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3. 12. 13.
‘트리플 감소’에 내년 전망도 암울, 경제 한파 대비해야
바닥을 찍는 듯 보였던 경기가 다시 냉각되며 경제 한파가 매서워질 조짐이다. 국내 경기의 전반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생산·투자·소비 등 3대 지표가 모두 하락, ‘트리플 감소’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시적 조정이라며 선을 긋고 생산·소비·투자 부진을 기저효과 탓이라고 돌리며 국내 경제의 추세적 회복세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고금리 장기화에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는 우려는 오히려 더 커지고 있는 데다 산업 지표의 증가와 감소가 번갈아 나타나면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는 모양새다.
지난 11월 30일 통계청이 발표한‘2023년 10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전월 9월 대비 생산(전 산업생산)은 1.6%, 소비(소매 판매)는 0.8%, 투자(설비투자)는 3.3% 감소했다. 산업활동을 보여주는 3대 지표가 모두 감소한 것은 지난 7월 이후로 석 달 만이다.
지난달 국내 전체 산업 생산지수는 111.1(2020년=100·계절조정)로 한 달 전 9월에 견줘 1.6% 하락하면서 석 달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2020년 4월 1.8% 하락한 이후 3년 6개월 만에 최대 감소 폭이다. 광공업 부진이 전 산업생산을 끌어내렸다. 반도체 생산이 큰 폭으로 줄면서 광공업생산은 전 월 대비 3.5% 감소했다.
D램 등 반도체 생산은 전 월에 비해 11.4% 감소했고, 반도체 조립 장비 등 기계장비 생산도 8.3% 줄었다. 반도체 생산 감소 폭은 올해 2월(-15.5%) 이후 8개월 만에 최대 수준이다. 지난달 서비스업 생산도 0.9% 줄면서 다섯 달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정보통신 부문은 1.3% 늘었으나, 도소매와 금융·보험 부문이 각각 3.3%, 1.2% 줄어든 영향이 컸다.
더딘 내수 회복 흐름 속에 소비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소매 판매도 0.8% 줄어들며 감소세로 전환했다. 통신기기·컴퓨터 등 내구재(4.3%)와 의류 등 준내구재(1.0%)는 모두 증가했지만,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가 3.1% 감소한 영향이 컸다.
국내 설비투자도 3.3% 쪼그라들며 감소세로 돌아섰다. 반도체 제조용 기계 수입이 줄면서 기계류 투자가 4.1% 감소한 탓이 컸다. 자동차 등 운송장비 투자도 1.2% 줄었다. 현재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경기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0.1포인트 하락하며 5개월 연속 떨어졌다.
더 불안한 것은 내년이다. 경기 반등은 기대하기 힘들고 물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월 30일 발표한 ‘11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내년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8월 발표한 내년 전망치 2.2%보다 0.1%포인트 낮은 2.1%로 낮춰 발표했다. 3연속 하향 조정이다.
수출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고금리로 소비가 부진하면서 경기 하방 위험을 반영한 것이다. 다만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4%로 유지했다. 반면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2.4%에서 2.6%로 더 높였다.
전반적인 비용 압박이 예상보다 크다는 게 한국은행 설명이다. 지난 11월 17일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의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6%, 내년 물가 상승률을 2.4%로 상향 조정했다.
내년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며 저성장이 고착화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 7월 내년 성장률 전망치로 2.4%를 제시한바 있지만 한국은행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 2.1%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2%보다 낮고, 금융연구원과 하나경영연구소가 예상한 2.1%와 같다.
산업연구원은 가계 부채로 인한 이자 부담과 고물가로 소비와 내수가 위축될 것이라며 경계선인 2.0% 성장률을 전망했다.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 된 가계신용(빚) 잔액은 1,875조 6,000억 원으로 전 분기 말 대비 14조 3,000억 원이나 증가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택담보대출은 계속 늘고 있다.
해외기관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는 우리나라의 내년 성장률을 각각 2.3%와 2.2%로 내다봤다. JP모건과 노무라는 2.2%, 2.3%로 예상했고, 무디스는 최근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성장률로 2.0%를 제시했다.
더구나 한국은행이 국회 보고를 위해 재인용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올해 잠재성장률은 1.9%로 처음으로 2%를 밑돌았다. 내년에는 1.7%로 더 나빠진다. 2013년 3.5%였던 잠재성장률이 불과 10년 만에 이렇게 아련한 ‘꿈의 수치’로 보여지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고금리와 고물가 장기화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지난달 1일(현지 시각) 연방준비제도(Fed) 11월 FOMC 정례회의 결과 기존 5.25~5.5%이던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했는데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면서 민간 소비와 설비투자 부진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인구 구조 변화까지 감안하면 미래는 더 암울하다.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이 0.7명으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9년 이후 3분기 기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0.80명이던 것이 1년 새 0.10명이 감소한 것이다.
지난 9월 출생아 수 1만 8,707명은 역대 같은 달 중 최저를 기록했다. 합계출산율은 0.7명 선도 위태롭다. 한국은 2021년 0.81명, 지난해 0.78명으로 해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낮은 합계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또 한번의 최저치 경신이 나올 판이다.
더구나 가구주가 65세 이상인 노인가구 비중이 올해 처음 25%를 넘었다. 국내 가구 넷 중 하나꼴이다. 내년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 초고령화 파고까지 덮칠 예정이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젊은 세대의 노인 부양 부담도 커지고 있다.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부양하는 노인인구 비중은 올해 26.1명에서 2035년 48.6명, 2050년 78.6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하는 노인도 늘고 있다.
지난해 65세 이상 취업자는 326만5000명이며 고용률은 36.2%였다. 고령자 빈곤 문제도 심각하다. 66세 이상 중 중위소득의 50%도 못 버는 노인 비율은 2021년 기준 39.3%였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장기화 영향으로 가계 실질가처분소득이 줄고 있고, 고용도 60대 이상 위주로 늘어 높은 고용률이 소비로 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고물가가 지속되고 유동성 회수를 위한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정부가 경기 부양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사회는 활력을 잃고 경제는 성장을 멈추며 국가소멸 위기까지 거론되는 최악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사회와 경제 재도약을 위해 비상한 각오로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판인데 정부는 올해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상저하고(上低下高 │ 상반기 저조, 하반기 반등)’만 외치며 ‘희망고문’만 하고 있다. “경제는 심리이고 정책은 타이밍”이라지만 아무리 심리적 효과를 감안 하더라도 안일하고 무책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야 공히 마음이 모두 내년 총선에 가 있고 정쟁(政爭)은 더욱 격화(激化)되고 있다. 더구나 개각까지 예고되면서 정작 현장에선 도대체 “소는 누가 키우냐”는 푸념마저 터져 나오고 있다. 지금은 경제 주체 모두가 경제살리기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경제 한파를 대비한 정책 공백이 있어선 절대로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