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3. 09. 13.


‘불황형 저성장’ 불안 속 3%대 재진입 물가, 고삐 단단히 좨야

▲박근종(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한동안 잦아들었던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커지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8월 소비자물가가 4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상승해 서민들의 시름이 커질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월 대비 1.0%, 전년 동월 대비 3.4% 각각 상승했다. 전월 비는 농·축·수산물, 공업제품, 서비스 및 전기·가스·수도가 모두 상승하여 전체 1.0% 상승했고, 전년 동월 비는 서비스, 공업제품, 전기·가스·수도 및 농·축·수산물이 모두 상승하여 전체 3.4% 상승했다.

이렇듯 8월 소비자물가는 3.4% 올라 3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섰다. 상승 폭은 지난 4월 3.7% 이후 가장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다. 7월 소비자물가 25개월 만에 최저인 2.3% 상승에 그쳐 우리 경제의 숨통이 그나마 틔었다고 여겼는데 한 달 만에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7월에 0.5% 하락한 농축수산물 물가는 폭염·폭우 등 이상기후로 8월에 5.3%나 급등한 데다 국제유가 인상까지 겹친 탓이다. 소비자들이 마트나 할인매장에서 많이 찾는 배추(42%), 시금치 (59%), 사과(30.5%), 복숭아(23.8%) 등의 가격이 특히 많이 올라 체감물가는 통계치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석유류 가격은 8월에 11%나 하락했지만 기저효과와 7월 상승률이 마이너스 25.9%인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상승세가 두드러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곡물 제외 농산물 및 석유류 관련 품목을 제외한 품목(458개 중 401개)으로 작성한 ‘농산물및석유류제외지수(우리나라 방식의 근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2%, 전년 동월 대비 3.9% 각각 상승했고, 식료품 및 에너지 관련 품목을 제외한 품목(458개 중 309개)으로 작성한 식료품 및 에너지 관련 품목을 제외한 품목(458개 중 309개)으로 작성한 ‘식료품및에너지제외지수(OECD 방식의 근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3%, 전년 동월 대비 3.3% 각각 상승했으며 전체 458개 품목 중 구입 빈도가 높고 지출 비중이 높아 가격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144개 품목으로 작성한 생활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1.5%, 전년 동월 대비 3.9% 각각 상승했다.

신선어개(생선・해산물), 신선채소, 신선과실 등 계절 및 기상조건에 따라 가격변동이 큰 55개 품목으로 작성한 신선식품지수는 전월 대비 9.9%, 전년 동월 대비 5.6% 각각 상승했다.

한편 한국은행이 같은 날 발표한 ‘2023년 2/4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2023년 2/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6% 성장에 그쳤다. 2분기 성장은 한마디로 ‘무늬만 플러스’라 할 정도다. 가계부채 원리금 부담 등으로 민간 소비는 0.1% 나줄었고, 코로나 지원 중단 등으로 정부 소비도 2.1%나 줄었다.

전체 GDP 성장률을 힘겹게 플러스로 돌려놓은 결정적 요인은 순수출 증가 덕분이다. 수출이 0.9% 감소했으나, 수입이 원유·가스를 중심으로 무려 3.7%나 줄어든 덕분에 간신히 역성장을 면했다.

이런 ‘불황형 저성장’은 최근 국제 원유 가격이 다시 배럴당 85∼90달러로 치솟으며 살얼음판을 걷게 됐다. 중국 경제 부진에 따른 하방 압력까지 겹치면서 올해 1.4% 성장률 달성조차 힘들다는 비관론이 고개를 든다.

또한 2023년 2/4분기 명목 국민총소득(GNI)도 전기 대비 0.2% 감소했다.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0.6%)에도 불구하고 실질 국외순수취요소소득(14조 9,000억 원 → 10조 3,000억 원)이 줄고 교역조건 악화로 실질 무역 손실(-32조 2,000억 원 → -34조 원)이 확대되어 0.7% 감소했다. 사정이 이러니 물가를 잡자고 함부로 금리를 올리기 어렵고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재정을 풀기도 힘들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구조개혁 없이 재정·통화 등 단기정책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대비해 정부가 역점을 둬야 할 것은 서민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생활물가를 안정시키는 일이다. 비축해둔 농산물 방출을 늘리고 대체 농축산물 수입도 확대해야 한다.

