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4. 01. 24.


예술의 도시 성북

김보라(성북구립미술관 관장)

성북구에는 한국 근현대를 대표하는 수많은 예술가가 거주하고 활동했다.

장승업(1843~1897), 오세창(1864~1953), 한용운(1879~1944), 변관식(1899~1976), 김용준(1904~1967), 김광섭(1905~1977), 김환기(1913~1974), 윤중식(1913~2012), 김종영(1915~1982), 이중섭(1916~1956), 윤이상(1917~1995), 박고석(1918~2002), 금수현(1919~1992), 조지훈(1920~1968), 김중업(1922~1988), 권진규(1922~1973), 변시지(1926~2013), 변종하(1926~2000), 박경리(1926~2008), 송영수(1930~1970), 서세옥(1929~2020), 최만린(1935~2020) … 모두 성북을 사랑하고 성북에서 교류하며 척박한 시대를 견딘 예술가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제발전 우선의 시간을 지나며 이들의 삶과 활동의 흔적이 많이 사라졌다. 개인과 내셔널트러스트에 의해 최순우옛집, 간송미술관, 심우장, 변종하미술관, 권진규아뜰리에 등 몇몇 장소만이 그 본모습을 지켜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9년 성북구립미술관 개관은 성북 예술가들의 존재를 다시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성북은 큰 건물을 세우는 대신 예술가가 살고 활동한 흔적을 찾아내 그곳을 정성스럽게 미술관으로 변모시키는 방식을 택했고, 미술관 학예사들은 끊임없이 예술가의 작품을 연구하고 시민과 잇는 노력을 기울였다.

예술가와 그 유족도 성북과 성북미술관의 노력에 공감했다. 한국화가 서세옥이 작고하고 유족은 성북구에 3천 점이 넘는 작품을 무상으로 기증했다. 조각가 최만린 유족은 작가 사후 최만린미술관의 발전을 위해 400점이 넘는 작품을 추가로 기증했다. 서양화가 윤중식 유족은 500점의 주요 작품을 성북에 기증했으며 이를 계기로 박수근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 등 지역 작가미술관과의 관계를 형성하며 한국 근현대 작가 공동연구의 장을 열었다. 성북은 지역 주요 예술가의 작품을 대거 품는 한편, 한국 미술의 질적 향상에도 독보적인 기여를 했다.

성북은 성북미술연구소 개소 후 4천 5백여 점에 달하는 소장품을 다양하고 깊게 연구해 성북 미술의 가치를 널리 공유하는 한편, 예술가의 삶과 활동의 흔적을 되찾고 현재 보존할 수 있는 장소를 미래의 유산으로 남기는 노력도 펼치고 있다. 정릉에 개관한 성북구립미술관 분관인 최만린미술관 개관과 서세옥미술관 건립 추진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내에서 예술가의 집을 보존해 미래의 유산으로 가치를 부여한 사례는 흔치 않다. 윤중식, 송영수, 박경리 등 남아있는 예술가의 집을 보존하고 사라진 장소를 기억하기 위해 성북은 오늘도 여러 주체와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자산을 기반으로 기획한 성북구립미술관의 독창적인 전시도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한다. 성북구립미술관은 성북의 근현대 주요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3월 최만린미술관에서 조각가 최만린의 석고 <원형> 작품을 탐색하는 전시를 시작으로 4월에는 성북동에 오랜 기간 거주하며 그 풍경을 화폭에 담아낸 세계적인 한국화가 <유근택>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쾌대를 중심으로 권진규, 김창열, 전뢰진, 조덕환 등이 활동하며 한국 미술교육의 발화점이 된 <성북회화연구소> 전시와 <최만린, 이어령, 김남조> 등 관계를 조망하는 전시도 하반기에 개최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성북예술창작터를 중심으로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지역의 미술대학과의 협력체계를 구축해 원석 같은 작가를 양성해 예향으로서 성북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성북어린이미술관 꿈자람은 어린이에게 지역 주요 예술가를 알려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고, 김중업 건축문화의집은 성북 미술의 축적자료를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예술가의 여정은 많은 이에게 치열한 삶을 느끼게 하고 감동을 안긴다.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의 삶과 활동의 흔적을 오롯이 품은 성북. 이제 성북이라는 공간을 넘어 현재라는 시간을 넘어 대한민국과 미래세대가 함께 누리는 예술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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