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4. 06. 26.
6월부터 한여름 폭염 특보, 취약계층 피해 없게 철저 대비를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전국에서 기상관측 이래 ‘6월 최고기온’을 기록한 지역들이 쏟아져 나왔다. 6월 날씨가 한여름에 해당하는 섭씨 35도를 넘는 현상은 기후위기의 가속화를 가히 실감케 한다. 영향이 없는 계층이 없겠지만 현장 노동자와 주거 취약계층에겐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와 지자체는 기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지 따지고 챙겨봐야 한다.
특히, ‘존 C. 머터(JOHN C. MUTTER)’ 컬럼비아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재난의 상황은 늘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며, 자연보다는 인간이 더 큰 피해를 준다.’라고 역설했다. 쪽방촌 노인들이나 에어컨이 없는 서민들은 이미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야외에서 일하는 건설·택배 노동자들도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올해는 평년보다 훨씬 이른 폭염이 예보됐다. 관측 이후 가장 더운 날씨는 1994년이었다. 1994년은 한여름인 7월 전국 평균 폭염 일수가 17.7일로 한 달 중 절반 이상이 폭염이었다. 역대 가장 많은 월간 폭염 일수다. 올해는 폭염 특보가 전년보다 1주일 일찍 발령되는 등 초여름부터 전례 없이 가파른 기온 상승 폭을 보였다. 폭염주의보가 사흘째 이어진 지난 6월 19일 전국 곳곳에서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운 6월 기온 기록이 쏟아졌다.
광주광역시는 37.2도로 1958년 6월 25일 기록 36.7도를 64년 만에 경신했다. 이와 함께 경주도 37.7도로 관측 이래 37도를 처음 넘어섰다. 대전과 전주 등에서도 36도를 넘어섰고, 서울도 35.6도를 기록 기상청 전국 기후관측 지점의 세 곳 중 한 곳 이상에서 역대 6월 일 최고기온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폭염 피해 같은 산업재해 위험이 있을 때 근로자가 작업 중지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의무사항이 아니라 현장에선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온다. 지금부터 딱 1년 전인 지난해 6월 19일, 코스트코 하남점에서 주차장 카트 관리를 하던 노동자 김동호씨가 하루 3만 보를 걸으며 일하다 사망했다. 고용노동부는 폭염 단계별로 휴식 보장 매뉴얼을 마련해 놓았으나 권고 사항일 뿐이다. 여름철 고온으로 악명 높은 쿠팡 등의 물류센터는 창고로 분류돼 냉방장치와 환기장치 설치 의무조차도 없다.
그런데도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접근 방식은 안이해 보인다. 이달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생활물류센터의 냉방·온방 장비 설치를 위해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라고 권고한 데 대해, 고용부는 “일률적으로 법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라며 불수용했다. 작업 현장의 상이함이 있고, 또 다른 규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기후위기 대처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지역별로 온열질환자가 속출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난 6월 21일 질병관리청이 공개한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신고현황’에 따르면 집계를 시작한 지난 5월 20일부터 이달 19일까지 한 달간 온열질환자 발생 건수는 26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50명에 비해 약 1.8배 증가했다. 사망자도 2명이나 나와 긴장감을 더한다. 특히 지난 6월 19일엔 올해 역대 최다인 38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문제는 온열질환자 수가 2022년 대비 80% 폭증했던 지난해보다 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23년 5월 20일부터 9월 30일까지 신고된 온열질환자는 2,818명으로 2022년 온열질환자 수 1,564명보다 1.8배 더 많았다. 그런데 올해 온열질환자 수가 더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이 심각성을 더한다.
온열 질환은 열로 인해 발생하는 급성 질환으로 뜨거운 환경에 장시간 노출 시 두통, 어지러움, 근육경련, 피로감, 의식저하 등의 증상을 보이고, 방치 시에는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질병으로 열사병과 열탈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열사병은 뜨거운 환경에 노출되면서 체온조절 신경계가 외부 열을 견디지 못하고 기능을 상실한 질환이다.
먼저 온열질환자가 발생하면 즉시 환자를 시원한 장소로 옮기고, 물수건‧물‧얼음 등으로 몸을 닦거나 부채 및 선풍기 등으로 체온을 내리며,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의료기관을 방문해야 한다. 특히 의식이 없는 경우에는 신속히 119에 신고하여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며, 질식 위험이 있으므로 음료수를 억지로 먹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폭염으로 인한 건강피해는 작은 실천으로도 예방이 가능하므로 ▷물 자주 마시기, ▷시원하게 지내기, ▷더운 시간대에는 활동 자제하기 등 건강수칙(물·그늘·휴식)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주는 체온을 상승시키며, 다량의 카페인이 함유된 커피나 탄산음료는 이뇨작용으로 탈수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과음하거나 과용을 피해야 한다.
특히 심혈관질환, 당뇨병, 뇌졸중 등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은 더위로 인해 증상이 악화될 수 있으므로, 더위에 오래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기존 치료를 잘 유지하면서 무더위에는 활동 강도를 평소보다 낮추는 것이 좋다. 물론 지방자치단체마다 폭염 쉼터를 만드는 등의 노력은 하고 있지만,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더 철저한 준비를 요구한다. 여름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모든 준비는 초과분 또는 잉여분을 내포하며 중복성과 중첩성이 인정되는 ‘가외성(加外性 │ Redundancy)’을 갖고 사전에 철저히 대비해야만 한다.
폭염에 이어 남부지방부터 장마도 시작됐다. 장마철 인명 피해의 주범인 반지하 주택과 지하차도 침수 예방을 위해 막바지 점검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이다. 현실적으로 폭염·폭우 피해 예방은 목전에 임박해서 준비해서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는 “우리가 어느 날 마주친 재난은 우리가 소홀히 보낸 지난 시간의 보복이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율리히 백(Ulrich Beck)은 “현대사회는 위험사회(Risk Society)로 위험은 단순한 재앙이 아닌 예견된 잠재적 위험으로 급속한 과학기술 발전, 산업화 등에 주로 기인한다.”하고 경고했다. 그러한 잠재적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 바로 국가의 책무다. 특히 취약계층에 피해가 없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전대미문의 기후위기 속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연중 실태 파악과 법령 개정, 예산 투입 계획의 의무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 투자전문가 나심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가 그의 저서‘블랙스완(Black Swan │ 위험 가득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에서 역설한 검은 백조를 찾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민의 안전한 일상을 보장하기 위한 범정부적인 종합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질병관리청은 “올여름은 평균기온이 높고 특히 7~8월에는 무더운 날이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라며, “폭염 시에는 외출을 자제하거나 양산이나 모자 등으로 햇볕을 차단하고 어린이와 노약자, 만성질환자는 온열 질환에 취약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라고 당부했다.
기후 위기와 기상 이변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안이 된 지 오래다. 천재지변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대비 부실로 인해 같은 피해가 연례적으로 반복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재(人災) 중의 인재(人災)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올해는 철저한 사전 준비로 사고 없는 안전한 여름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