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3. 08. 30.
급증 가계부채 · 급감 가계소득 방치된 최악 민생경제 어찌할꼬
한국은행은 지난 8월 24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연 3.5%인 기준금리를 5회 연속 동결했다. 앞서 2020년 3월 16일 금통위는 코로나19 충격으로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낮추는 이른바 ‘빅컷(1.25→0.75%)’에 나섰고, 같은 해 5월 28일 추가 인하(0.75→0.50%)를 통해 2개월 만에 0.75%포인트나 금리를 빠르게 내린 후 2021년 8월 통화정책 정상화를 선언하고 금리 인상에 착수해 지난 1월까지 3.0%포인트 인상한 3.5%로 결정했다.
따라서 미국의 연준 기준금리 5.25~5.50%와의 역전 폭이 사상 초유의 2.0%포인트까지 커진 가운데 최근 환율도 9개월 만에 1,340원대에 올라섰다.
그런 가운데 4월부터 가계부채가 다시 늘어나고 가계대출 증가에 속도가 붙어 지난 8월 22일 한국은행은 올해 2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이 전 분기 대비 9조 5,000억 원 증가한 1,862조 8,000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한편 통계청이 지난 8월 24일 발표한 ‘2023년 2/4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올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479만 3,000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0.8%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1.3% 감소한 2009년 3분기 이후 최대 하락 폭이다. 여기에 고물가 영향까지 겹쳐 2분기 가구 실질소득은 지난해보다 3.9% 줄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6년 이후 최악이다.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처분가능소득도 383만 1,000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8% 줄어들었다. 소득은 줄었는데 고금리 영향으로 이자 비용이 42.4% 급등한 탓이다.
서민들의 고통은 숫자 이상이다. 외식은 꿈도 못 꾸고, 자녀가 다니는 학원을 중단해야할 지경이다. 장시간 노동 감수는 물론이고, 폭염에도 하나라도 더 아르바이트를 뛰어야만 한다.
물가와 경기 흐름을 고려하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연속 동결은 이해할 만한 결정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월엔 2.3%까지 내려왔다. 물가 상승 억제를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한국은행의 판단이다. 통계청은 “코로나19로 인한 이전소득이 사라지고 고물가 영향이 더해지면서 소득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가계 소득이 플러스를 기록한 것도 결국은 정부의 재정 지출 때문이었다는 얘기다.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내수도 위축되고 있다. 물가 수준을 반영한 2분기 실질 소비지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0.5% 줄어 2020년 4분기(-2.8%) 이후 10분기 만에 다시 무너졌다. 중국의 경기 침체로 수출이 급감한 상황에서 내수마저 가라앉으니 경제의 양대 축이 모두 고꾸라지고 있는 최악의 위기다.
경제 전망도 여전히 어둡다. 올해 성장률을 1.4%로 낮춰잡은 한국은행은 내년 전망치도 2.2%로 3개월 전보다 0.1%포인트 낮췄다.
올해 정부의 ‘상저하고’ 전망은 물 건너갔고, 내년에도 ‘상저하저’가 될 공산이 크다. 가계의 이자 부담을 덜고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금리를 낮춰야 하지만 경기 침체로 여력이 없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최대 2.0%포인트), 물가 불안, 고환율, 차이나 리스크 등을 감안하면 외려 금리를 올려야 할 판이다.
문제는 가계부채다.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친 가계신용 잔액이 지난해 4분기 3조 6,000억 원 감소하고 올해 1분기에도 14조 3,000억 원 감소했으나 올해 2분기 들어 9조 5,000억 원 다시 늘어났다. 4월 이후 월별 은행 가계대출 추이를 보면 증가에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은 석 달 사이 14조 원 넘게 늘어 역대 최대 규모가 됐는데 이렇게 주택담보대출 중심으로 대출이 늘어나는 것이어서 더욱 걱정이 커지고 우려스럽다.
설상가상 최근들어 미국과 중국의 주요 2개국(G2) 발(發) 겹악재가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실물경제를 위협하며 한국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차가운 중국 경제’의 한랭전선과 ‘뜨거운 미국 경제’의 온난전선이 맞닥뜨리며 ‘위기의 한국 경제’에 진한 먹구름을 드리우고 계속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부동산발(發) 우려가 여전히 큰 가운데 중국 경제는 소비·생산·투자·수출이 모두 악화하고 물가가 곤두박질친 중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높은데다 미국 연준(Fed)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미국은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금융 불안에 휩싸이고 있다.
수출과 내수 등 각종 경제수치는 온통 잿빛투성이다. 가장 큰 불안 요인은 단연 수출 부진이다. 수출은 지난해 10월 이후 줄곧 감소세다. 관세청의 8월1∼20일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은 278억 5,6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16.5% 줄었다. 11개월 연속 감소가 불가피해졌다. 무역수지는 35억 6,600만 달러 적자로 올 들어 누적적자는 284억 400만 달러에 이른다.
6월과 7월 반짝 흑자를 보였지만 수입이 수출보다 더 크게 줄어든 ‘불황형 흑자’였다. 게다가 상반기에만 39조 7,000억 원의 세금이 덜 걷혔다.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세수 부족으로 내수를 이끌 재정의 역할도 한계가 명확관화(明確觀火)하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특성상 개입 여지가 적은 외부 변수 탓이라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기업들도 하반기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23일 발표한 ‘8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및 경제심리지수(ESI)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제조업 업황 BSI는 전월보다 5포인트 하락한 67을 기록해 지난 2월 63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제조업 업황 BSI는 6월 73으로 정점을 찍은 후 2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BSI는 현재 경영 상황에 대한 기업가의 판단과 전망을 바탕으로 산출된 통계로 부정적 응답이 긍정적 응답보다 많으면 지수가 100을 밑돈다.
소득은 줄어들고 부채는 늘어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이 국내 가계부채 리스크를 지적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여전히 금융지원(부채)를 통한 일시적 미봉 해소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흡한 대응으로 자기 소득으로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한계채무자가 3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한계채무자의 채무를 신속히 조정하고 필요한 사회복지서비스를 적절히 지원하는 등 실행력 기반 정책이 요구된다.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될 경우 거시경제·금융안정 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선제적 관리에 나서야 한다.
2021~2022년 가계부채가 급증했던 시기 전체 은행권의 대출 총량을 규제했던 방식은 되풀이하는 대신, 최근 가계부채 증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특례보금자리론, 50년 만기 주택담보 대출 등 특정 상품에 대해 핀셋 점검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 ‘블랙 스완(Black Swan)’이 또 다른 ‘악재’와 ‘화불단행(禍不單行)’할 가능성마저도 있다. 위기는 예고없이 찾아온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선제 대응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