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3. 07. 26.


볼썽사납고 파행 잦은 최저임금 결정, 37년 묵은 고질병 손봐야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 시간당 9,620원에서 2.49%인 240원 오른 시간당 9,860원으로 잠정 결정됐다.

월 209시간 근무 기준의 월급으론 206만 740원 수준이다. ‘1만 원’의 벽을 넘느냐에 관심이 쏠렸지만, 중소기업·자영업자 등의 경영난을 감안해 1988년 최저임금제 도입 이래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1.5%에 이어 두 번째 낮은 인상률로, 하반기 서울 버스요금 인상액 300원보다 적게 오른 셈이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기획재정부의 올해 물가상승률 평균 전망치 3.4%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고물가로 인한 가계 부담이 큰 상황에서 명목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해 사실상 실질임금 ‘삭감’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밤샘 15차 전원회의 끝에 지난 7월 19일 오전 6시경 노사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표결에 붙여 확정된 올해 최저임금위원회 심의 기간은 110일로 이는 지금과 같은 최저임금 제도가 적용된 2007년 이후 역대 최장 기록이다. 막판에 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들이 공익위원의 조정안 9,920원을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표결로 확정했다.

그 결과 내년 최저임금이 공익위원 조정안보다 60원 낮아졌다. 하지만 지난 정부부터 최저임금 ‘과속 인상’의 후유증이 여전한 만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어려움도 예상된다. 이미 지난 7년간 최저임금은 52.4%나 올랐기 때문이다. 내년 최저임금이 1만 원 미만이라지만 주휴수당을 합치면 1만 원을 훌쩍 넘는다. 5대 사회보험, 퇴직급여까지 고려하면 사업주는 최저임금의 약 140%에 달하는 인건비를 부담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생활 안정을 위한 최저선이다. 내년 1월 1일부터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월급으로 206만 740원, 명목상으론 올해보다 매달 5만 160원을 더 받겠지만, 한국은행이 전망한 올해(3.5%)와 내년(2.4%)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이번 확정안이 “실질임금 삭감”이라는 노동계의 불만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난 5월 19일 한국통계학회가 최저임금위원회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아 작성한 ‘비혼 단신 근로자 실태생계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비혼 단신 근로자의 월평균 실태생계비가 전년(220만 5,432원)보다 9.34% 급증한 241만 1,320원으로 조사되어 이보다 턱없이 모자랄 뿐 아니라 줄줄이 오를 공공요금 등을 감안하면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은 더 열악할 수밖에 없다.

법정 최저임금을 못 받는 비율인 최저임금 미만율은 지난해 12.7%였고, 5인 미만 사업장은 그 비율이 30%에 달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현재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는 275만 6,000명(근로자 전체의 12.7%)에 달해 근로자 8명 중 한 명은 최저임금이 얼마 오르건 간에 그 혜택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현재 최저임금이 노동시장 현실을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물가가 불안한 상황에서 임금까지 껑충 뛰게 되면 소비 둔화로 경기가 침체하고 고용 축소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 근로자 계층에 피해를 줄 뿐이라는 점도 충분히 입증됐다. ‘최저임금이 1만 원 되면 최대 6만 9,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라는 보고서(최남석 전북대 교수)도 나왔다. 일자리가 줄어들면 결국 저소득층과 청년 등 취약계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일자리 확대가 절실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최저임금이 물가를 따라잡지 못해 취약계층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정부는 사회안전망과 복지안전망을 강화해야 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경영계는 더 큰 책임 의식을 갖고 고용을 늘리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했던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불 주체인 소상공인의 절규를 외면한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하며 “소상공인의 ‘나 홀로 경영’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이미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2018년 398만 7,000명에서 지난해 426만 7,000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충격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는 업종별 구분 적용을 숙박·음식점 등 일부 업종에 한정해서라도 시행하자는 소상공인의 의견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부결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업종별·지역별 차등 적용을 반대하는 측은 ‘저임금 업종에 대한 낙인 효과’를 들고 있지만 공감하기가 어렵다. 편의점업, 택시운수업, 숙박·음식업 등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는다고 새삼스레 무시 업종으로 낙인찍는다는 주장은 지난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최저임금이 같아야 농·어업과 첨단 산업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것이란 주장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곤란하다.

