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3. 10. 04.


춥고도 혹독한 ‘3고(高)’의 긴 겨울 문턱, 경제 월동준비 서둘러야

▲박근종(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부진의 늪에 몰아넣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의 먹구름이 또다시 몰려오고 있다. 국내 수출 부진이 반등의 변곡점을 찾지 못하고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 경제 성장을 끌어내린 ‘3고(高)’위협이 재차 부상하면서 경기 회복의 불씨를 꺼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기대를 걸고 있는 상저하고(上底下高)형 경기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고,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3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밑돌 확률도 커진 것으로 파악된다.

이렇듯 달갑지 않은 ‘3고(高)’의 귀환을 소환한 건 치솟는 금리와 유가 그리고 환율 때문이다. 미국이 예상을 깨고 긴축 기조로 선회하여 고삐를 다시 옥죄면서 고금리 장기화가 굳어지는 양상에 국내 시장금리가 꿈틀대고 있는 데다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요동치고,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선을 위협하고 있으며 설상가상 새달에는 지하철 요금이 오르고 전기요금 인상도 대기 중이어서 물가가 뛰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역수지는 악화되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수 있고 ‘U자’형 회복이 나타날 가능성은 사그라들고 ‘L자’형 장기 침체에 빠질 우려가 커지는 등 곧 들이닥칠 ‘춥고도 혹독한 긴 겨울’을 생각하면 옷깃을 여미는 정도의 미봉책으로는 크게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큰 걱정은 금리와 유가 그리고 환율이다. 예고한 대로 미국이 올해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올리면 우리나라와의 금리 차이는 2.25% 포인트로 더 벌어진다.

미국의 조기 금리 인하로 자연스런 격차 축소를 기대했던 우리로서는 이제 금리차 확대에 따른 자본 유출과 금리 인상 맞대응을 고민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달러당 원화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지난 9월 27일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이 장중 1,350선을 돌파했다. 전날 하루 만에 12원 오르면서 1348.5원으로 마감해 연고점을 경신했는데, 재차 연고점을 뚫은 것이다.

이날 환율은 전일 대비 6.5원 오른 1,355.0원에 거래를 시작해 장 초반 1,356원을 터치하며 전날 기록했던 연고점 1,349.5원을 뚫었다. 지난해 11월 10일 1,377.5원 이후 가장 높다. 금리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국채시장에서 10년물 미 국채 수익률은 25일 4.541%로 마감해 2007년 10월 17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9월 27일 발표한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 통계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8월 가계 대출 평균 금리(가중평균·신규취급액 기준)도 연 4.83%로 지난 7월보다 0.03%포인트 올랐다. 고환율은 수입 물가와 생산자물가를 차례로 자극해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린다. 고유가와 고환율이 맞물리며 경기 부진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미국의 긴축적인 통화정책은 여기에 기름을 붓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내년까지 연 5%의 기준금리 유지 방침을 시사하면서 불거진 ‘고금리 장기화’는 강달러 현상을 더 부추기며 원·달러 환율을 자극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연준(Fed)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기 어려워진 만큼 취약 차주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에 대한 대응 여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기준금리 3.50%)과 미국(기준금리 5.25∼5.50%) 간 기준금리 역전 격차는 상단 기준으로 역대 최대 폭인 2.0%포인트다.

통계청이 9월 5일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의하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2020년 100 기준)는 112.33으로 지난해 8월 108.62 대비 3.4%로 뛰며 3개월 만에 3%대로 다시 올라섰다. 이렇듯 널뛰는 물가상승은 유가 인상과 직결된 공산이 크다.

지난 9월 25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전국에서 거래된 휘발유 평균 가격은 L당 1,788원으로 1,800원 돌파를 코앞에 뒀다. 지난 7월만 해도 L당 평균 1,585.5원이던 휘발윳값이 13% 가까이 크게 뛴 것은 국내 석유제품 가격의 바탕이 되는 국제유가가 빠르게 치솟아 오르고 있어서다.

