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3. 07. 06.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성북구지회 김민후 회장
모범적인 보훈단체로 특수임무는 수행했지만 공정한 우리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 꿈
(시사프리신문=김영국 기자)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회장 김민후, 이하 특수임무 성북구지회) 성북구지회 김민후 회장. 그는 지금도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편견과 험악한 사람들이라고 보내오는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시대가 요구해서 국가에 부름 받고 특수 임무를 수행하다 저지른 죄는 긴 세월동안 갚아오고 있다. 이제는 국가의 한 일원으로 받아 주길 바란다”고 간곡하게 요청했다.
김민후 회장은 “특수임무유공자회는 한 마다로 요약하면 6·25 전쟁이후 북한을 오고가며 특수임무를 수행한 사람들이다. 임무의 종류는 많지만 북한으로 침투해 군부대 위치파악과 요인암살 등으로 나뉜다. 즉 북한에서 대한민국으로 무장하고 내려오면 무장공비라고 하는 그런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국제 협약 중의 하나인 제네바 협정에서 타국에 대한 암살, 요원 침투는 하지 않겠다고 협약에 국가가 사인한 후 우리들의 삶은 국가로부터 철저하게 숨겨지며 배제되어 살고 있다. 2002년, 침투 30년이 지난 후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는 긴 여정을 돌아서 왔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전쟁 후 북파공작원은 약 5,333명에 이른다. 그들의 유해는 우이동에 묻혀있다. 그들 중 약 51%는 살아서 돌아 왔고, 나머지 반은 북한 땅에서 목숨을 잃었거나 포로로 잡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김 회장도 국가에서 집 10채 준다는 약속을 믿고 약 1년 동안 힘들고 고된 군사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북한에 침투해 임무를 수행하다 실패하고 돌아 왔을 땐 계급도 군번도 없이 임무수행 비밀유지 서약서 한 장에 사인하고 제대했다. 너무 억울했다. 집 10채는 고사하고 명예조차도 국가에서는 지켜주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김 회장은 그렇게 30여 년을 국가를 상대로 싸우다 2002년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끝으로 국가로부터 보상약속을 받았다. 약 1~2억 정도 되는 금액을 보상을 받고 시위를 접었다. 그동안 철저하게 비밀로 붙여 왔던 우리들의 존재감과 국가에서 부여한 임무가 물위로 올라왔다는 것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돈보다는 명예를 찾았다는 것이 더 기쁘다. 조국을 위해 음지에서 싸우다 돌아가신 특수임무전사자들의 영혼은 위로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도 사회적 편견과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사회적 편견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북한침투조가 사형수들로 구성되었다는 편견이다. 영화 ‘실미도’와 같이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 중에는 1-2명 섞여 있을 수 있으나 모두 그렇지 않다. 먹고살기 힘들던 시대 운동을 했거나 건장한 청년에게 많은 돈을 주겠다고 속이고 모집한 경우도 대다수다. 또 하나는 북한에 가서 민간인을 죽였다는 것이다. 임무 수행 중 내가 살기 위해서 일부에서 저지른 만행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특수임무를 맡았던 모두에게 보내는 시선과 편견은 이제 거두어 주길 부탁 드린다”고 호소했다.
아직도 국가의 부름으로 특수임무를 수행하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과 영혼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생존 회원 중 대다수가 각종 장애 및 정신적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