구를 찾아내 돌봄 정책 기반을 마련해야 했다. 복건복지부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고독사 예방에 첫걸음을 뗀 건 의미가 크다. 목표는 2021년 기준 사망자 100명당 1.06명꼴인 고독사를 2027년까지 0.85명으로 20% 줄이겠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사회적 고립 예방·지원센터’를 두고, 고위험군의 생애주기별 지원에 나선다고 한다. 그간 지자체별로 관련 사업을 진행했으나 여전히 편차가 컸다. 이제 중앙정부가 컨트롤타워가 돼서 고독사 위험에 놓인 이들을 파악하고 지원하는 촘촘한 그물을 짜야 한다.

눈에 띄는 대목은 중·장년층에서 고독사가 가장 많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남성이 84.2%로 여성에 비해 무려 5.3배 이상 많았고, 50∼60대가 58.6%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20∼30대도 6.5% 정도 발생했다. 고령층의 고독사 비율이 높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50~60대가 유달리 고독사가 많이 발생한 점은 실직·이혼 등으로 고립 상태에 빠진 중년 남성이 늘어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무너지는 가부장제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노인 고독사가 많은 일본과 달리 한국에선 중·장년층 남성이 고독사 집중 관리 대상이 된 셈이다. 무엇보다도 고독사만이 아니라 사회적 고립까지 정책 대상이 확대된 범정부 차원의 대응 계획이 담겼다. 사회적 고립이 장기화하면 고독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고립에 빠진 위험군을 빠르게 사회와 재연결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고독사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수명은 길어졌지만, 혼자 살거나 공동체 붕괴로 사회와 연결되지 않는 개인이 많아진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고독사 위험군을 발굴하는 체계를 강화해 복지 사각지대를 줄일 계획이다. 지역 주민이나 부동산중개업소·식당 같은 지역밀착형 상점을 ‘고독사 예방 게이트키퍼(Gate keeper)’로 양성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주변의 사회적 고립가구가 조기 인지·발굴될 수 있도록 지역 주민을 ‘(가칭) 우리마을지킴이’로 양성한다. 다세대 주택·고시원 밀집 지역 등 고독사 취약 지역을 대상으로 위험군을 발굴 조사한다. 이렇게 찾아낸 위험군의 사회적 고립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사회와 연결을 시도한다. 고위험군인 5060 중장년의 재취업을 강화하고, 극단적 선택 비율이 높은 고립 청년의 정신건강검진 주기를 10년에서 2년으로 단축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보다 앞서 정부 대책을 추진한 영국과 일본은 이미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영국은 2018년 1월 문화·미디어·체육 담당 부처의 장을 외로움(고독) 담당 부처(Ministry for Loneliness) 장관으로 지정하고, 2018년 10월 외로움 대비 범정부 전략(loneliness strategy)으로 「연결된 사회(A connected society : A strategy for tackling loneliness)」를 발표했다. 외로움 실태 파악, 공동체 공간 조성, 공동체 강화를 위한 예술·문화·체육 활동 지원, 민·관 거버넌스를 구축한 것이다.

일본도 2021년 2월 우리나라 국무조정실에 해당하는 내각관방에 고독·고립 대책 담당 부서 설치하고 2021년 12월 「고독·고립 대책의 중점계획」을 발표하며 복지·의료·고용 등 분야별 대책과 연계한 지역 안전망 구축 등 고독·고립 실태 파악, 공동체 공간 조성, 비영리단체 지원에 나섰다.

한편, 미국은 비영리 식사배달 봉사 네트워크(Meals on Wheels), 은퇴한 노인 공동체(NORC) 등을 통해 사회적 고립 방지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프랑스도 세대 간(고령자-청년) 동거 프로젝트(Cohabitation), 민간단체(MONALISA) 등을 통한 독거노인 사회관계 증진 프로그램을 운영 중에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대처는 아직 충분하지 않고, 이제야 국가적으로 첫발을 뗐다. 지역사회의 관심도 높아져야 고독사의 위험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다. 고독사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회적 고립이라는 시각으로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마련해야만 한다.

성패 여부는 이 같은 계획이 현장에서 얼마나 실행으로 옮겨지는가에 달렸다.

정부는 2014년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망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을 구축해 ‘위기의심가구’를 신속 발굴하고 직접 찾아가 상담·지원하는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여러 대책을 내놨지만, 시스템의 허점 사이로 그동안 여러 차례 엿보인 ‘비극의 전조’를 안이하게 그냥 지나쳤기 때문이다. 2018년 ‘증평 모녀 사망 사건’, 2019년 ‘봉천동 모자 사망 사건’, 2020년 ‘방배동 모자 사망 사건’, 2022년 ‘창신동 모자(母子) 사망 사건’ 등 잊을 만하면 복지 사각지대의 아픔이 판박이처럼 반복됐지만 위기 가정을 발굴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신촌의 좁은 셋방에서 65세 어머니와 36세의 젊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현관문엔 5개월 이상 체납한 전기료 독촉장이 붙어 있고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돌아가신 모녀(母女)는 건강보험료와 전기요금 등 제 공과금, 월세를 연체할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에 몰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 해 사회복지 분야 예산만 226조 6,000억 원(2023년 국가세출예산 639조 원의 35.5%)을 쓰는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라 일컫는 것조차 무색하다.

고독사 예방은 고독사 위험군을 제때 발굴해 복지 서비스로 신속히 연계하는 ‘연결 고리’를 더욱 정교하고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발굴’만으로 비극을 막기에는 당연히 역부족이다. 찾아낸 후 관리도 중요함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이들을 사회로 흡수해 품고 보듬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촘촘하고 두텁게 지원해야만 한다.

현재 229개 시·군·구 고독사 업무 담당자는 251명, 취약계층 발굴부터 복지 서비스 연계까지 담당하는 통합사례관리사는 978명에 불과하다. 서둘러 인력 증원은 물론 예산도 확대해야만 한다.

주변과 단절된 채 혼자서 임종을 맞지 않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튼실한 사회안전망을 서둘러 구축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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