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4. 04. 24.


저출산 핵심 원인은 여성의 ‘경력 단절 기피’ 탓

박근종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한국의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 │ 15~49세 가임기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감소의 핵심 원인은 경력 단절을 우려해 출산을 포기하는 여성이 증가하는 데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조덕상 연구위원과 한정민 전문연구원이 지난 4월 16일 세종시에 있는 정부세종청사에서 발표한 ‘여성의 경력단절 우려와 출산율 감소’란 제목의‘KDI 포커스’ 보고서에 따르면 “경력 단절을 우려하여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라고 전제하고. “이와 같은 여성의 선택은 출산율 감소의 40%가량을 설명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꼬집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한 우리 사회의 출산율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도 커리어(Career)를 지속할 수 있도록 일·가정 양립 환경에 대한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무자녀 여성의 경력 단절 확률은 2014년 33%에서 2023년 9%로 24%포인트나 급격히 감소하였다. 그러나 자녀가 있는 여성만으로 한정하여 살펴볼 경우, 이들의 경력 단절 확률이 같은 기간 28%에서 24%로 4%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쳤다.

유자녀 여성의 경력 단절 확률은 무자녀 여성보다 2.66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30대 무자녀 여성이 출산을 포기하고 무자녀 상태를 지속하는 선택을 할 경우는 2023년 현재 경력 단절 확률을 최소 14%포인트 이상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경력 단절에 따른 인적자본 훼손과 경력 단절 없이 커리어를 지속함에 따라 기대되는 임금 상승을 감안하면, 14%포인트 이상의 경력 단절 확률 감소는 개인의 평생 소득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수준이다. 더불어 출산 이후 자녀의 양육에 수반되는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청년 무자녀 여성이 출산을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편익의 상승 폭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아이를 가장 적게 낳는 나라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15년(1.24명) 이후 매년 약 0.07명씩 감소하여 2023년 현재 0.72명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OECD 평균 합계출산율은 2015~21년 기간 동안 1.68명에서 1.58명으로 매년 약 0.017명 감소했을 뿐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보다 상황이 더 나은 OECD 국가, 그중에서도 가족 친화적 정책의 모범사례로 여겨졌던 북유럽 국가에서조차 최근 출산율 하락은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전통적인 경제이론은 출산율이 감소하는 이유를 여성의 기회비용 상승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부터 고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과거와 달리 소득과 출산율 사이에 음(-)의 상관관계가 사라지고,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과 소득, 출산율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가 관찰되는데, 이는 “여성(모)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정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조덕상 연구위원과 한정민 전문연구원은 설명한다.

2000년대 이후 OECD 고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소득수준이 높고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더 높아지는 경향성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소득수준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꾸준히 증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 이후 출산율이 증가하지 않고 오히려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것은 유자녀 여성 또는 남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없는 노동시장 환경이 지속되면서, 경력 단절을 우려하여 커리어를 유지한 채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여성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의 낮은 출산율은 여성에게 육아 부담이 집중된 가운데,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운 상황이 개선되지 않아 여성이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소득수준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여성이 아이를 낳은 후에도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없는 노동시장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본 젊은 여성들에겐 경력 단절을 겪느니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게 경제적으로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됐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유자녀 여성의 경력 단절 확률이 무자녀 여성보다 큰 요인으로 노동환경을 꼽았다. 한국의 노동환경이 자녀 양육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자녀 여성이 남성과 노동시장에서 경쟁하는 방향으로 조성되면서, 무자녀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경쟁하며 성별 격차를 해소한 반면 유자녀 여성은 비대칭적인 육아 부담으로 고용 격차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청년층 성별 고용률 격차의 축소는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고 차별이 감소하였음을 의미하기에 여성에게 더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출산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자녀 여성의 경력 단절 확률 감소에도 불구하고 유자녀 여성의 경력 단절 확률이 정체 또는 증가함에 따라 출산을 포기하는 선택의 상대적 가치가 더 커졌으며, 이는 청년 여성의 선택을 변화시킬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아직 자녀가 없는 청년세대가 경험하는 성별 고용률 격차의 축소는, 역설적이게도 자녀 유무에 따른 경력 단절 확률 격차의 확대로 이어져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청년 여성의 수를 증가시킨 것으로 판단된다.