최저임금 결정은 해마다 진통을 크게 겪어온 게 사실이지만 올해는 유독 극심했다. 올해만큼은 노사 합의를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노동계와 공익위원 간 갈등으로 첫 회의부터 취소되더니, 지난달엔 경찰 고공농성 진압에 맞서다 구속된 근로자위원이 해촉되면서 항의 퇴장 등 파행이 거듭됐다. 당초 근로자의 ‘26.9% 인상안’과 사용자의 ‘동결안’으로 맞서다가 협상 과정에서 10차례나 수정안을 제시하고도 합의를 보지 못했다.

노사 합의를 어느 때보다 강조한 공익위원 9명의 의중은 일관되게 사용자 쪽에 기울어져 있었다. 전날 공익위원들은 심의 촉진 구간(인상률 2.1~5.5%)을 제시했는데, 최근 3개년간 나왔던 구간보다 상·하한선이 너무 낮고 폭도 적었다.

이처럼 노사정 갈등과 대립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것은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위는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9명씩 27명으로 구성된다. 노사가 각자 제출한 인상률을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하면 ‘캐스팅보터’인 공익위원이 마련한 중재안을 표결에 부쳐 정하는 게 관례가 됐다.

노사가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싸움판을 만들어 불필요한 갈등을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노사가 소모적 힘겨루기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1988년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된 이후 노사 합의로 최저임금을 결정한 사례는 겨우 7번에 그쳤고 법정 심의 기한을 지킨 사례도 고작 9번뿐인 건 바로 이러한 사정에서 연유한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노사 간 이견은 당연히 있을 수 있지만 한국처럼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최저임금 결정 기준이 불명확하고 협상으로 이뤄지는 최저임금 결정 체계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정부가 인선한 공익위원은 정부 정책이나 기조에 맞춰 인상률을 제시하며 불확실성을 키워온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정부 초기 심각한 고용 충격에도 공익위원이 2018년과 2019년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률을 밀어붙인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최근 2년은 공익위원이 임의로 경제성장률 전망치에다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더하고, 여기에서 취업자증가율 전망치를 뺀 수치라는 3가지 경제지표를 토대로 인상률을 제시해 노사 양측의 반발을 샀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산출 기준이 없다 보니 올해도 표결 결과를 두고 경영계는 ‘부담 가중’, 노동계는 ‘실질임금 삭감’을 주장하며 반발한다. 노동계는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대폭 올리자고 매번 주장하고 사용자 측은 과거에 많이 올랐다는 이유로 동결이나 최소 인상 방안을 내놓는 무한 대립의 악순환만 고착된다. 이를 타파하지 못한다면 매년 똑같은 볼썽사나운 파행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대립이 극명한 사안인 최저임금 결정에 정답이 있을 리 만무하다. 사용자는 경영이 힘들고 근로자는 삶이 고단하다. 최저임금 결정은 어떻게 보면 오월동주(吳越同舟) 신세나 다름없다. 상생과 윈윈(Win-Win)의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독립적인 전문가위원회가 건의하고 정부가 수용하는 영국이나 노사 의견을 들어 정부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 프랑스, 그리고 의회가 연방 최저임금을 정하면 주별로 이를 웃도는 금액으로 결정하는 미국, 노사가 주축이 되지만 월별 임금지표에 기반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독일처럼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이 정치 편향의 논란이 일지 않도록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여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소모적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성 높게 최저임금이 결정되도록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규모별, 업종별로 구분 적용하고, 최저임금 결정 주기를 최소 2년으로 확대해 기존 최저임금 수준에서의 근로자 생계비, 노동생산성과 함께 고용 수준과 경제 상황 등을 충분히 분석·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귀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일자리 환경과 노사 문화가 급변한 상황에서 37년 전 만들어진 낡고 캐캐묵은 후진적 고질병인 최저임금 결정 구조 체계는 손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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