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4. 08. 07.
상반기 체불임금 1조 436억 원, 사업주 엄단하고 서둘러 제도 보완을
올해 상반기 임금체불 규모가 1조 436억 원에 이른다.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인 데다 1조 원대를 넘긴 것도 역대 최초다. 지난 8월 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체불임금은 1조 436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8,232억 원보다 26.8%인 2,204억 원이나 급증했다.
임금체불 피해 노동자는 15만 503명으로 지난해 체불 피해 노동자 13만 1,867명보다 14.1%인 1만 8,636명이나 늘었다.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는 프리랜서나 파트타임 노동자까지를 고려하면 임금체불 피해는 더욱 클 것으로 추정된다.
임금체불이 계속 늘어나는 이유로는 무엇보다 경기 부진 등 경제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계속되는 건설경기 부진 속에 작년 건설업 체불이 전년 대비 49.2% 급증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26.0% 늘어난 2,478억 원을 기록했다.
전체 업종 중에선 올해 상반기 제조업 체불 규모가 2,872억 원으로 가장 크지만, 전체 체불액 규모에선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17.6%에서 올해 상반기 23.7%까지 늘어나는 추세다. 보건업 체불액도 상반기 717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67.8%나 급증했다. 아울러 내수 부진으로 자영업자 폐업이 늘어난 것도 체불액 증가로 이어졌을 것으란 분석이다.
임금체불은 노동자의 피와 땀을 빼앗는 극악무도한 행위이자 눈물 바람을 키우는 악질적 범죄행위다. 왜냐면 체불임금은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에게 밥줄을 끊는 사망 선고나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눈앞의 생계 위협은 물론이고, 사회에 대한 분노와 불신으로 정신까지 피폐해진다. 매월 월급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노동자는 체불임금 때문에 생계비를 빌려 다중 채무자로 전락하거나 가족관계에 금이 생기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고, 가족까지도 심한 정신적 충격과 함께 우울증을 겪게 한다. 그뿐 아니라 경영자에 대한 신뢰도 무너져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나 근로 의욕이 떨어져 노사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피해자의 상당수는 노인이나 청소년, 여성,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이기에 그 충격파는 더욱 크다. 임금체불을 ‘경제적 살인’에 비유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상반기 중 건설현장 등을 중심으로 1만 2,000여 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벌여 390억 원의 체불임금을 적발하고 이 중 272억 원을 청산했다고 전날 밝힌 바 있지만, 체불임금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고 그 피해자도 늘어났다. 임금체불 사건의 절반 이상은 상습자들이 저지른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불과하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43조(임금 지급) 제1항은 “임금은 통화(通貨)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제2항은 “임금은 매월 1회 이상 일정한 날짜를 정하여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109조(벌칙) 제1항은 “제43조(임금 지급)를 위반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라 고 규정한 게 고작이다.
이마저도 피해자가 중간에 합의해주면 처벌을 받지 않는다.
2022년 기준으로 노동자 1인당 임금체불액을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면 한국이 일본의 약 59배나 많다. 이러한 격차가 나타나는 데는 임금체불에 대한 규제, 벌칙은 일본이 한국보다 약해 그것으로 정확한 원인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일본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 오학수 특임연구위원의 연구논문에 의하면 일본의 임금체불 대상 노동자 수 및 체불액을 보면 2011년 이후 점차 줄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2012부터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경기회복이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거기에 기본적으로 경영자의 준법의식 및 책임의식도 크다. 일본에는 ‘중소기업가동우회’라고 하는 경영자단체가 있는데, 대기업에 편중된 경제정책을 시정 하고 중소기업의 존립과 발전,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꾀하고, 종업원의 인격 존중, 노사협력에 의한 생산성과 생활 향상을 추구하기 위해 결성됐다고 한다.
노사관계 견해를 통해 경영자 책임으로서 “무엇보다 실제 일하는 노동자의 생활을 보장함과 동시에 높은 사기를 갖고 노동자의 자발성이 발휘되는 상태를 확립하는 노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노사관계 대등성 원칙과 함께 임금도 사회적인 수준, 기업의 지불 능력, 물가동향을 고려하여 성의를 갖고 문제를 해결할 것을 강조한 데서 찾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은 한 달만 임금이 밀려도 법적 조치가 이뤄지고 업주 처벌 수위도 높다.
정부는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며 그동안 여러 차례 임금체불에 강경 대응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우리 법은 임금체불을 형사 범죄행위로 다루고 있다”라고 말하며, “노사 법치의 원칙은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돼야 한다”라며 임금체불 근절 의지를 강력히 밝혔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 2월 27일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표적 민생범죄인 임금체불은 고용노동부와 함께 반드시 엄단하겠다”라고 했다.
그런데도 체불임금이 이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났으니, 그간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하고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기면 안 된다. 임금체불이 해소되면 내수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정부는 말만 앞세우지 말고 악덕 사업주들을 발본색원하고 추상같이 준엄한 철퇴로 엄단할 것을 기대해 본다.
임금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이 같은 임금체불 현상을 두고 여기저기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상습적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업주를 실질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법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임금체불은 경기에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불경기일수록 급증한다.
올해도 건설 경기가 극도로 침체하는 등 경제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만큼,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업체 수도 가파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추석이 불과 35여 일 남짓이다. 때마침 해양수산부는 추석을 앞두고 8월 5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선원 임금체불 예방 및 해소를 위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다고 지난 8월 4일 밝혔다.
모처럼 시의적절한 선제 대응책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해양수산부의 특별근로감독은 전국 11개 지방해양수산청별로 점검반을 구성해 진행한다. 임금 상습 체불업체와 체불이 우려되는 사업장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체불임금은 추석 전 청산되도록 지도·감독할 계획이다. 잘한 일이다. 고용노동부도 검·경과 함께 합동점검반을 편성하여 대대적인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여 가뜩이나 어려운 민생경제의 숨통을 터야만 한다.
여야정치권도 21대 국회에서 회기 만료로 일몰 폐기된 「상습 임금체불 방지법」을 다시 논의해 조속히 통과시켜야만 한다. 이 법안은 미지급 임금에 지연이자를 부과하고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 규정 적용을 축소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여야 간 이견도 거의 없는 만큼 시간을 끌 일이 결단코 아니다. 서둘러 국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민생을 최우선시한 모습으로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기를 바란다.