출산은 개인의 생애 전반에 걸친 동태적 의사결정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경제학에선 성별 고용률 격차를 차일드 페널티(Child penalty)라고 부른다. 출산에 따른 여성의 고용상 불이익을 의미한다. 보고서는 최근(2013~19년) 무자녀 비중이 높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성별 고용률 격차가 축소됨에 따라 출산에 따른 여성의 고용상 불이익(Child penalty)이 증가하였으며, 이는 전체 출산율 하락의 40%가량을 설명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모형별로 30∼34세일 때 45.6%, 25∼34세 39.6%, 25∼39세 46.2% 등이다.

결국 출산율 제고를 위해서 유자녀 여성의 경력 단절 확률을 낮출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육아기 부모의 시간 제약을 완화할 수 있는 재택 · 단축 근무 제도와 이를 지원하기 위한 보조금 정책의 확대, 남성(부)의 영유아 교육 · 보육 비중 확대를 통한 여성의 비대칭적 육아 부담 경감 등을 통해 유자녀 여성의 경력 단절 확률을 낮추고 여성이 직면한 출산 및 육아 부담을 낮춰 출산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미 시행되고 있는 육아휴직과 육아기 단축 근무 제도에도 불구하고, 2014년 이후 현재까지 30·40대 유자녀 여성의 조건부 경력 단절 확률이 낮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녀의 출산과 교육·보육은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가 수년 혹은 십수 년에 걸쳐 공백 없이 이루어 내야 할 과업이다.

보고서는 최근까지도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유자녀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는 현재의 단기적인 출산율 정책(몇 달 동안의 출산휴가나 1~3년 동안의 육아휴직 또는 단축 근무)만으로는 유자녀 여성의 경력 단절 확률을 감소시키는 데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조덕상 연구위원은 “육아는 1~2년 만에 끝나는 게 아니고 수십 년간 신경 써야 하므로 단기적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제도만으론 한계가 있다.”라며 “좀 더 유연하고 다양한 근로제도를 활용해 장기적인 시각으로 여성 특히 유자녀 여성이 경력 단절을 겪을 확률을 낮출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따라서 부모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동안 이들의 시간 제약을 완화할 수 있는 재택·단축 근무 등의 제도적 지원을 10년 이상의 장기적 시계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유자녀 여성의 경력 단절을 완화하고 방지하기 위한 정책은 국가적 인적자본 훼손을 방지하여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노동생산성 증가에도 기여할 수 있다. 보고서는 비록 육아를 수행하는 동안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노동시장 경쟁에서 뒤처지더라도 경력 단절로 인한 회복하기 어려운 인적자본 훼손을 방지할 수 있다면, 자녀가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되었을 때 비교적 높은 임금으로 노동시장에 복귀할 수 있으며, 경제 전체의 생산성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육아기 단축 근무로 부모의 근로 시간이 감소하더라도 이러한 정책으로 여성의 경력 단절 확률이 줄어들 경우, 여성이 생애 전반에 걸쳐 제공하는 노동시간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이는 개인 또는 가구 입장에서는 평생 소득의 증가를, 거시경제 관점에서는 노동 공급 증가에 따른 경제의 성장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인적자본을 축적한 한국 청년들이 출산을 하더라도 경력 단절을 경험하지 않고, 자녀를 양육하면서도 커리어를 유지하며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어야만, 이들이 출산을 선택하는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시기 고용률이 낮아지는 ‘M자형 곡선’이 변해야 한다.

특히 여성의 관점에서는 일과 가정을 양립과 병존하기가 매우 힘들다. 근무 시간은 길고 자기 계발 압박감도 심하다. 눈치가 보여 법에 보장된 육아휴직도 제대로 못 쓰는 경우도 다반사로 심각하다. 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는 기업의 암묵적인 압력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보육 제도까지 부실하고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문제 역시 심각하다. 설상가상 사교육비도 엄청나다.

아기를 낳으면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근본 처방이다. 성차별적인 노동시장 관행을 고치고, 성별에 따라 직종을 분리하는 이중구조를 완화하고, 출산·양육으로 직장 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육아 친화 기업 문화와 가족 친화 복지정책을 기반으로 출산율 제고에 국가역량을 총 집주(集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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