이렇듯 작금의 우리나라 경제지표는 진한 먹구름으로 돌변한 상황이다. 당장 심각한 불안 요인은 물가다. 소비자물가는 지난 2월부터 둔화하다가 7월에 2.3%까지 내려갔으나, 급반등으로 바뀌었다. 폭염·폭우 등으로 농산물 가격은 1년 전보다 5.4% 상승했고, 생활물가지수도 3.9% 올라 추석 물가를 위협하고 있다.

물가 기조를 보여주는 근원물가인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 역시 3.9% 상승, 외환위기 및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맞먹는 수준으로 고공행진 중이다. 게다가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은 21.1%나 오른 상태다. 무더위를 이겨내느라 예년보다 에어컨을 더 틀었다가 평소 갑절 수준의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 들고 소스라치게 놀란 가정이 적지 않다.

물가 상승은 가뜩이나 움츠러든 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위험이 많다. 한국은행이 8월 28일 한국은행 조사국이 발표한 ‘민간소비 회복 모멘텀에 대한 평가’에 따르면 소매판매지수와 서비스업생산지수, 7월 신용카드 등 고빈도 자료를 이용해 개략적으로 추정해본 결과, 4~7월 중 국내 소비는 1~3월 대비 월평균 0.5% 내외 감소했고, 올해 2분기 민간 소비도 ‘펜트업(Pent-up │ 코로나19로 지연된 소비 재개)’ 둔화와 이상기온·폭우 영향 등으로 1분기보다 0.1% 감소하고 7월에도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고금리로 인해 가계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높아지고, 중국발(發) 리스크 등 대외 여건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가계소비를 제약할 가능성은 여전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다 보니 벌써 추석 차례상을 최대한 간소하게 차리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높아진 기름값 탓에 귀향을 꺼리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맞게 될 전망이 더욱더 어둡다는 점이다. 하반기 들어 지난해 기저효과는 사라진 지 오래고,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원화 약세가 맞물리면서 국내 물가 부담이 더욱 가중되는 상황이다. 연말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 내외에서 등락할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예측은 이미 빗나가 버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월 이후 5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물가 상승률이 3% 밑으로 내려간 나라는 선진국 중 우리가 유일하다”하고 했지만, 그런 자신감도 밑동부터 흔들리게 됐다. 그렇다고 ‘불황형 저성장’과 가계부채 리스크를 고려하면 함부로 금리를 올리기도 매우 어렵다.

게다가 연내에 물가를 끌어올릴 악재들은 줄줄이 대기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감산으로 요즘 국제유가는 연중 최고인 데다 정부가 2개월 연장한 유류세 인하 조치는 10월 말로 끝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상기후로 국제 곡물가, 설탕 가격도 여전히 불안하다.

지난달 오른 서울 버스 요금에 이어 지하철 요금은 10월부터 1,400원으로 오른다. 한국전력, 가스공사의 막대한 누적 적자 때문에 추가로 전기, 가스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렇듯 거시경제 전반에 걸쳐 위험성이 커지는 만큼 더욱 정교한 선제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추석 물가 안정 대책을 시작으로 내수 진작까지 도모하는 정교한 정책조합이 절실하고 시급한 때다. 정부는 지난 8월 31일 추석 기간 배추·무 등 주요 20대 추석 성수품 물가를 전년보다 5% 낮추겠다는 목표를 밝히고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에는 역대 최대인 670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추석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보다 더 세심한 물가 안정 대책이 필요하다.

파급력이 큰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은 시기를 분산하고 오름폭도 탄력적으로 조절하여 충격을 줄이고, 서민·청년층을 지원하는 방안도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실질소득을 떨어뜨리는 원화 가치 하락도 경계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물가 관리에 고삐를 단단히 좨야만 한다. 유가 상승과 기후변화 등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빈틈을 노린 담합이나 편법 가격 인상 등에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은 물론 실효성 있는 완충 장치도 더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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