최근 국제유가 오름세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고금리 기조 유지로 잡힐 듯했던 물가는 최대 위협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물가가 오르면 부담을 느낀 가계는 지갑을 닫고, 이러한 소비 부진은 민간 기업의 생산과 투자 감축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실물경기 동향을 나타내는 생산(-0.7%), 소비(-3.2%), 투자(-8.9%) 3대 지표가 한꺼번에 줄어드는 이른바 ‘트리플 감소(Triple minus │ 3低)’를 이미 지난 8월 3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7월 산업활동동향’에서 확인됐듯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은 향후 내수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다가 올해 초 70달러 안팎까지 떨어졌던 국제유가도 최근 고공비행 중이다. 수입 원유 가격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의 지난주 평균 가격은 배럴당 94.4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9월 28일(현지 시각) 국제유가도 브렌트유는 장 중 한때 배럴당 97.69달러까지 치솟았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93.68달러로 전날 대비 3.65%인 3.29달러나 올라 마감하는 등 상승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투자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Group)는 올해 안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길 것으로 내다봤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도 사우디와 러시아의 감산 연장 결정으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고 있어 국제유가 오름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무역수지는 역대 수준인 477억 8,489만 달러(약 64조 556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적자 규모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때 생긴 무역적자는 올해까지 15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물론 지난 6월부터 월별 무역수지는 3개월째 흑자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11개월째 수출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불황형 흑자(Recession trade surplus)’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 부진은 최대 교역국인 대(對)중국 수출 감소와 최대 수출 산업인 반도체 분야의 부진에서 기인했다.

게다가 가계부채는 올해 2분기 말 기준 1,862조 8,000억 원으로 지난 1분기 1,853조 3,000억 원보다 0.5%인 9조 5,000억 원이나 늘어났고, 기업부채는 올해 2분기 말 기준 기업 대출 잔액은 1,908조 9,000억 원, 전체 기업 신용(대출 + 외상거래)은 2,705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고금리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기업부채마저 위험 수위에 다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별다른 정책 대응 노력이 없을 경우 3년간 가계부채는 매년 4∼6% 정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와 같이 매년 6%씩 늘어나 해마다 100조 원 이상 가계부채가 늘어난다는 추산이다. 이 같은 증가 속도라면 가계부채 규모는 1년 뒤 1,974조 원, 2년 뒤 2,092조 원, 3년 뒤 2,218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우리 경제의 위기가 이런데도 경제주체들의 위기의식은 별로 느끼고 있지 않아 보인다. 지난 9월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코픽스)는 지난 9월 25일 기준 4.17~7.099%로 나타났다. 주담대 고정금리(혼합형)는 4.00~6.425%로 집계됐다.

이렇듯 주담대 금리는 최근 상승세를 보이면서 하단이 4%, 상단이 7%를 돌파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달 5대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이 벌써 2조 원 가까이 급증한 것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2~3년 뒤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다시 뛸 수 있다는 불안감도 한몫 가세했다. ‘3고(高)’의 고통 속에 집값 불안마저 가중되면 우리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떠밀리게 된다. 정부는 부동산 대책에 확실한 처방을 담아 난국을 극복해야 한다. 어정쩡한 공급책은 외려 불안심리만 더 자극할 수 있음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지난 9월 2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 7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5.5% 감소했다. 더군다나 올해 우리나라는 3년 연속 성장률이 OECD 평균을 밑돌 위기에도 직면해 있다.

‘3년 연속’은 1996년 OECD에 가입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OECD가 지난 9월 19일 발표한 중간 경제 전망에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1.5%로 제시했다.

지난 6월 전망치와 같다. 더구나 정부와 한국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경제가 올해 1.4% 성장할 것으로, 아시아개발은행(ADB)은 1.3% 성장할 것으로 심지어 JP모간과 UBS는 올해 1.1%로 낮게 보고 있다. ‘고금리 저성장’이 ‘뉴노멀(New Normal │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표준)’로 자리 잡았다는 잿빛 평가를 안타깝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무엇보다도 최우선은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부진 타개가 급선무다. 근본적으로는 경제체질을 바꾸고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지금까지의 선진국 추격형, 중간재 위주 성장 방식을 과감히 탈피하는 산업 대전환에 나서야 한다.

기업들의 수출 지역·품목 다변화를 뒷받침하고 금융·세제 지원에 속도를 높이고 발목을 잡는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새로운 수출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원전·방산·콘텐츠 등에 대한 전방위적인 지원 대책도 서둘러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세수가 역대 최대인 59조 원 규모로 펑크 날 것이 예상되어 경기 회복을 위해 금융정책은 물론 재정정책을 쓸 여지도 좁혀지고 있다. 경기 침체 장기화의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려면 기업 하기 좋은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는 데 정부역량을 총 집주(集注)해야 한다.

기업과 가계도 위기의식을 갖고 긴장감을 바짝 끌어올려야 한다. 춥고도 혹독한 ‘3고(高)’의 긴 겨울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내핍과 고통 분담의 자구책을 내놓고 구조조정과 부채 다이어트 등 힘들더라도 고강도 경제 월동준비를 서둘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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